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1일 뜻밖의 인사가 발표됐다. 김성중 전 노동부 차관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위원장으로 임명이 됐다는 소식이 그것.

전통적으로 노사정위원장은 노·사·정이 아닌 외부의 정치인, 학자 출신이 맡아오던 것을 고려할 때 정통 노동관료 출신인 김 위원장의 임명은 파격이었다. 김성중 위원장이 취임한지 만 2달을 맞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은 듯 보인다. 지난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이랜드, 코스콤 사태가 잇따라 터지고 있고 노사정위의 비정규직법 후속대책 논의가 순조롭지만은 않은 채 지난 11일 노사정위가 주최하는 비정규직법 100일 기념 노사정 대토론회는 무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층적 대화체제 구축을 강조하며 지난 4월27일 새롭게 옷을 단장한 노사정위. 경제위기 속 ‘구원투수’로 등장한 뒤 10년이 역사를 거슬러 왔지만 여전히 민주노총의 불참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는 노사정위.

정권 말과 새 정권의 교차점에 놓인 노사정위 수장으로서 그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그는 어떤 노사정위를 꿈꾸고 있을까. 지난 17일 김성중 노사정위원장을 만났다.


“토론회 무산 안타까워 … 10월말 다시 논의”

“노사정 대토론회가 무산돼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정말 어렵게 준비한 자리였는데 말입니다. 10월말 다른 방법으로 의견을 모으려고 합니다. 노사정위 의제별위원회인 비정규직법후속대책위원회 위원과 지난 대토론회의 발제자와 토론자 등 제한된 인원만이라도 모여서 다시 토론해보려고 합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한 거니까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활발한 논의를 기대해봅니다.”

김 위원장은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안타까운 심정을 뒤로 한 채 또 다른 대안을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사정위 비정규직법후속대책위의 논의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후속대책위는 지난달 ‘외주화 대책’을 어렵게 의제로 채택할 수 있었다.

“지난 후속대책위 의제 합의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 비정규직법 테두리 내에서 차별시정 회피를 위한 외주화가 꽤 있습니다.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갈 지는 실태조사 등 실질적 분석이 따라주는 속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노사정위는 외주화를 법으로 규율할지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 노사가 활발히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이제 노동문제의 각론을 이야기 할 때라는 입장도 피력했다. 그는 “그동안 노동기본권 향상,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총론적 이야기를 해왔다면 이제는 비정규, 여성, 외주화 노동자 등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라고 통칭하기보다 시간제, 재택, 파견, 외주화 등 각기 알맞은 논의의 있어야 할 때입니다.”


“별도의 노사정협의체 구성,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후속대책위에는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때마침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최근 노사정위 밖에서 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비정규직법 후속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노사정 대표자회의와 같은 별도의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미 노사정위 후속대책위에서 어렵게 합의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지금 당장 노사정 대표자가 모인다고 무엇을 논의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태든 다양한 논의를 하는 것은 좋으나 단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후속대책위에서 깊이 있게 논의한 뒤 결정단계에 이르면 노사정 모든 대표자가 모여서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은 완곡하지만 별도의 노사정협의체 구성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후속대책위에서의 의제 합의조차도 수개월을 질질 끌며 간신히 된 현실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만, 후속대책위 논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후속대책위 논의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민주노총이 개인자격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등 다양한 통로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도 사회적 대화틀을 강조하고 있지만 노사정위 복귀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이라서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요. 서로 중간지점에서 어떤 형식이든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앞장서서 징검다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보건·금속 등 업종별 논의틀 탄력적 접근”

중층적 대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는 노사정위는 현재 6개의 의제별위원회와 1개의 업종별위원회, 80개의 지역노사정협의회를 운영·관장하고 있다. 특히 업종별위원회는 그 어려운 과정을 볼 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업종별위원회로 공공부문위원회가 지난달 신설됐습니다. 첫 업종별위원회인 만큼 의미가 크지요. 이밖에도 운수, 보건, 금속은 업종별 대화의 필요성이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구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종별 협의체의 구성이 쉬운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요. 노동계가 양분돼 있어 서로 눈치를 보기도 하고요. 또한 정부와 사용자가 소극적인 것도 사실이고요. 특히 사용자는 산별교섭의 전단계로 이해하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진단이다. 노사정의 공동노력이 필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건은 노사 모두가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교섭을 넘어 의료선진화가 어떤 방식으로 돼야 할지 조사·연구를 노사정이 같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기대 섞인 반응이다. 하지만 굵직한 사업장이 민주노총 소속인 만큼 업종별 협의체는 노사정위 외곽에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탄력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노사정위가 거북하다면 외부에서 논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회적 대화의 증진입니다.”

이밖에 노사정위는 산별교섭, 전임자·복수노조, 임금체계 개선, 고용보험 개선 등 핵심적 의제들을 각 의제별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산별교섭 문제는 핵심 이슈 중 하나입니다. 산별교섭에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논의해야 하는 것이지요. 전임자·복수노조 문제도 유예한지 벌써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논의도 안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노사정위에서 논의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노사발전재단 지역별 논의틀 중복사업 안돼”

지역노사정협의회는 어떨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듯이 예산에 비해 성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역에서의 대화의 전통이 부족한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타협을 기피하는 정서적 측면도 있고요. 하지만 뜻있는 지자체장일수록 명칭과는 상관없이 지역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하는 곳이 꽤 있습니다. 과거 서울모델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런 접근을 통해 무엇인가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오는 26일부터 전북지역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노사정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다양한 형태의 논의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울산 등 노사관계가 심각하고 대공장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논의틀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다만, 현재는 대선 국면 속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게 여의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대선 국면이 일단락되면 실질적이고 다층적 대화가 되도록 뛸 계획입니다.”

하지만 노사발전재단이 포항에 이어 대구 지역노사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지역노사정협의체와 중복 문제가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는 분명했다.

“노사간 논의하는 자리는 의미 있겠지만 중복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역서 노사가 모여서 논의한다는 자체가 지역노사정협의회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차피 노사정이 함께 모여 논의해야 지역 노사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특히 지자체의 조력이 크게 필요한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노사발전재단에 대한 추가적인 말을 덧붙였다.

“노사발전재단은 기존의 사업을 답습하기보다는 있는 이른바 블루오션 사업을 발굴해야 할 것입니다. 재취업이나 산업안전 등 노사가 같이 해서 잘 할 수 있는 일 말입니다. 또 하나의 노사정위 식의 운영은 안 됩니다.”


“노사정위는 갈등 폭발 전 대화 통해 해결”

대선은 앞으로 노사정위 운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권 교체기엔 으레 대통령 자문기구나 대화기구의 폐지론도 입에 오르내린다. 노사정위도 자유롭지 못하다.

새 정부에서의 노사정위에 대한 김 위원장의 그림을 들어봤다.

“지난 2002년 합의기구냐 협의기구냐 등 기구의 성격과 위상을 두고 논쟁도 있었고 심지어 한나라당 일부 의원은 노사정위 폐지법안을 제출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사정위가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기구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내년 2월이면 꼭 10년의 역사를 맞는 노사정위. 10년 세월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 물꼬를 트는 일을 빨리 해야 합니다. 축적되면 폭발하고 마니까요. 6.29 이후 노동쟁가 폭발적으로 발생했지만 출구를 만들지 않아 분출하고 만 것이지요. 뒤쫓아가는 식으로는 이제 안 됩니다. 앞장서 논의해야 합니다.”

노사정위가 폐지된다면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98년 외환위기시 노사정위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요새 노사정위는 뭐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경제위기시 대타협을 맺으면서 잘 넘겼지만 사실 그런 경제위기가 와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지난해 노사관계로드맵, 산재보험법 등을 노사정 논의를 통해 타협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노동법 파동이 발생하지 않은 것입니다. 거창한 합의를 기대하기보다는 실질적이고,일상적인 대화체제로 가야 합니다.”

그의 주문은 ‘예방’의 중요성을 말하는 듯 하다. 경제위기나 노동법 파동이 터진 뒤 후회할게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 앞두고 노사정위 청사진 논의 중

노사정위는 10년을 거슬러왔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월도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의 청사진은 어떨까.

“새롭게 출범한 노사정위에서는 공익위원의 역할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향후 공익위원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각 분야의 이익 대변자들, 즉 비정규직, 여성 문제 등을 논의할 때 해당 대표자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의 이름에 걸맞게 의제와 공익 확대가 필수라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면 경제 사회 전반적인 논의를 위해 면밀히 의제를 찾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부분의 논의가 필요하니까요. 예컨대 근로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의 경우 1년에 잠깐 만나는 것보다는 노사정위에서 필요할 때 논의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참여도 쉬워지지 않을까요.”

현재 노사정위는 이 같은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TFT를 구성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중이다.

“TFT, 워크숍 등을 통해 노사정위의 발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해오고 있습니다. 외부전문가의 도움도 구하고 있고 내부 직원 역시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지요.”
이렇게 마련된 청사진은 내년 새 대통령에게 제출된다.


“구호보다는 노사 도움되는 실용적인 대화 추구”

김성중 위원장은 정통 노동관료로서 노사정위 수장으로의 자리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자신의 뛰어난 ‘적응력’을 들었다.

“저는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과거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노개위)에서 2년간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지난 30년간 노사관계 업무를 해오면서 사회적 대화기구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런 점을 장점으로 잘 살리고 싶어 한다. 저만의 색깔을 말하라고 한다면?
“한 두 가지를 논의하더라도 실용적이고 노사 모두에게 유익한 논의를 할 시점이 됐다고 봅니다. 저는 30년 노동행정의 경험을 토대로 구호보다는 실질, 총론보다 전문적 논의, 보탬이 되는 일을 만드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성과물을 도출해 내는 대화기구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이 만들어낼 노사정위의 희망을 들어봤다.

“산업화가 될수록 선진국형으로 발전할수록 사회적 문제는 더 커지게 됩니다. 환경, 노동 등 저개발 시절 문제가 안 됐던 게 이제는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역시 갈등이 고조될 것입니다. 노사정위가 우리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자리매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대담=박성국 편집국장
정리=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매일노동뉴스> 2007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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