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군분리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대안이 아니라 덫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참여연대가 22일 오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가진 ‘직무·직군분리제 대안인가 덫인가’ 정책토론회에서 “분리직군제는 비정규직법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구분을 통한 차별회피전략에 대한 제재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직의 도입은 가능한 한 저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리직군, 비정규직법 회피전략의 일환”

이날 이 교수는 “(비정규직법) 입법화 이후 대량의 계약해지와 외주화는 물론 ‘비정규직의 고용방법을 달리해 계속 사용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 회피전략이 나타났고 직군분리제 역시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두됐다”며 “분리직군제는 하위직급을 신설해 장기적으로 일반 정규직에의 통합을 보장하는 방안보다는 더 못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 교수가 짚는 분리직군제의 문제점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선 직군화 대상을 핵심업무와 주변업무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부산은행은 우리은행의 직군분리제와 달리 하위직급 신설을 통해 정규직에 순차적으로 통합시키는 방안을 마련했고 외환은행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등 한 조직 내에서 직무를 핵심이냐 주변이냐로 나누는 일이 간단치 않다는 주장이다.

또한 분리직군제는 핵심 혹은 주변업무를 결정하는 직무의 가치가 주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성(젠더)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어 남녀차별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업의 경우는 남녀간 성별직무 격리가 심한 편이고 오랜 기간 성차별적 직군제가 운영돼온 만큼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직군분리제가 차후 외주화 촉진할 수도

직군분리제는 또한 승진 및 경력이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교수는 “(금융업의) 관리업무와 영업업무의 차이가 임금격차를 정당화할 만큼 큰 것인지, 또한 설사 직무성격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여성의 승진이나 경력개발의 저해를 정당화 할수 있는 근거가 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직군분리제는 주변업무로 여겨지는 콜센터나 후선업무, 유통업의 계산업무 등의 직군전환이 외주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흔히 주변업무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같은 업무는 정규직화 당시의 교섭력, 기타 고려사항에 의해 직접 고용상태를 유지할 있었다 할지라도 환경이나 힘의 균형과 관련된 변화에 따라 외주화 될 수도 있는 업무”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분리직군제의 대안으로 분리직군 인력에 대한 임금과 근로조건상의 차별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이를 위해 임금·직무에 대한 평가분석이 노사 공동으로 진행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이 교수는 “분리직군 내 간접차별 규제로 남녀고용평등을 성취하고 분리직군과 정규직간 수직적·수평적 이동을 허용해야 하며 저숙련·저기술 직무의 경력개발을 위한 교육훈련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직 도입 저지돼야”

그러나 이는 분리직군으로 차별이 완화되는 것일 뿐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라는 게 이 교수의 입장이다. 그는 “학계 및 노동계, 여성계 일부에서는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직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있고 사측도 편리한 정규직화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그러나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직의 도입은 가능한 한 저지하고 정규직화에 교섭력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분명한 입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은수미 한국노동교육원 연구위원은 “직군제는 비정규직보다 정규직간 차별형태로 보아야 하고 여성직무의 저평가 문제는 직무분석 및 임금체계 개편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문제 중 가장 해결이 어렵고 비정규직 입법의 대상에서도 배제돼 있는 간접고용 특히 사내하도급 등 비정규직 문제의 초점을 보다 분명히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다른 시선으로 직군분리제를 바라보았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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