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이용석 열사 정신계승사업회’가 이용석 열사 평전인 <날개달린 물고기>에 대한 독후감을 공모했습니다. 모두 28편이 응모됐고 계승사업회는 그 가운데 대상 2편, 우수상 5편을 선정했습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해자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독후감 속에는 각자가 처한 아픈 삶과 고통들이 켜켜이 숨어 있었으며, 그럼에도 날개를 달고 언젠가는 날겠다는 희망 또한 숨쉬고 있었습니다.” 독후감을 읽어가면서 “정어리 떼들의 항해를 떠올렸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매일노동뉴스>는 수상작 가운데 대상 2편 전문을 두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전국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회 기륭전자분회의 오석순 조합원의 글입니다.

독후감 전문을 <매일노동뉴스> 지면에 실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계승사업회에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저는 기륭전자 조합원이고 해고 노동자 오석순입니다. 기륭전자 분회가 생기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인 문자로 해고를 당한 당사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문자해고라는 첨단의 형식을 어이없어 했지만 저는 저의 생존권을 앗아간 해고 사유 자체가 더 기가 막혔습니다. 제 해고의 이유는 ‘잡담’ 이란 단 두자였습니다.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일하다 시끄럽다고 지적한번 받았으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단련된 노동이고 손이 빠르고 일머리 좋다고 들어온 저로서는 정말 해고의 사유가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확인 한 것은 후임 조장의 지휘를 쉽게 하기 위해 똘망해서 골치 아플 것 같은 사람 솎아 내기 해고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입니다.

“문자해고의 이유는 잡담”

그리고 죽는 것 빼고 다 해봤다는 투쟁이 1년이 넘고 있습니다. 기륭분회장님의 단식이 29일 째 되는 날, 50 몇kg의 몸이 40kg, 중학교 시절로 돌아 간 분회장 옆에서 우리 조합원도 단식 9일째를 맞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절로 떠오르고 ‘죽임’이라는 한이 절로 떠올라 심장이 타들어 갔습니다. 그 몸으로 용역 깡패에게 밀쳐진 분회장이 실신을 할 때 저도 모르게 철조망 흉하게 둘러 친 거대한 문을 차고 들어가 용역 깡패 군홧발 밑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지옥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지옥이다’ 되뇌며 탈진할 때 바로 그때 그 아득해지는 머리와 마음속으로 전태일 열사가 박영진 열사가 지느러미를 날개로 바꾸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신하여 죽음의 날개로 달로 훨훨 날아간 이용석 열사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저는 기륭전자 들어오기 전에 “함께 크는 아이들”이라는 놀이방을 운영했습니다. 공단의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주부들의 경우 육아의 문제로 언제나 노조 활동은 반 토막이 되고 맙니다. 가정에서도 노조에서도 반 토막의 고통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어 주기 위해 큰 병을 앓고 실의에 빠졌던 저에게 지역의 여러 분들이 평소에 아이를 보고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권해서 놀이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용석 열사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즐거움과 슬픔과 고민을 달래며 욕된 생존의 노동의 다른 반쪽을 더불어함께 사는 보람으로 채우는 것이 정말로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데 아이들은 참 밝네요.”
“원래 아이들은 다 밝은데, 주변이 어두운 거죠…”


저는 이 장면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 놀이방 아이들도 생각나지만 아이들을 우리 기륭 조합원으로 바꿔 보아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정말 힘든 싸움이고, 각자 개성도 다종다양한데 조합원들이 함께 있으면 아무리 심각한 조건에서도 신명이 살아 있는 분위기가 우리 기륭전자 분회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그 힘든 투쟁 속에서 어찌 이렇게 밝은 분위기가 되는지 이상하게 여기지만 우리들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밝은데 세상이 어두운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이기와 비겁의 현실을 박차고 노조를 만들었을 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노조 결성을 알리고 현장의 노동자들의 대답을 기다릴 때, 그 말초신경, 실핏줄마저 경기를 내는 떨림이 “두려움이 아니야 설레임이야.”하며 기다리다 휴식시간 15분 사이에 200명의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하여 함성을 지를 때, 그 기쁨과 감동을 그리는 것은 무엇으로 감히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해방의 감동을 간직한 우리는 아이들처럼 주변의 어둠을 넘어 스스로 밝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평전에서 노동조합 결성에 대한 박력 있는 감동은 조금 덜 표현된 것도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릴 것이다”

목숨 같은 공부방을 잠시 접고 노동조합 결성에 나선 열사의 모습은 좀 경이적입니다. 대뜸 간부의 역할과 지위를 맡고 나서는 것이 범상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결국 공부방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배우면서 행한 양심에 대한 책임이라는 그 엄중한 선택에 절고 고개가 끄덕이며 가슴을 울렸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인간이 만든 천형은 사랑과 결혼을 비틀고 있습니다. 고뇌하고 결심하고 전심전력으로 발품 손품 말품을 팔며 광역단위 본부장으로 정신없는 과정에서 멀어지는 애인, 멀어 질 수 없지만 소홀한 것 같은 마음속 모든 것 같은 공부방의 아이들, 언제나 마음의 한 켠에서 슬픔 같은 죄의식의 원천인 어머니와 형제들, 이 모든 아쉬움을 채우는 길은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릴 것이다.”는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일 것입니다. 

1회용 티슈같은 비정규직 신세를 나라가 운영하는 고용안정 센터에서는 “잡비”로 공식 처리하는 것을 보며 저를 해고시킨 이유라는 ‘잡’담과 ‘잡’비의 앞자가 같아 잠시 성질이 나 책을 덮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기계는 고쳐 쓰면서 사람은 버리는 이 비인간적인 일터를 좀 바꿔 보자는 것이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이놈의 세상은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사람의  서너개의 목숨 줄을 가지고 있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그 속에서 종종 만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참은 삶의 뒤통수를 턱턱 때리는 충격과 허탈함을 심어 당장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 키워 줍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길을 포기하는 것임에도 도피의 충동은 참담하게 강렬합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릴 것이다.”라는 열사의 독백은 바로 우리 기륭 노동자들의 마음 속 깊은 절규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나만, 우리만 함께 한다”

우리 기륭전자 분회가 막 만들어 지면서 받은 교육 중에 비슷한 것을 들었습니다. 원래 단결과 화합을 가로막는 악마의 이름은 “쯤이야” 악마랍니다. “나 하나쯤이야. 이번 한번쯤이야.”라는 말에 실린 심보가 바로 우리 마음속의 악마라고 합니다.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만이라도”라는 천사다. “나 하나만이라도, 이번 한번 만이라도”라는 다짐이 바로 노조를 살리는 천사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열사의 유서 속에서 다시 만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회유로 협박으로 생활고로 우리 곁을 떠나간 조합원들을 생각합니다. 200명의 조합원이 몇 십 명으로 준 지금, 누가 뭐래도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떠나는 동료들의 뒷모습입니다.

“내가 부당한 논리에 희생당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노조 활동을 시작한 열사의 마음은 노동조합의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나서면서 세상의 거대한 위선의 벽을 만납니다. 냄비처럼 끓었다가 너무나 쉽게 동요하고 식는 모습에 얼마나 많은 조바심으로 심장이 타들어 가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그래서 열사는 “이번 투쟁은 비정규직 자신과의 싸움입니다.”라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선 이 자리, 이 시간들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 파업에 참여하지 못한 동지들의 마음마저 용서하기 위해 분신을 결심한 열사에게 “내 마음의 뜨거움에 더위(죽음)는 내 적이 아니었습니다.”

눈물 꽃이 피어 열매가 됩니다

평전이 후반으로 갈수록 눈물이 자꾸 가로막아 쉽게 페이지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열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사'가 필요하다는 말도, 죽음은 결국 현실에 대한 패배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도 막상 구체적인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전 공부방을 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평등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걸 가르쳐온 내가 이런 현실을 복종하여 참아왔습니다. 인간대접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어찌 학생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겠습니까?” 스스로 노예이면서 아이들 앞에서 인간인 척 하는 위선을 또는 비겁한 무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열사는 가장 치열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고 있습니다. 1년도 채 안 되는 노동조합 생활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절박한 사랑이 끝내 열사의 생명을 잡아먹었지만 상태도의 파란 바다 빛과 하늘 빛, 열사의 열중하는 눈빛,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사라질 것입니까?      
         
눈물 꽃이 피어 열매가 됩니다

짓밟힌 것들이 모여 거름이 되고 거름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숨 줄로 팽팽합니다.

날개 달고 나르는 커다란 고래 되어 노동자 민중의 난바다, 아무도 잘못된 힘으로 고통 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그 세상으로 열사와 함께 나갑니다. 기륭전자 우리 투쟁 또한 열사가 걸어간 바로 그 길입니다. 우리의 한발이 열사의 한발 발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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