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보(62)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노동조합과 함께 호흡하며,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던 그가 노사분쟁 조정과 심판을 담당하는 수장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모든 행보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일정에 맞춰져 있다. 과거에는 하지 않아도되는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차별시정위원회가 지난 7월부터 가동된 터라 챙겨야할 사안도 많아졌다. 학계인사가 주로 맡아왔던 중앙노동위원회 수장과 전혀 다른 인생역정을 겪어온 그에 대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크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취임한 지 2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지난 24일 이원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기능과 역할 강화된 노동위원회 ‘수장’

“자유인 이원보 시대는 끝이 났다고 할까요.”

허허, 웃으며, 지난 2개월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이다. 중노위로 오기 전의 삶과 지금은 분명 다른 삶일 것이다.

사실 본지는 취임 뒤 일찌감치 이원보 위원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바 있으나 “기다려 달라”는 대답을 들었다. 업무 파악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7년간 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을 담당해왔지만 중노위원장을 맡은 이상 모든 걸 다 봐야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생소한 심판업무는 물론 관련 판례도 다 훑어봐야 하고. 노동법 공부를 다시 하듯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 역할과 기능이 대폭 확대된 노동위원회 수장으로서 임하는 자세는 역시 노동문제 전문가답게 신중하고도 진지하다. 특히 노동위원회는 지난 7월부터 차별시정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비정규직법의 최대 ‘역작’인 만큼 차별시정 심판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위로서는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게다가 이미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코레일(철도공사)과 농협고령공판장 차별신청 사건에 대해 해당 지노위에서 “차별인정” 판정이 잇따라 나온 상황이다. 농협고령공판장은 벌써 노조측이 재심신청을 한 상태이고, 코레일도 나머지 지방노동위 판정이 나오면 사측이 재심신청을 할 전망이다.

이제 중노위로 ‘공’이 넘겨진 것이다. 

“차별판정 통일성과 보편성 마련하겠다”

“판례 축적도 안 돼 있는 상황에서 근거를 축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중노위는 참고자료도 만들고 연구용역도 주고 외국사례도 살펴왔습니다.”

차별시정 업무를 착실히 준비해왔지만 ‘현실’은 또 어렵고 복잡하다. 특히 같은 사안이라도 개별신청의 특성 때문에 코레일처럼 5개 지노위에서 제각각 다루는 등 차별시정제도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지노위가 각기 통일성이 없는데다 위원이 결정하면 위원장의 개입 여지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중노위와 지노위가 수시협의하고 공통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가능한 한 통일성을 기하고 보편적 기준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중노위 차례다. 재심 준비는 얼마나 하고 있을까.

“일단 판정문을 받아서 내부 연구·토론을 거치고 관련 학자와 연구자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어볼 작정입니다. 경험과 판례가 없는 만큼 가급적 많은 의견을 듣는게 필요합니다. 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자칫 의견이 좁혀질 수 있으니 가능한 한 폭넓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재심에서 지노위 결정이 뒤집힌다면?

“일반 심판사건에서도 그런 판정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다만, 차별사건은 처음이니까 지노위 결정이 어디까지 인정되는냐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겠지요.”

뭐든지 ‘처음’이라서 중요하고, 또한 주목받는다.

“차별시정 통한 비정규직 권익보호가 취지”

코레일과 농협고령공판장의 차별판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첫 판정인 만큼 해당 지노위에서는 연구도 많이 하고 현지조사도 철저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법률의 취지에도 맞추도록 노력했지요. 성과급이 차별영역이 아니라는 등의 반론도 있겠지만 비정규직 보호측면에서 보면 넓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판정입니다.”

이 위원장은 차별사건을 바라볼 때 그 ‘취지’를 중요하게 바라보았다.

“비정규직법의 취지가 차별시정을 통해 비정규직 권익보호에 있는 것이잖습니까? 물론 위원들이 결정할 문제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폭넓게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차별시정제도는 그 자체의 한계로 인해 ‘시정’을 요구받고 있다.

농협고령공판장 사건의 경우 차별신청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해지를 당했다. 차별시정제도는 시정명령의 효과가 무력화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법 이전의 관행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계약해지 기간이 됐어도 판정이 나온 뒤에 판단을 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용자의 노사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직 우리나라는 덜 성숙된 것 같습니다.”

관행을 무너뜨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차별시정 판정기간 동안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벌칙조항을 두고 있지만 타당성을 따지려면 또 시간이 소요되는 게 사실이라는 지적이다.

“계약기간이 지난 사람에게는 시간을 두고 차별판정이 날 때가지 노사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노동자가 안심하고 시정요청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동위를 위한 전문공무원 필요하다”

노동위 사정이라고 만만치는 않다. 차별시정업무 등이 확대됐지만 직원도, 예산도 모자란다. 실제 중노위는 차별시정 업무상 꼭 필요한 전문위원 확보에 애로를 겪지 않았던가.

당초 중노위는 모두 5명의 전문위원 예산안을 올렸지만 기획예산처에서 가차 없이 전액삭감 됐다. 그러다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예산심의에서 간신히 2명만 ‘건졌다’.

“노동위에 자체 인원이 없습니다. 기구도 커지고 기능도 확대됐으면 자체적인 전문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전문역량이 필요하지요. 법에서는 차별시정 전문인력을 10명까지 두도록 했지만 이번에 간신히 2명을 확보했습니다. 그나마 ‘거점’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둘 수 있겠지요.”

이 위원장은 노동위의 기능과 역할 확대된 만큼 자체적인 인력확보를 무엇보다도 절실히 여겼다. 그것이 곧 노동위의 전문성 확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

“공무원이 오더라도 길어야 2년 있다가 갑니다. 전문성이 쌓였다 싶으면 가버리는 거죠. 이들이 오랫동안 노동위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합니다.”

이 위원장은 이를 위해서는 ‘노동위 전문공무원’을 두는 등의 방안도 강구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익위원의 선정 문제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법조인에게 너무 치우쳤다든지 여성이 너무 없다는 지적이 그것. 이 위원장의 고민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문제란다.

“과거에는 관료와 교수 출신이 많았다면 올해는 법조인 출신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공인노무사를 포함해 다양한 인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여성위원 확보가 큰 과제다. 이 위원장은 “여성 중에는 노동법이나 노사관계 전문가가 적어 여성위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그러나 여성위원의 경우 관련분야의 교수만이 아니라 강사까지 조건을 완화해서라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코스콤 조정신청 시점에 근거할 수밖에”

올해 국정감사에서 중노위는 예년과 달리 관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중노위가 코스콤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행정지도를 낸 이후 코스콤 사측이 중노위 행정지도 뒤에 숨어 교섭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코스콤 비정규직노조가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난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증전엔지니어링의 불법파견 흔적이 농후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조정신청이 들어온 시점은 이미 증전엔지니어링이 도급업체에서 탈락하고 코스콤이 대신정보 등 5개 도급업체와 새로 계약을 맺은 뒤의 시점이었습니다.”

코스콤과 증진엔지니어링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코스콤이 사용자가 맞지만 이미 5개 도급업체로 계약이 체결된 시점에서는 코스콤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차라리 도급업체를 변경할 때 제기를 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란 것이다.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노동위 입장에서는 규정대로 충실히 했을 뿐 노동계의 조정을 철회하고 재조정을 하라는 요구를 받기는 힘들다는 의견이다.

“코스콤과 대신정보 등 도급업체가 공동교섭단을 꾸려서 오면 조정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회사측이 받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노조가 다시 조정신청을 해온다면 우린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다시 조정신청을 한다고 해도 결과를 자신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사후조정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노사가 합의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역시 여의치 않다.

공교롭게도 이 위원장을 인터뷰하던 24일에도 코스콤 비정규직노조가 이 위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중노위로 들이닥치기도 했다. 이날의 결론은 노조가 재조정신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필수유지업무, 조사관 현장조사 나간다

노동위는 내년 더욱 바빠질 참이다. 차별시정제도가 내년 7월부터 100인이상 기업으로 확대되는 데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직권중재 폐지 대신 필수유지업무제도도 시행된다. 이 역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직권중재 폐지라는 의미는 큰 것입니다. 그러나 필수유지업무에 대한 노사합의가 과연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노조가 이를 기본권 침해와 제약으로 보고 있는데 노사협력이 잘 되면 몰라도 보편적으로는 쉽지 않겠지요.”

이 위원장은 우리 노사관계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좋게 넘어가기 보다는 솔직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외국사례도 많지 않습니다. 일단 연구자 몇 분에게 외국으로 보내 집중적으로 연구하도록 용역을 준 상태입니다. 올 4분기에도 집중 연구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공익성 대 기본권의 문제로 학자들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요.”

내년부터 당장 닥칠 텐데 솔직히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노동위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해야 할 터.

“우리는 객관적인, 노사 양쪽의 양해수준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공익성과 기본권이 충돌하는 속에서 두 개가 잘 조화되면서 통일성 있게 맞춰가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요. 이를 위해 조만간 조사관 전원이 현장조사에 나갈 계획입니다. 병원, 발전소, 항공사 등 필수공익사업장에 직접 가서 노사의견을 듣고 필수유지업무 여부를 주체적으로 따져볼 생각입니다.” 

“노동위 독립은 전체 노동정책 변화에 기반”

노동위의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 확보라는 과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동위는 장관급 조직임에도 독립적인 위치에 있지 못하는 지적이 그것. 참여정부 초기엔 노동위를 국무총리 산하로 격상시키겠다는 등의 노동위 독립성 강화방향을 제시한 바도 있다.

“인력과 재정을 따로 떼어낸다는 것은 전체 정부조직이 변하는 문제라서 정책 전반의 뼈대를 갖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즉 노동정책 변화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지요. 전체 노동정책의 변화에 따라 노동위의 위상도 결정된다고 할까요. 노동부와 중장기적으로 노동정책의 방향과 노동위 위상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얼핏 보면 뒤로 물러나는 말인 듯도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확한 현실인식 속에서 노동위의 미래를 내다보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정권교체기 속에서 노동정책의 방향을 찾고 ‘우리식’의 노동위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동위를 보면 완전히 독립돼있는 기구이고 노조 교섭대표권도 노동위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지요. 그것은 미국 노사관계를 반영한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 노사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 토대 위에서 노동위 위상도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독일식’인 노동법원에 대한 의견은 어떨까. 현 정부 들어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노동법원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바 있다.

“노동법원의 전제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노동자 재정상황으로 볼 때 재판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요. 또한 전문판사가 양성돼야 합니다. 또한 법원의 보수적 경향 속에서 노동법원 자체가 3심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2, 3심이 민법체계로 가면 1심의 의미는 약화되니까요.” 

“노사관계 신뢰 오랜 흐름 속 형성되는 것”

이 위원장은 최근의 법원의 보수적 경향 속에서 지금의 노동전문판사나 변호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자 권익보호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이 노동쪽 전문가를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이것 역시 불투명합니다. 노동위가 판정의 공정성을 기하고 노동자 권익보호를 강화시켜가는 동시에 법원의 노동전문역량을 키워가는 중장기적 방안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노와 사는 복잡해져가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 경제구족 속에서 그 강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갈등의 역사를 걷고 있다. 그리고 노동위는 그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이원보 위원장이 노사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개별이든 집단이든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소중한 자산은 사람입니다. 현실은 경쟁논리, 시장논리, 유연화 논리가 지나치게 팽배해져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치, 존엄성이 무시되고 이해관계로만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으로만 제재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위원장은 앞서도 말했다. 관행과 상식이 무너지는 속에서는 법도 소용없다고. 법으로만 해결하려 하기보다 사회적 합의나 교섭을 하는 관행이 쌓여가야 한다고 말이다.

“노사가 대화를 시작한지 이제 20년 밖에 안 됐잖아요. 하지만 우린 너무 성급합니다. 성숙된 노사관계를 자꾸 요구하고 당사자가 따라가지 못해 불만도 제기하지요. 성급히 한 방향으로 모아가기 보다는 노사관계 역시 사람의 관계인지라 오랜 흐름 속에서 형성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위원장은 말한다. 그 흐름 속에서 노동위도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고.

<매일노동뉴스> 2007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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