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은 ‘87년 체제’는 가고 ‘새로운 체제’는 오지 않은 그 빈자리에서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전략목표와 노선을 구축해야 한다.”

87년 폭풍과 같았던 노동자대투쟁이 휩쓴 지 20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12일 오후 서울시 여의도 CCMM빌딩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 20년 : 산별시대 노동운동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진 가운데 기조발제자로 나선 김금수 명예이사장은 이같이 한국의 노동운동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진단했다.<사진> 

87년 노동자대투쟁, 그 성과와 한계

‘87년 노동자대투쟁 20년과 노동운동 과제’를 주제로 기조발제한 김 명예이사장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우리나라 노동계급이 형성된 이래 최대 규모의 파업투쟁이자 대중적 항쟁의 성격을 띠었다”며 “그런 점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우리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에서 획기적 계기”라고 평가했다.

즉 노동자대투쟁은 광범위한 노동자를 단련시키고 계급적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킨 계기가 됐으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면서 민주노조운동이 본격적으로 형성·강화됐다는 평가다. 또 억압적 통제체제를 무너뜨리고 기본권 확보를 위한 조직적 토대를 마련했으며 사회적 민주주의 쟁취 투쟁의 시발이 됐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대중적 토대가 마련됐고 사회변혁적 노동운동 이념과 노선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음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계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김 명예이사장은 “자연발생적 경향이 강하고 조직 지도력이 취약해 강고한 투쟁을 벌이고도 투쟁성과가 조직적 역량 결집·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연대투쟁이나 공동투쟁이 폭넓게 추진되지 못하고 투쟁 목표도 사업장 단위에 집중돼 계급적·제도적 요구의 관철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노동운동 미래 열기 위한 전략목표 필요”

이 같은 성과와 한계를 갖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오늘의 노동운동은 “87년 체제는 가고 새로운 체제가 오지 않은 빈 자리”라고 김 명예이사장은 진단했다. 때문에 노동운동의 미래를 열기 위한 발전방향과 전략목표를 세워야 함도 강조했다.

역시 산별노조 체제의 정착을 우선 순위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산별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큰 계기를 창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며 △조직형태 발전을 위한 조직노선의 설정 △상급조직의 기능과 지도력 강화 △조직운영의 민주적 개편 △기업단위 조직의 정비·강화와 초기업단위노조 조직운영 체계개선 △공동투쟁과 통일투쟁의 확대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노동운동의 정치·제도 개혁투쟁의 강화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정책참가 또는 정책개입이 필수요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조의 정책참가가 중요하다고 모든 형태의 참가가 긍정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며 “노조의 정책참가는 목표와 원칙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가운데 조직과 투쟁이 병행 추진되고 노조의 정책역량 향상이 긴요하다”고 제언했다.
노동운동의 이념 정립도 시급하다고 보았다. 김 명예이사장은 “양대노총은 모두 운동이념과 노선을 확립하지 못한 채 모색의 단계에 와있다”며 “노동운동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과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 전략목표로 설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 명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 


“정파갈등 극복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이뤄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비롯해 계급으로서 정체성과 사회적 영향력 확보, 다른 민중운동 및 사회세력과의 정치적 연대와 동맹 강화”를 의미하는 노동자의 사회세력화와 정당조직화의 기본토대가 됨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 단계에서는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노동자 주도성’과 ‘계급연합 정당’을 실현하고 강화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의 당원 확대는 물론 광범위한 사회세력의 지지확보가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또한 정당활동과 대중투쟁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정당의 의회활동만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노동운동의 전략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당 내부의 정파 또는 각종 분파 사이의 갈등해소를 위해 구체적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명예이사장은 “브라질의 노동자당(PT)은 당내 정파 사이의 갈등해소를 위해 ‘아르뜨꿀라사옹(연결·통합)’의 활동이 주목을 끌었는데 비교적 일관된 당의 목표와 위상을 제시함으로써 당의 지도력을 공고히 하는데 중심을 두었다”고 소개했다.

한편 김 명예이사장은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위원회’(가칭) 등의 기구를 조직내 간부와 전문가로 구성해 전 조직에 걸친 현장토론을 통해 의견을 집약하고 노동운동 발전에 관한 연구활동과 각계각층과의 토론을 통해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전략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이병훈 중앙대 교수와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가 각각 산별시대의 고용체계 및 임금정책을 주제로 발표한데 이어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노진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 노중기 한신대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 정주연 고려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기업 벗어나 산업횡단적 고용·임금체계 구축”
이날 토론회에서 일정하게 관통한 것은 산별노조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노동체제 양극화와 산별노조운동’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산별노조운동의 양극화된 고용체제의 극복과제를 주문했고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는 ‘산별시대 임금정책 방향’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산별노조 시대의 임금정책 개선을 제기했다.
 

이병훈 교수는 산별노조운동의 향후 과제를 기업 내부노동시장 중심의 고용체제를 대체하는 ‘산업횡단적 고용체제’를 주문했다. 그는 “산업횡단적 고용체제란 노동자의 취업기반이 산업 차원으로 확대돼 노조 주도 하에 일자리 이동을 원활하게 보장하는 취업지원이 제공되고 실업시 안정적인 생계보장을 실현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소속 산별수준의 고용생활안정성을 구현하는 ‘사회적 노동시장체제’로 정의할 수 있다”며 “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구현하는 산업차원의 직무숙련급체계에 기반하는 한편 노사공동 직업훈련 및 직무등급 평정, 취업알선 및 상담, 실업자 생계지원 수행 등 다양한 노동복지서비스를 구상케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산업차원의 원·하청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균등 수익배분구조를 고려해 산별 단체교섭 또는 노사협의를 통해 수익비례 원칙에 따라 소요 기금을 일정하게 출연하고 노사공동 관리의 고용보험기금 및 정부로부터 추가사업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산별노조운동은 이 같은 산업횡단적 또는 연대주의적 고용체제 구축을 위한 ‘전략적 로드맵’을 수립해 실천할 것과 이의 이행과정에서 단기적으로 교섭틀 안정화를 위한 유연한 전략접근과 조직운영의 집권적 민주화를 주문했다.
 

이어 정이환 교수는 기존의 임금정책에 대해 △임금인상과 임금격차 완화 △임금체계 개악 저지 △산별최저임금 적용 통한 저임금 개선이라는 성과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전반적 임금격차의 확대를 저지하지 못했고 산업 전체에 적용되는 산업횡단적 표준임금을 설정하지 못했으며 고용 및 산업정책과 긴밀히 연관되지 못하는 문제점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 시대의 임금정책은 ‘산업횡단적 임금기준’ 설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산업횡단적 임금 기준은 ‘직종(군)별 숙련급’이 돼야 하며 이와 함께 산업 또는 전사업 수준에서 운용되는 교육훈련 및 숙련형성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임금구조를 보면 근속보다 경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숙련급 도입에 유리하다는 것.
 

그는 “특정 직종을 대상으로 산업별 통일임금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내부의 모든 직종에 대한 직종(군)별 숙련별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산업횡단적 임금체계를 구축해 현재의 극심한 임금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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