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노조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공광규(48)씨가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사진)를 펴냈다. 23년 전에 등단해 첫 시집 ‘대학일기’를 낸 이후 다섯 번째 시집이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삶과 시골인 고향(충남 청양)에 대한 기억, 도시와 시골의 경계적 삶에 대한 일상을 소박하고 쉽게 형상화했다.
공씨는 시편마다 우리네 삶의 상처와 회억을 고스란히 스케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도시 노동자의 비극을 감동적인 슬픔으로 전한다.

“당신 창의력이 너무 늙었어!”/ 사장의 반말을 뒤로 하고/ 뒷굽이 닳은 구두가 퇴근한다// 살 부러진 우산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굴욕의 나이를 참아야 한다고/ 처진 어깨를 적시며 다독거린다…중략…빗물이 들이치는 포장마차 안에서/술에 젖은 몸이/ 악보도 연주자도 없이 운다.”(시 ‘몸관악기’ 중)

‘구두 뒷굽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일을 해도 나이가 들면 임금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내치는 자본의 속성과 생산 수단이 없기 때문에 ‘굴욕의 나이를 참으며’ 견뎌야 하는 노동자. 시인은 비가 들이치는 포장마차에 시의 주인공을 들여보내 술을 몸이 젖을 정도로 먹이고 울림으로써 비극을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다. 현대의 도시화와 자본의 산업화로 파괴된 가정의 안타까움을 ‘얼굴반찬’으로 형상화한다.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중략…이런 얼굴들이 풀잎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가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얼굴반찬’ 중)

이 시는 지난해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현대문학)로 선정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하기 위해, 아들과 딸은 학교를 가기 위해, 아내는 나중에야 밥을 먹는 우리네 일상. 각자 일을 보러 따로따로 ‘사료처럼 밥을 퍼 넣는’ 자본화된 도시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결국 아무리 맛있게 만든 ‘고기반찬’도 식구들과 같이 먹지 않으며 ‘풀잎반찬’보다 못하는 것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다.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는’ 것이 도시의 삶인 것이다.
시 ‘놀란 강’에서는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 같은 강,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 같은” 아름다운 강을 뜯어고쳐 운하를 만들겠다는 현 정부의 대형 토목공사 계획에 강들이 “쇠붙이와 기계 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이라고 경고한다. 산천을 개발의 대상,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강을 마구 파헤치고 망가뜨려도 좋은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80년대 대학 현실을 담은 그의 첫 시집 ‘대학일기’(1987)는 80년대 후반 대학 신입생들에게 선배들이 권하는 권장도서가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시집 ‘마른잎 다시 살아나’(1989)에서는 현실변혁 과정에서 좌절한 영혼의 부활을 노래했다. 전작 ‘지독한 불륜’(1996)에서는 자본과 권력의 불륜을, ‘소주병’(2004)에서는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우리 아버지들의 삶을 담아냈다.
공씨의 선배이자 오랜 문단 동지인 도종환 시인은 “좋은 시는 어렵지 않다. 좋은 시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모순 앞에 정직하고 진솔하다. 공광규의 시가 그렇다”고 평가했다. “가혹한 운명에 대해 노래하면서도 꽃나무 한 그루 옆에 세워 두고 상처와 아픔을 불교적 서정으로 덮는 내공도 깊을 뿐 아니라 흔들렸다가는 다시 수평으로 돌아오는 수면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는 사유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매일노동뉴스 1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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