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는 마루. 이번주 <현장을 가다>가 찾은 곳은 마루 제작업체다. 마루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톱질과 대패질을 해야 한다. 원목과 완성된 마루를 이러저리 옮겨야 하고….

오랜만에 현장체험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현장체험을 한 뒤 일당을 받는 TV프로그램처럼 말이다. 일당 대신 열대야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시원한 마루'를 주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했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거의 100% 자동화된 공정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원자재나 상품을 지게차로 옮기거나, 에러가 발생한 자동화라인을 손보는 정도의 일을 했다. 나머지는 모두 '기계'가 했다.

“생산라인이 자동화돼 있어 체험할 것은 없어요. 제어시스템 만지는 거요? 에이, 그건 안 되죠.” 무재해 기록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현장노동자들은 기자의 현장체험을 '원천봉쇄'하고 '견학'만 허용했다.

지난 14일 <매일노동뉴스>가 인천시 서구 가좌동 동화기업과 인근에 있는 동화자연마루 생산공장을 찾았다. 40%의 국내 마루시장 점유율과 자동화된 라인, 폐자재를 활용하는 친환경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자부심은 컸다. ‘산업재해 없는 회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원자재가 급등하면서 최근 공장가동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버려진 나무조각들이 ‘마루’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파쇄공장. 이곳에서는 원자재를 자갈 정도 크기의 ‘칩’으로 잘게 부수는 작업이 진행된다. 마루의 원자재가 되는 잡목과 육송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마치 벌목장을 연상케 했다. 톱에 잘린 채 실려온 원목 더미뿐 아니라 폐목재 더미도 있다. 한켠에는 이미 ‘칩’이 된 자재도 보였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중에는 아예 현지에서 칩을 만들어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버려진 가구와 건설자재 등 폐목재는 파티클보드(PB, Particle Board)로 재활용되고, 원목은 중밀도 섬유판(MDF)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PB는 싱크대 등 저가가구, MDF는 보다 고품질인 마루·장롱의 원자재가 된다.

“마루나 가구자재를 만드니까 원목을 잘라서 환경을 훼손한다는 인식도 있는데요.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폐목재를 최대한 활용하고, 원목을 사용하더라도 큰 나무를 살리기 위해 가지치기한 것을 사용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오히려 친환경적입니다.”

임윤선 동화기업노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실제 이곳에서 생산하는 재활용 PB는 한국산업인증규격에 따라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이 적은 친환경보드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생산된 MDF를 원자재로 한 동화자연마루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능률협회인증원에서 인정한 친환경상품에 채택되기도 했다.

원자재들은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마치 보신각종을 거꾸로 뒤집은 모양을 하고 있는 파쇄기로 들어가 잘게 쪼개져 칩으로 변한다. 이 칩들은 벙커를 통해 동화기업 MDF 1공장에 있는 선별실로 들어가 고철·유리 등의 이물질과 분리된 뒤 해섬기에 들어간다. 해섬기는 칩을 톱밥보다 작은 섬유질로 빻은 뒤 고열로 찌고, 화학물질을 배합한다. 이른바 ‘열합’ 과정이 진행된다.

나무분진으로 호흡이 쉽지 않았던 파쇄공장과는 또 달랐다. 1공장에서는 독한 냄새가 코와 눈을 자극했다. 눈물까지 나왔다.

“열합과정에서 화학처리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재질이 거칠게 되거든요. 그래도 환경유해물질 제로급의 상태로 제조하기 때문에 인체에 별다른 영향은 미치지 않습니다.” 1공장에서 일하는 김화수(45)씨의 말이다.

열합처리를 한 칩들은 성형기와 예압기를 거쳐 두께 18mm, '1200×2400mm' 크기의 MDF판자로 변신한다. 18mm의 판자는 몇 번의 프레스 과정을 거치면 15mm 두께로 얇아진다. 학교 교실과 복도에 사용되는 마루다. 이를 좀 더 줄이면 8mm가 되는데, 일반 가정이나 사무실에 사용된다.

파쇄기를 거친 칩이 1공장에서 하나의 MDF로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분이면 충분하다. 철저하게 자동화된 탓이다. 1공장에서 3조3교대에 따라 근무하는 한 조의 인원은 12명. 이 인원도 대부분 공장안 제어실에서 생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니터를 보며 상황을 체크한다. 두세 명만이 제어실 밖으로 나와 불량품을 골라내는 일을 한다.






40분만에 완성된 마루, 그래도 안전이 최우선

MDF 1공장에서 생산된 원자재는 200여미터 떨어진 동화기업의 계열사 동화자연마루로 향한다. 동화기업에서 중간재를 만들어 공급하면, 동화자연마루에서 마루를 완성하는 것이다.

동화자연마루 공장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공정이 ‘모양지 입히기’다. 마루라고 하면 나뭇결 무늬가 자연스레 나올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목 마루일 경우다. 재료를 빻아 만든 MDF로 제조된 마루는 나뭇결 무늬의 모양지와 후면지를 앞뒤에 붙여야 한다.

동화자연마루 공장도 MDF 1공장처럼 철저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모양지를 붙이는 공정에 지게차 기사를 포함해 4명만이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중 한 명은 기계근처 철탑에 설치된 제어장치 화면을 보면서 가동상황을 점검한다. 프레스 기계가 쉴 새 없이 MDF판의 앞면과 뒷면에 차례로 종이를 붙이고, 다시 한번 압착해 골고루 접착한다.

마루 모양지 붙이기 생산라인 휴게실에서 잠시 찬물을 들이키는 사이. 공장 전경을 찍기 위해 사진기자가 노란색 철탑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조 관계자들과 현장 근무자들이 급히 제지했다. “하마터면 우리 팀 무재해 기록이 깨질 뻔했습니다.” 사진기자가 휴게실에 벗어놓은 안전모 착용을 깜박한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동화기업과 동화자연마루에서는 화재·협착 등의 산업안전사고가 대폭 줄어들었다. 지난해 두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요양에 들어갔다. 한 명은 몇 년 전에 다친 상처가 재발했고, 나머지 한 명은 계단에서 발목을 삐었다.

모양지를 붙인 마루는 옆에 있는 공정으로 이동해 자연건조시킨 다음 10개의 직사각형 조각으로 다시 잘린다. 동화자연마루에서 생산하는 가정용 마루의 크기는 총 6가지. 가정에서 조립할 수 있도록 옆면에 홈을 판 뒤 크기별로 포장라인으로 옮겨진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포장라인에서 갑자기 에러가 발생했다. 차곡히 포장박스 안에 쌓여야 할 마루조각들이 박스를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곧바로 점검한 뒤 재가동했지만 또다시 에러가 발생했다. 결국 라인을 멈추고 주위에 있던 노동자 전부가 모여 기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다가서자 노동자들이 흠칫 놀라며 쳐다봤다. 임윤선 위원장이 자제를 부탁했다. “생산라인 주변에 있는 노란선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생산라인을 따라 노란선이 그어져 있다. 생산라인에는 센서가 있어 제3자가 노란색 라인을 넘으면 감지기가 작동해 가동이 멈출 수도 있다. 특히 라인을 점검하고 있을 때 외부인이 접근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져 협착 등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저도 매일 현장을 순회하지만 노란색 라인에 근접하지 못합니다. 멀리서 수고한다고 인사만 하고, 급한 일이 있으면 큰소리로 불러야 합니다.”

포장라인에서는 각 가정이나 건물에서 조립되기 직전의 ‘강화마루’가 미리 준비된 포장지에 차곡차곡 쌓인다. 공장에 투입된 중간재가 강화마루로 포장돼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5분. MDF 1공장에서 걸린 25분을 포함해 조그마한 칩이 40분만에 완성된 제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마루들은 협력회사의 조립작업을 거쳐 비로소 각 가정이나 학교·사무실에 깔리게 된다.





원가상승·장마철에 가동중단…“폐목재 재활용대책 필요”

동화자연마루 공장을 빠져나와 샤워실로 향하면서 박천기 노조 사무장은 “친환경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산업안전에 최대 중점을 두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마루판매 1위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올해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고용불안을 느낀 한 해였다.

국제적인 원자재가 급등에 따라 원자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장마철이 겹치면서 벌목작업도 중단됐다. 파쇄공장에 쌓인 원자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지난달에는 10여일 간 공장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가동중단과 기계정비작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인력감축이나 감봉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러다가 고용불안이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국내 원목 생산이든, 해외에서 수입해 오든 한계가 분명합니다. 국내에서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폐목재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줬으면 좋겠어요.”

박 사무장은 “폐목재를 소각하거나 매립하면 그게 다 환경오염이 된다”며 “우리가 재활용하게 되면 환경에도 도움되고 고용불안도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말했다. 


 "폐목재 재활용, 고용안정에 도움"
64%는 소각 또는 매립…"정부 관리·감독 강화돼야"
임윤선 동화기업노조 위원장의 가장 큰 고민은 원자재 부족에 따른 고용불안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달 공장가동 중단으로 느낀 불안감은 외환위기 때 인력감축을 겪은 뒤 10여년만의 일이었다. 임 위원장은 "이번에는 공장가동 중단에 그쳤지만 고유가·고원자재가 시대에 대책이 없으면 고용안정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털어놓았다.
 

동화기업 노사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폐목재 재활용의 체계화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목재 자급률은 9%로 나머지 90%는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국제 원자재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폐목재 재활용을 통해 국내 목재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목재재활용업체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폐목재는 연간 511만5천톤. 그 중 재활용되는 양은 183만7천톤으로 36%에 불과하다. 나머지 327만8천톤은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건설현장이나 가정에서 나오는 폐목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관청에 신고한 뒤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거친 폐목재만이 동화기업과 같은 나무자재 전문회사로 옮겨져 재활용된다.
 

문제는 절차가 번거롭고 까다롭다는 것이다. 비용에 부담을 느낀 건설업체나 각 가정에서 폐목재를 무단투기하는 일도 많다. 상당수 건설업체는 환경오염을 이유로 정부에서 규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목재를 '연료용'으로 팔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폐목재들은 땅에 묻히거나 소각되면서 토질오염이나 대기오염의 원인이 된다. 임 위원장은 "국내 폐목재만 100% 수거해 재활용해도 비싼 자재수입 비용과 환경오염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며 "폐목재 무단투기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합원 440명에 산안부장만 3명
노사 안전·보건협약 체결, 매달 합동조사
동화기업 노사는 최근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장이나 팀별로 달성된 무재해 기록을 회사·계열사 전체의 무재해 기록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다. 실제로 10여년 동안 협착과 화재와 같은 사고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노사는 지난 6월 안전·보건협약서를 체결했는데 "안전은 경영진의 책임"이라는 부분을 명확히했다. 협약서에는 △회사는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노조는 적극 협력한다 △노사는 근로자가 회사의 안전규정을 준수하도록 지도해야 하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임을 재확인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사는 협약서에 따라 매달 합동조사를 실시한다. 산재나 안전사고를 은폐할 경우 관련자를 중징계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노조활동 중에서도 산재 예방활동은 철저하게 보장받는다. 조합원 440명 규모의 노조인데도 산업안전부장이 3명이나 된다. 이들은 전임간부가 아니지만, 산업안전을 위한 활동일 경우 자유자재로 업무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노조 관계자는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 있기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에 협착 등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노사 모두 품질보다도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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