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수입과일을 방역·소독하는 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6명이 소독약에 집단중독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산업안전공단은 8일 “경기도 평택 소재 훈증소독시설에서 하역 및 운반작업을 하는 노동자 6명에게서 손발저림·시력장애·보행장애 등 신경계질환이 지난 7월 집단적으로 발병함에 따라 직업병 경보를 발령하고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집단중독 사고는 7월23일 방역업체의 실수로 외부와 공기차단이 제대로 되지 않아 2차 소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회사는 두 차례 소독작업으로 작업시간이 지연되자 정상적인 환기절차를 무시하고 직원들을 바로 투입해 작업을 시켰다. 특히 무더위가 시작된 7월부터 냉장온도가 적정하게 유지되지 않자 일부 창고만 개방해 소독으로 인한 가스가 남아 있었던 것이 원인이 됐다. 제품 소독 후 출고하는 과정에서도 방독마스크 등 제대로 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단은 “환기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적절한 보호구 착용 없이 고농도의 메틸브로마이드에 노출돼 집단중독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밝혔다.

메틸브로마이드는 주로 토양이나 저장식품의 훈증제로 이용되는데, 사람에게 노출되면 경련이나 어지럼증·무력감·전신마비 등 신경독성 증상을 일으킨다. 고농도 메틸브로마이드에 잠시라도 노출되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공단 관계자는 “메틸브로마이드를 사용해 훈증소독을 할 경우 작업 과정에서 소독제 누출을 철저히 막고 환기를 충분히 해야 한다”며 “작업 노동자는 방독마스크 등 보호구를 착용하고 건강이상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산업의학전문의나 신경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틸브로마이드'란?
훈증소독제로 강력한 독성물질
방역노동자 관리는 허술, 2000년 이후  중독사고 9건 발생
농산물 수입량이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입 농산물의 방역·소독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는 허술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8일 농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수입 농산물은 2000년 2천311억3천848톤에서 지난해 2천597억3천875톤으로, 지난 7년간 300억톤 가까이 증가했다. 수입 농산물 방역·소독업체도 2001년 22개에서 2008년 9월 현재 32개로 급증했다.
 

곡물이나 과일 같은 농산물은 수입 직후 배송 과정에서 제품이 상하거나 벌레가 슬지 않게 전문방역업체가 훈증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훈증소독제가 메틸브로마이드라는 매우 독성이 강한 화학약품이다.
 

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메틸브로마이드는 무색무취의 투명한 액체로 상온에서는 가스 상태로 존재한다. 메틸브로마이드 가스나 액체가 눈에 닿으면 결막염을 일으키고 피부에 닿으면 붉은 반점이 나타난다. 반복해서 접촉하면 비듬이나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염을 일으키고 피부화상이나 물집이 생기기도 한다.
 

급성중독 증상으로는 대개 두통과 구토·언어장애·경련을 일으키고 고농도로 노출되면 의식을 잃고 사망한다.
만성노출시 팔다리의 감각이상·정신착란·의식상실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회복된 이후에도 현기증·우울증·근심 등 중추신경장해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등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 메틸브로마이드 중독으로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는 2000년 이후 모두 9명이다. 공단 관계자는 "메틸브로마이드는 단기간 노출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강력한 독성물질로 우리나라에서 고농도 흡입에 따른 사망사고와 매우 심각한 후유증상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며 “올해 또다시 중독사고가 발생한 것은 방역·소독업종의 직업병 예방사업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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