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세계 1, 2위 철강업체가 전격적으로 합병하는 빅뉴스가 터져 나왔다. 네덜란드의 미탈스틸(Mittal Steel)과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Arcelor)의 합병으로 조강생산량 1억톤에 육박하는 초대형 철강업체가 출범했다. 포스코는 2005년 현재 조강생산량 3천500만톤으로 4위에 올라 있다. <표 1 참조>
공급과잉
생산량 감소와 대형화 추세는 철강업계의 ‘공급과잉’ 문제에서 비롯됐다. 전문가들은 전체 철강 생산량의 15% 정도를 과잉생산량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철강산업의 경기주기가 단축되고, 진폭이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 비교적 안정적인 경기변동을 나타내는 산업으로 인식됐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세계 철강산업은 95년 장기호황을 겪은 뒤, 외환위기에 따른 보호주의(98년),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인한 보호주의 약화(2001년), 철강경기 호조(2004년), 2007년 중국의 부상 등 활황과 침체의 사이클을 보여 왔다.<표 2 참조>
원료 확보, 생산, 판매 등 3가지를 놓고 전 세계 철강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다. 원료 확보는 ‘전쟁’에 비유될 정도다. 박현욱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12일 “현재 미국과 유럽의 철강 상위업체들은 아시아권과는 달리 가격유지를 위한 담합구도가 형성돼 있다”며 “중국의 수출물량이 얼마나 증가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변수가 있다. 미국처럼 가동률을 70% 이하로 떨어뜨리면 고정비 부담이 증가해 수익률이 하락한다. 또한 중국의 철강 수출물량이 얼마나 되느냐도 관심의 초점이다. 미국과 유럽의 철강업체들이 가격담합을 통해 공급과잉을 해소하더라도, 중국의 수출물량이 늘어나면 가격하락을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철강산업의 현안을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공급과잉’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될 것이다. 중국은 2005년 8월, 철강업체의 확장억제를 내용으로 하는 신철강정책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5년만 해도 중국의 철강산업은 수출(2천717만톤)이 수입(2천275만톤)을 넘어섰다. 2003년의 수출(845만톤)과 수입(4천310만톤)을 비교하면 2년도 되지 않아 3배 가까운 수출신장을 이룬 셈이다.
“에너지도 무기다”
국내 철강산업도 세계 철강산업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도 국내 철근업체들은 연간 100만톤씩 수입되는 중국산 저가제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가 작성한 ‘2007년 국내외 철강산업 주요 이슈’에 따르면 세계 철강산업은 경기의 불확실성 증대, 인수합병(M&A) 열풍 확산, 중국발 통상마찰 격화, 원료 확보경쟁 심화 등의 이슈가 있다. 대다수가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인수합병 열풍도 따지고 보면, 중국 철강업체의 수출증가로 인한 ‘공급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해부터는 철강업체 인수합병 시장에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이 뛰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무려 1조 달러를 돌파한 상태다. 적정 수준의 3배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하기 위해 적극 나설 가능성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원료확보 ‘전쟁’
상대적으로 자원과 에너지가 풍부한 인도, 브라질, 러시아는 에너지를 팔아 번 돈으로 인수합병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고기술 철강업체를 노리고 있고, 인도·브라질·러시아는 자원보유국으로 미국과 유럽의 철강업체 인수를 겨냥하고 있다.
특히 원료보유국들은 보호주의 경향과 더불어 철강원료를 무기화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인도는 지난해 3월, 고품위 철광석의 수출을 중단했다. 또한 중국은 지난해 5월, 철광석·선철·고철 등 철강원재료를 가공무역 수출금지 품목으로 지정했다. 브라질은 철광석에만 관심을 갖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철광석 공급대가로 브라질에 있는 제철소에 투자를 유치하려는 목적이다. 브라질에는 세계 최대의 철광석 공급회사( CVRD)가 있다.
철광석과 원료탄(유연탄)에 대한 수요는 2003년 이후 증가하기 시작했고,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철광석의 경우 가격상승률이 2003년 10%에 그쳤지만, 2004년 14%로 증가했다. 2005년에는 무려 72%라는 경이적인 가격증가율을 기록했다.
원료수입국들의 자원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후진타오 중국주석이 최근 아프리카 8개국을 순방하면서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말, 일본의 신일철은 브라질의 CVRD와 신규 개발 프로젝트 공동 추진, 원료의 안정공급 및 저가원료 사용에 대한 공동기술개발을 담은 전략적 제휴에 합의했다.
선진국에 뒤지고, 신흥국에 치이고
산업자원부가 지난달 발표한 산업전망에 따르면 국내 철강산업은 소폭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국내 철강산업이 생산한 철강은 5천661만2천톤으로 2005년(5천506만6천톤)에 비해 2.8% 증가했다.<표 3 참조>
2007년에는 3.8% 증가한 5천878만톤이 예상되고 있다. 내수의 경우 2006년 증감률인 3.7%보다 떨어진 2.7% 증가한 5천18만톤으로 전망됐다. 내수와 생산을 비교하면, 올해만 800만톤이 넘는 공급과잉이 예상된다. 2천만톤이 넘는 수출물량이 있지만, 그것보다 많은 2천300만톤 내외의 철강제품이 수입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의 경우 중국의 대규모 설비증설에 따른 중국산 철강제품 수입이 급증하면서 전체 수입물량이 사상 최초로 2천만콘을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철강산업은 외국 거대 철강회사의 기술력과 제품경쟁에서 뒤지고,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한 브릭스 등 신흥국가에 치이는 ‘넛 크래커’(Nutcracker, 호두를 눌러 까는 도구)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수요 감소
그런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최근 국내에서 서서히 제기되고 있는 제조업 공동화 문제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제조업체의 해외생산공장이 늘어나면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자동차는 철강업체에 있어 대표적인 수요(Needs) 산업이다. 자동차용 강판부터 갖가지 부품이 철강으로 만들어진다.
조자명 비전노동센터 소장은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 수준과 과거 산업구조 변화추이를 볼 때 철강수요산업의 비중이 점차 감소할 것”이라며 “품목별로 사양화가 예상되는데 선재에서, 강관, 철근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국내 조선업체들이 중국과 필리핀에 대형조선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도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철강수요 증가율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 2005년에 분석한 바에 따르면 산업구조 고도화와 제조업 해외이전으로 철강수요 증가율은 2015년까지 연평균 1.9%로 예상됐다. 2000∼2005년 증가율(4.2%)에 한참 못 미친다.
국내 냉연업계의 위기의식은 남다르다. 원재료인 열연강판(핫코일)의 가격인상에다, 저가 중국산 제품의 유입에 기존의 공급과잉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오금석 한국철강협회 홍보팀장은 “냉연업계의 가격경쟁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어 당분간 수익감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대응은?
철강통계연보를 보면, 지난 95년 6만7천명이었던 국내 철강 노동자들은 2006년 현재 4만명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내하청 노동자까지 포함할 경우 철강산업 전체 고용현황을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조직된 노동자만 따지면,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철강노동자들은 1만2천명,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소속 철강노동자들은 5천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에 반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대폭 증가했다. 금속산업연맹이 2002년에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는 1991년 34.7%였던 철강산업의 하청비율은 2000년에 45.3%까지 증가했다. 1991년 500인 이상 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비율은 전체의 43.4%에 이르렀지만, 2000년에는 36.5%로 줄어들었다.
핵심공정은 철저하게 자동화하고, 비핵심 공정이나 이와 관련한 직무를 외주·용역화 하는 철강업체의 경영전략이 오랫동안 통용된 탓이다. 고령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철강업체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이미 45세를 넘어섰다.
그렇지만 철강노조들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정부가 철강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정, 정책적으로 지원한 탓에 현장 조합원들의 경우 보수적 경향이 짙은 게 사실이다. 양대 노총 철강노조들이 상급단체와 무관하게 철강노조협의회 활동을 계속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철강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은 한없이 더디다.
올해 임단협에서도 그다지 큰 쟁점들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철강노조협의회의 주력 조직이었던 현대제철노조가 산별노조로의 조직형태 변경에 성공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와는 별개로 철강산별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철강노조협의회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철강산업은 어느 업종보다도 산별차원의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한 업종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간 철강노조는 기업별 노조체계라는 울타리에 있었다. 철강산업의 현안은 기업별 노조가 해결할 수 없다. 때문에 기업별 노조체계를 뛰어넘는 중층적 교섭체계를 다양하게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일부 철강 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했고, 양대 노총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자적인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발판으로 노동계가 철강산업 정책에 직접 개입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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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07년 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