<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5월 ‘이주의 안전포커스’에서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신호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골재장이 많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인근을 찾아가 신호수가 있는 현장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 골재장에는 신호수는커녕 덤프트럭이 아슬아슬하게 사토장에 올라 후진을 한 뒤 흙더미를 쏟아 붓고 있었을 뿐이다. 9개월이 지난 지금 현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 17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면의 한 삼거리 앞. 퇴계원면은 별내면 바로 옆에 있는 마을이다. 쌀쌀한 날씨 속에 한 노동자가 마스크를 쓰고 골재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덤프 노동자 차량사고를 보상하라'는 내용의 푯말을 어깨에 걸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은 10년간 덤프트럭을 몰았다는 윤아무개(42)씨였다. 차가 쌩쌩 달리는 삼거리 한켠에서 그는 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을까.

신호수 없는 골재장, 덤프 전도사고

24톤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윤씨는 지난달 5일 인근 아파트 현장에서 싣고 온 골재(자갈과 모래)를 이날도 어김없이 용두산업 골재장으로 날랐다. 골재를 갖다 부은 횟수만큼 골재값을 받을 수 있다. 이날 여덟 번째로 흙을 붓는 와중에 덤프트럭이 운전석 쪽으로 기울더니 급기야 차량이 왼쪽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당시 차량을 유도해 주고 지반 상태를 확인해 주는 신호수는 없었다.
 

차량 전도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5일 모습. 사진제공=건설노조

사고 책임 떠넘기는 사업주

이날 사고로 인해 윤씨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고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문제는 차량 수리비였다. 교체해야 할 부품만 무려 110여개. 수리비로 무려 4천500만원에 달하는 견적이 나왔다. 하지만 윤씨는 수리비를 내지 못해 2개월 가까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회사에 차량 수리비의 절반이라도 부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 입장은 완강하다.
용두산업 관계자는 “예전에도 차량이 전도된 적이 있지만 모두 운전미숙으로 처리돼 보상을 해 준 적이 없다”며 “이번 사고는 차량 결함과 운전미숙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비슷한 사고가 있었지만 차량 수리비를 보상해 준 적이 없는 데다 사고의 원인을 운전미숙으로 본 것이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24톤 덤프트럭은 한쪽 지반이 약간이라도 기울어져 있으면 쉽게 전도된다”며 “신호수만 있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윤씨는 덤프트럭을 10년이나 운전했다. 단순히 운전미숙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파산위기 놓인 덤프노동자

윤씨는 지난해 6월 24톤 중고 덤프트럭을 구입했다. 캐피털을 통해 3년간 할부를 받았고 매달 171만원을 갚아야 한다. 하지만 사고 이후 두 달 가까이 일을 하지 못해 파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현재 노부모와 세 명의 자녀, 아내까지 부양해야 한다.
건설노조 서울북부건설기계지부 관계자는 “사업장 안에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사업주가 보상을 못하겠다니 분통이 터진다”며 “차량 수리비의 절반도 안 되는 500만원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에도 인근 한 골프장 공사현장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사업주는 차량 폐차비용과 덤프트럭 운전자의 병원 입원치료비, 일을 못한 2개월 동안의 생계비까지 보상했다. 같은달 한 레미콘 공장에서 발생한 전도사고에서도 해당 회사가 수리비 300만원을 지불했고, 지난해 11월 어린이 대공원 공사현장에서 발새한 차량 전도사고에서도 회사측이 수리비 2천700만원과 치료비 100만원을 부담했다.
그럼에도 용두산업은 윤씨가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건설기계 이해하는 신호수 배치돼야

현행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221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덤프트럭 같은 차량계 건설기계가 넘어지거나 굴러 떨어져 노동자에게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 신호를 유도하는 자를 배치해야 한다. 또한 지반의 부동침하방지 등 필요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윤씨가 사고를 당한 현장에는 신호수도 없었고 사업주도 비용을 이유로 신호수 배치를 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덤프차량은 흙을 부을 때 무게중심이 뒷바퀴에 쏠리기 때문에 지반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아 있으면 쉽게 전도된다”며 “건설기계별로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신호수가 현장에 반드시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2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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