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퀴한 냄새가 밀려왔다. 1층 현관에 들어서자, 눅눅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숨쉬기조차 쉽지 않다. 밖에서 보기에 일반 사무실 같은 평범한 3층 건물. 경남 김해시 어방동에 있는 부산경남양돈조합 김해축산물공판장이다.
미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인 요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5일 김해축산물공판장 1층에 있는 도축장을 찾았다.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힘들죠. 아이에게도 말도 못해요. 할 필요도 없고….” 13년째 소도축을 하고 있는 강성호(38)씨. 그는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하면,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고 에둘러 말했다. 소의 목숨을 끊고 생살을 찢는 일을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좋지 않은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강씨도 일을 하고 임금을 받고사는 수많은 노동자 중 한 명일 뿐이다. 부인과 아이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 그가 도축을 멈추면, 우리 식탁에서 쇠고기는 사라질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가 강씨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감추고 도축작업에 나서지 않는다면….
기자가 찾아간 그날, 공판장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모두 검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반대'.
김순동 김해축산물공판장장은 "지난 4월 미 쇠고기 수입재개 소식이 알려지자, 한 때 소도축 물량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말했다. 쇠고기값 폭락을 우려한 농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팔기 위해 도축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김 공판장장은 "도축은 수수료를 받고 운영하기 때문에 소값 등락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면서도 "소값 하락과 사료값 인상으로 농가 피해가 커지면 도축량이 줄기 때문에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부인은 혐오감이 들어서 현장취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최현석 전국축협노조 경양돈지부장은 연신 이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가야죠.” 그러나 실제 도축작업을 지켜보기란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공판장 1층 도축장에는 20여명의 노동자들이 묵묵히 우리 식탁에 오를 먹을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새벽녘 청소노동자들이 사회적 냉대에도 불구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거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타격에서 세척까지, 피와 살이 튀는 현장
소도축은 소의 목숨을 끊는 타격부터 소독·세척까지 모두 7단계로 이뤄진다. 도축을 위해 팔려온 소는 도축장과 붙어 있는 계류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를 '수탁'이라고 한다. 도축장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김주환(36)씨는 “물먹인 소 문제가 있은 후부터 몸무게를 정확히 재기 위해 하루 수탁을 한 다음 도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계류장에서 하루 머문 소들은 새벽이면 도축장으로 옮겨진다. 벽 하나를 지나면 타격소가 나오는데, 철통을 머리에 쏴 소의 목숨을 끊는 곳이다. 돼지 같은 경우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충격기를 사용해 실신시킨 후 멱을 따지만, 소는 덩치가 워낙 커서 이같은 방법을 적용하기 쉽지 않다.
죽거나 실신한 소가 타격소에서 나오면 멱을 따 피를 뽑아내는 방혈작업이 시작된다. 방혈은 도축에서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소가 죽은 후 어느 시점에, 얼마나 피를 뽑아내는가에 따라 육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10~20초 안에 피를 뽑아내야 한다”며 “죽은 후 피가 굳기 전에 모두 빼내야 육질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방혈 후 소의 거대한 몸체는 갈고리에 매달려 컨베이어를 타게 된다. 컨베이어를 따라 소의 머리와 다리를 자르는 두족절단, 가죽을 벗기는 박피,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내장적출 등의 작업이 차례로 진행진다. 이어 등뼈를 중심으로 소를 이등분으로 갈라내는 이분도축 작업이 진행되고 소독·세척 후 냉장실로 옮겨진다. 냉장실에 보관된 소는 다음날 오전 검사관의 검사와 등급판정을 받고 경매를 통해 팔려나간다.
이같은 작업은 불과 50여미터 안팎의 라인 안에서 이뤄진다. 라인에는 보통 20여마리의 소가 매달려 이동하고, 각 공정별로 작업강도에 따라 2~3명의 노동자가 일한다. 작업에는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칼과 전기톱 등이 사용된다. 항상 칼을 다루는 직업이라 안전사고에도 늘 신경을 써야 한다.
소 한 마리를 도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여분 남짓. 공정이 연속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해축산물공판장 1층 도축장에서는 하루 평균 132마리를 도축하는데, 평균 6시간 정도가 걸린다.
쉽지만은 않은 도축, 이직률도 높다.
도축노동자들은 컨베이어를 타고 옮겨지는 소들을 자르고 가르며 맡은 바 일을 한다. 가까이 다가서자, 소독·세척을 위해 뿌려지는 분말 줄기들이 수증기를 이뤄 뿌연 안개를 만들면서 시야를 가린다. 1층 현관에 들어섰을 때 풍기던 냄새가 수증기를 타고 더욱 강하게 코를 자극했다.
탁연수 김해공판사업팀장은 “도축노동자들은 사업장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도축을 하는 현장이라 외부인이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사업장에 들어오는 것 자체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감이 크다는 뜻이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도축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평균 연령은 30대 중·후반이다. 도축을 가르치는 특별한 기술학교는 없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을 가르치는 '사수'의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운다. 6개월 정도 지나야 일이 손에 익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원이 비정규직이다. 임금은 평균 150만원. 연말에 연간 도축량에 따라 성과급을 받긴 하지만 그리 넉넉한 액수는 아니다. 최현석 지부장은 “김해축산물공판장에서 일하는 총 500여명의 인원 중 250여명이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라며 “대부분 하는 일이 고단하고 임금 수준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지부는 올해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할 계획”이라며 “정규직이 일부 양보를 하더라도 반드시 성과를 얻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들쭉날쭉한 노동시간,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아
강석호씨도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다소 적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전국 대부분의 도축장 임금이 비슷하다”며 “다행히 일이 일찍 끝나는 경우가 많아 대다수 도축노동자들은 오후에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도축노동자들은 보통 6시에 출근해 오후 1시면 퇴근한다. 6시에 출근해 작업장을 점검한 뒤, 7시30분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도축물량을 다 소화하는 시간이 곧 퇴근시간이다. 도축해야 하는 소 물량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노동시간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냉장창고의 최대 보관량이 262마리라서, 보관량에 따라 도축량이 달라진다. 도축된 소가 팔리지 않고 남아 있을 경우 보관된 양만큼 도축할 소의 숫자도 줄어든다. 때에 따라 냉장창고에서 물량이 빠질 때까지 일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날마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도축량으로 보면, 목요일과 월요일이 가장 바쁘다. 김순동 공판장장은 “노동시간을 일정하게 맞춰보려고 해도 쇠고기를 사가는 중개인들의 수요가 금요일이나 화요일에 몰리는 만큼 전날인 목요일과 월요일에 도축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일찍 끝나면 오전 11시에 일을 마치기도 하지만 늦어지면 오후 4~5시가 넘어 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축 후 가공,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축산물 가공공장은 도축장보다 환경이 깨끗하고 쾌적했다. 도축된 소가 부위별로 적게는 10개에서 많게는 37개로 나뉜 뒤, 포장·출하되는 곳이다. 이 공정부터는 정육점이나 가정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위생에 대한 주의도 각별히 요구된다.
공장에 출입하려면 위생복을 입고도 에어샤워를 통과해야 한다. 옷에 묻어오는 분진·먼지 등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가공공정은 등뼈를 중심으로 반으로 갈라져 들어온 쇠고기를 목과 갈비 부분인 전지부와 등심과 안심 등 몸통 부분인 중지부, 엉덩이를 중심으로 한 후지부로 세 등분하는 과정이다. 세 등분된 각 부위는 각각 다른 라인을 타고 이동하면서 뼈와 살을 분리하는 골발작업을 거친 뒤, 껍질이나 지방을 제거한 후 완제품 형태로 고기를 다듬는 정선작업으로 이어진다. 각 제품은 내포장과 외포장을 거쳐 소비처로 배송된다.
고기의 각 부위를 다듬는 것은 주문처의 요구에 따라 다르다. 생산팀의 이상훈(41)씨는 “각 주문처가 용도에 따라 고기를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요구해 온다”며 “오더에 맞게 가공공정을 맞춰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축노동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공판장을 거쳐 도축되는 소는 하루 평균 132마리. 지난해에는 2만9천마리의 소가 이곳을 통해 도축돼 팔렸다. 그 중 어떤 쇠고기는 이미 우리 식탁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축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도축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숨길 수밖에 없고, 자식들에게 얘기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취재를 끝내자 최 지부장은 “이곳 냄새가 몸에 밴 상태에서 버스를 타면 옆 사람이 피하니까 잘 씻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전 취재를 마치고 오후 2시30분발 KTX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기사를 쓰고 있는 느지막한 오후까지, 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만큼 도축·가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렵고 힘겨운 일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새삼 고마움이 느껴졌다.
“수년에서 십수년을 일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사람들이 우리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아요. 다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하는 일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인식이 그렇게 바뀌면 바랄 게 없죠.”
한 도축노동자의 바람이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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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