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부 영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하부영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노동사회> 11월호에 기고한 원고를 전문 그대로 소개한다. 하 본부장은 노동운동가로 활동한 지난 21년을 되돌아보며 “노동운동은 실패했다”고 솔직히 인정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민주노총은 정치적 조합주의를 선언하고 준정치투쟁체 또는 준정당조직으로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더 이상 위탁정치를 그만두고 ‘노동대중의 직영정치 시대’를 열자고 역설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하 본부장은 이 원고를 쓴 뒤 지난 7일 울산지법에서 열린 이랜드투쟁 등 지역투쟁 병합재판에서 3년 실형을 받아 구속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 하의 ‘노동운동’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편집자주>



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이신 장태원 선생님은 지역에서 존경받는 원로이시다. 작년에 치러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 기념행사에서 ‘87 노동상’ 초대 수상자로 선정될 만큼 존경을 받고 있으며, 현재도 열심히 사회운동을 하고 계신다. 

“잘못된 길을 너무 멀리 왔는데…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가게”

각종 지역 행사나 집회에서 자주 만나 뵐 수 있었는데, 노동운동 후퇴기에 안달해도 잘 안 되는 민주노총과 이러저러한 고민에 빠진 나의 모습을 지켜보시다가 안타까웠는지, 올해 초 어느 날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하 본부장 잘 안되지? 노동운동이 잘못된 길을 이미 너무 많이 걸어 왔는데 지금 고치거나 바로잡는 게 더 힘들 거야. 되돌아가라고.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출발하는 게 훨씬 빠를 거야.”

순간 머리가 텅 비워지고 순식간에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여러 가지 고민과 의문의 실타래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반성’이니, ‘혁신’이니를 남발하며 지적하고 남의 탓만 하며 문제만 들추어냈지만, 스스로 해결할 힘을 갖지 못한 나를 발견한 것이다. 단기필마(單騎匹馬)로 거대한 풍차에 맞서 싸우는 돈키호테 같은 나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았다.

더 이상 하소연하고 사정하는 운동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이때 굳혔다. 일상 시기의 운동보다는 선거 때만 정파를 동원하여 세력을 동원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데 익숙해진 현재 운동의 주류세력은, 비판과 독설을 퍼부으며 기득권을 버리라며 혁신을 주장했던 내가 얼마나 귀찮았을까.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은 시절을 너무 길게 보냈다.

21년 전 처음 출발했던 그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결심을 그때부터 했다. 조합원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자.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상층과 정파를 바꾸는 길은 대중들의 힘으로만 가능하며, 대중들의 요구와 지향에 어긋나버린 현실과 노동운동 및 진보정치운동은 대중들에 의해 바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개인 출세주의자’로 비치는 활동가들의 모습

선생님은 나에게 하방(下放)을 하라는 깨달음을 준 것이다. 노조간부들과 활동가들에 대해 쌓인 조합원 대중들의 엄청난 불신을 치유하지 않는 한, 노동운동의 전망은 없다는 것을 지적해주신 것이다.

2003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사상적 혼란으로 활동을 접고 방황하며 3년째 조합원들을 만나 노동운동 무엇이 문제인지를 물으러 다닐 시기였다. 하루는 의장조립공장에 가서 잘 모르는 조합원을 붙잡고 “노동조합 무엇이 문제인가”를 물었다. 대뜸 “진짜 몰라서 묻느냐”고 되물었다.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답변을 피했다. 그 후 몇 차례 더 만날 때마다 물었지만 답변을 안 해주다가, “진짜 알고 싶으면 여기 앉아서 10분만 저기 커피자판기 통로를 지켜보라”고 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남들 한창 일하는데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전·현직 대의원과 대표들, 전직 위원장과 상임집행부들, 회사 관리자들과 활동가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조합원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는지 알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하며, 노조 활동가들의 변한 모습을 지켜 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있는데 둘러봐요. 노동조합 만들어 자기들 편한 일로 다 빠져 나갔지. 위원장이나 간부 좀 했다하면 구청장이나 국회의원 출마하고… (운동을) 개인출세를 위해 한 것이지, 조합원들은 그대로잖아요.”

이러한 그의 대답을 들으니 비수로 가슴을 찔린 듯한 느낌이었다.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세력화’가 개인의 출세 도구로 비춰지는,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던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는데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현장조직과 정파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건 것이다. 더욱이 파업투쟁에서조차 자신들을 기계적인 동원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원 대중들의 신뢰를 새롭게 회복하지 못하는 한 노동운동의 전망은 암울할 뿐이다. 이제라도 기득권과 자리다툼을 던지고 현장 속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 모범을 세우며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노동운동은 희망이 없다. 

노동운동은 실패했다, 전망을 잃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운동의 가장 큰 실패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터져 나왔던 노동대중들의 요구와 지향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를 했다.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며, 이를 ‘노동해방’으로 규정하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21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은 900만에 이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면서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성장은 하되 고용이 감소하는 시대에, 실업자는 넘치지만 한편에서는 세계 최고 장시간 노동에 지쳐 과로사로 죽어 나가고 있다. 세계 최고의 노동재해 사망률을 자랑하는 ‘살인공화국’이자, 정규직노동자 70% 이상이 빚더미 올라 있으며, 사교육비에 등골이 빠지고 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의 노동운동을 ‘실패’로 규정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 민주노조운동이 중산층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수준 낮은 운동에 편승하여 조합원들은 내 집 갖기 운동에 동참했고, 노동자들은 빚더미에 올라 평생 일해 번 돈을 건설업자에게 갖다 주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들었다.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전통적인 착취구조의 본질을 혁파하는 데 접근하지 못했고, 단기적·소아적 실리주의에 몰입하는 노동운동의 부패와 타락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속에서 1995년 민주노총을 창립하며 세워냈던 ‘산별노조 전환’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노동운동이 가야할 방향은 자꾸만 흔들렸다. 2008년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의 75%가 산별노조 소속으로 전환됐음에도 오히려 노동운동은 흔들림을 넘어 공황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산별노조가 강조될수록 민주노총은 약화되는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산별 시대의 민주노총의 위상과 역할, 산별노조와 민주노총 간의 유기적 관계를 재정립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또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근간으로 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최근의 분당 사태를 맞으면서 더욱 침체를 겪고 있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분열과 해체의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분열 이전부터 현장에서는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이 이미 사문화된 상태였으며, 이에 더해 이제는 ‘두 개의 진보정당’이 노동자들의 양 팔을 잡아당기는 고문으로 인하여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투표거부 사태가 극심해질 것이다. 이대로라면 2010년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정파별 입장 차이에 따른 분열의 골이 깊어질 것이고, 민주노총과 산하조직 간부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합원들은 줄서기를 노골적으로 강요받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일방 추진과 경기불황이라는 외부적 변수보다, 노동운동 조직 내부에서 전망과 좌표의 상실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노동자들에 대한 분할지배 정책에 대응력이 없는 상태에서 산별노조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진보정치활동은 민주노총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으니, 전망을 상실한 노동운동의 실패라는 규정이 그리 가혹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뻥 파업’에 공모했던 모두가 솔직해져야 한다

산별시대 민주노총은 새로운 전망을 세웠어야 한다. 산별노조와 민주노총 간의 위상과 역할을 새로 정립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노동운동의 총체적인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노선에 따라 근본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맨 먼저 활동가 스스로 실사구시(實事求是)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정파 간 대립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실력과 수준을 넘어서는 ‘내부 정치용’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외치며 과도한 경쟁으로 동력을 고갈시켰음을 인정해야 한다. 검증되거나 확인되지 못한 주장, 조직의 준비 상태와는 전혀 별개인 ‘뻥 파업’의 남발을 중단해야 한다. 80만 조합원 중 총파업 돌입이 가능한 조직은 23만이라는, 눈에 보이는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집행부를 장악했을 때 투쟁력을 과시하기 위한 무리한 투쟁계획을 제출하거나, 총파업 찬반투표조차 실행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민주노총 총파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기와 기만, 대중들의 상태와 전혀 별개로 전개되는 총파업 논의에도 제동을 걸지 못하는 구경꾼 조직도 이젠 솔직해져야 한다. 민주노총 조직의 상태도 파악하지 못하며 총파업을 조직할 능력도 없는 민주노총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정파들도 말로만 파업하지 말고, 스스로 조직한 파업 가능한 노조들과 연맹들의 명단을 제출하며 주장을 해야 한다. 당위성만 앞세우는 총파업 주장은 거짓말이고 사기이며, 민주노총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주문하는 대로 나오는 자판기가 아니다.

투쟁 동력과 재정도 부족한 민주노총이 먼저 총파업을 제안하는 일은 당분간 자제되어야 한다. 산별노조와 연맹이라는 투쟁주체가 총파업을 결의해 오면 민주노총은 정치적으로 유리한 담론형성에 나서면서, 집중시기를 조정해주거나 엄호·지지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투쟁의 주체동력이 없는 현재의 총파업 모습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억지로 쥐어짜기만 했던 결과일 뿐이다.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투쟁’을 한다면 공공운수연맹과 공공서비스노조가 먼저 파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출발부터 잘못된 투쟁이 실패로 귀결되면 평가에서 책임과 원망은 모두 민주노총 탓으로 돌려지고, 해당 주체는 회피하는 비겁한 구조를 벗어나야만 노동운동이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해야 산다

투쟁의 주체가 산별노조와 연맹이 된다면 민주노총의 위상과 역할은 완전히 변해야 한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와 이명박 정권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노동조합을 ‘정치사회적 조합주의’로 내몰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사회적 조합주의를 선언하고 ‘준정치투쟁체’로, ‘준정당조직’으로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 경제적 조합주의에 길들여져 단기적·소아적 실리주의에 매몰된 기업별 노조의 조합원 대중들에게 “민주노총은 정치투쟁과 사회연대활동을 하는 조직임”을 분명하게 알리고 교육하여야 한다. 노동조합이 임금인상과 기업복지 향상을 넘어서는 정치활동을 나서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가진 대중들에게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는 중앙정부와 재벌에 대한 투쟁을 책임지고, 지역본부와 지역조직들은 지방정부와 지역토착기업들에 대한 투쟁을 책임지는 구조로 역할과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만성 재정 부족으로 지역조직들을 관장하고 책임질 수 없는 소규모 산별노조와 연맹들은 긴급하게 대규모 산별노조와 통합하거나 해체해야 한다.

이를 산별 지역지부와 별개의 시·도별 지역노조로 재편하여 5천 명에서 2만여 명을 구·군별 지부로 편성할 수 있다면, 지역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복지·주택·교육·훈련 등 지방정부의 책임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노사관계가 규정되는 건설·버스·택시·학교와 기관의 일부 공공부문이 합세하면, 지역에서 수준 높은 정치투쟁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금속노조 산하 지역지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통합을 넘어서, 소규모 기업지회들을 통폐합하여 공단지회와 지역지회로 재편하여 공단과 지역의 노동시장에 개입토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활동영역이 공장 담벼락을 넘도록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지역 노동시장의 미조직,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의 모범도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중앙교섭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지역협약·업종협약·기업협약·공단협약 등의 형태들도 인정하여, 연대와 투쟁이 활발한 조직과 지역에서 모범을 세우고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들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지역노조와 지역지부는 전노협 시대처럼 지역연대의 재활성화를 일으키는 바람이 되고, 현장과 지역의 힘은 산별노조의 강화된 힘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업별 협약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그 특성을 잘 살리는 ‘한국형 산별 이행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유럽과 한국의 사회조건이 천차만별하고 정권과 자본이 협조할 리 만무한데, 우리가 유럽형 산별노조와 유사한 길을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산별노조는 전체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투쟁의 구심을 강화하는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과 재정을 업종·지역·현장으로 다시 돌려줘야 한다.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두지 못하는 산별노조는 한국에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금속노조 중앙교섭에서 확인되고 있다. 기업협약에 기반한 현장의 힘을 규약과 결의로 중앙에 집중시킬 수 없다.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기에 집행부 정파와 지도부 교체로 절대 해결할 수 없으며 시간만 지연될 것이다.

또한 지역과 현장에 기반한 투쟁은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정의로운 노동운동으로 재인식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노동조합 가입이 천민자본주의 착취구조를 혁파하고 민주주의 확대에 기여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인식될 수 있을 때만이 미조직·비정규 조직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퇴근하면 지역주민으로서 노동자들이 생활공동체·소비공동체 등 새로운 노동자문화를 지역에서 구축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은 재정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와 가족, 지역주민과의 연대 강화를 통해 이들을 노동운동이 고립을 돌파하고 천민자본주의 지배질서를 혁파하는 데 나설 때 우군으로 조직해야 한다. 

위탁정치 청산하고 ‘직영정치’ 시대로 가자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이 분열하여 분당 사태를 맞이한 2007년 대선 시기까지를 1단계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편의상 규정해보자. 이 기간은 노동자가 주인과 주체로 서지 못하고 정파에게 권력을 위임한 ‘위탁정치의 시대’로 보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동문제를 민주노총에게 의존하고, 민주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민주노동당에게 의존하며, 자웅동체가 되어 상호 시너지는커녕 퇴행과 퇴보를 거듭해왔다. 지난 10년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양상은 선거 시기 선거운동 동원과 쥐어짜는 투표강요, 세액공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향은 이게 아닐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중심성과 계급성은 후퇴하여 시민 대중을 겨냥하는 중산층 정당으로 무게중심이 이동되고 있으며, “민주노총당”이라고 비판하며 분당해 나간 진보신당 또한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한국사회당을 비롯한 사회주의 지향 노동계급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 모임 등 5~6개의 진보정치세력이 분열하여 경쟁하는 ‘진보정당 다당제 시대’가 도래했다. 신자유주의 강화와 대공황 구조조정 시기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도움은 못 줄망정 민주노총의 분열을 촉진하고 노동자들에게 이쪽저쪽으로 줄 세우기에 골몰하는 자칭 진보정치세력들이 노동자들을 골치 아프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은 배타적 지지 방침에 대한 소모적 논쟁보다 정파와 당 상층에만 의존하는 위탁정치를 청산하고 노동자가 주체로 서서 노동자 중심성을 확고히 하고 사회변혁성을 명확히 하는 ‘노동대중의 직영정치 시대’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위탁정치와 확연히 구분되는 직영정치야말로 명실상부한 2단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이다. 2010년 진보정치세력이 대연합과 대통합을 사보타지하고 파탄의 위기를 자초한다면, 이젠 민주노총이 거듭나서 노동자 중심성과 계급성을 확고히 하고,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를 주도하는 대중정당을 통한 직영정치 시대를 적극 구상해 나가야 한다. 

교만과 무지의 세월을 뒤로 하고,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나부터 무던하게 남의 탓을 해왔다. 장태원 선생님의 한마디에 나는 너무 많은 잘못을 깨달았고, 나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서 남에게 먼저 바뀌고 변화하라는 주문을 쏟아냈던 것이 부끄럽다. 나 자신부터, 내 가정부터, 내가 속한 노조와 회사, 내가 살고 있는 지역부터 바꿔야 한다. 그 첫 시작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현장 속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내가 기득권을 버리는 모범이 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믿거나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세력화의 실패에 책임이 있는 분열주의적 정파들과 운동 상층부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탓하기 위해서라도, 대중에 기반한 건강한 힘이 있어야 한다. 나부터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려했던, 오만하고 교만했던 무지의 세월을 뒤로하고,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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