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산별노조’는 책에나 나올법한 낯선 조직구조가 아니고, ‘산별교섭’은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멀리 있는 교섭형태가 아니다. 지난 6월말 금속산업연맹의 대대적 산별전환 총회에서 산별전환을 결의한 데 힘입어 올 8월말 현재, 민주노총에 소속된 76만여명 조합원 가운데 산별노조에 속한 노동자는 절반이 넘는 41만5천여명(54.6%)에 달하게 됐다. 그만큼 산별노조운동과 산별교섭 체제가 앞으로 노사관계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를 대표저자로 한 <신 산별교섭>(중앙경제사 펴냄) 책이 발간됐다.

‘조율 체계의 변화’에 주목

우리보다 먼저 산별교섭을 경험한 외국, 특히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의 사례에 대해 저자들은 “여전히 산업 차원의 집단교섭 구조가 지배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단체교섭 구조의 분권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러한 단체교섭의 변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율 체계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분권화' 현상보다는 산업, 기업 등 단체교섭의 각 수준에서 노사관계 주체 간 ‘조율(coordination)'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양상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이나 스위스는 단체교섭이 기업 수준에서 이뤄지는 대표적 국가이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기업별 단체교섭을 전국적인 수준에서 사전 조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들은 “단체교섭 구조를 산업별 또는 기업별 교섭이라는 이분법적인 평가에서 탈피해 ‘자연스럽고 조율된 단체교섭(natural and coordinated collective agreement)'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자연스럽고 조율된 단체교섭’은 산업별이든, 기업별이든 아니면 소산별이든, 업종별이든 “노사자치주의에 입각해 노사가 그들 스스로에 유리한 단체교섭 구조를 자율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

대표저자인 조준모 교수는 “교섭구조에서 노사 간의 대표성을 확보하고 ‘노사관계 안정화’와 ‘경제성과 제고’를 위한 필요 전제는 ‘단체교섭의 조율기능’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 교수의 분석에 따르자면, 현재 우리나라 산업별 교섭은 지나치게 외형적 성장에 치우쳐 있는 나머지 (사업장)지회 → 지부 → 산업별 → 중앙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조율기능이 취약한 형편이고, 업종별 - 소산별 - 지역별 협의체도 형식적으로 가동되는 측면이 강하다. 또한 단위노조 내부에 노사 간의 협의체제가 미약하게 가동돼 수평적인 조율 기능 역시 취약하다.

“기업별 = 대립적, 산업별 = 협력적”

조 교수는 “외국 사례에서는 기업별로 분권화된 교섭을 ‘대립적’, 산업별 교섭 혹은 집중화된 중앙교섭을 ‘협력적’ 노사관계로 평가하는 연구 성과물들이 많다”며 “그러나 외국과는 정반대로 산업별 단위를 오히려 대립적 노사관계로 보고, 기업단위와 초기업단위 노사관계가 괴리돼 있는 현상 등은 우리나라 단체교섭에서 조율기능이 취약함으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신 산별교섭>에는 △우리나라 산별노조 현황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외국 노사관계 특징과 단체교섭 구조 및 효력 △단체교섭 구조와 경제적 성과 △우리나라 산업별 단체교섭의 문제점 및 현실대안 등이 담겨있다.

이 가운데 산별교섭 의제, 산별노조의 쟁의행위, 산별노조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의 관계 등 법적 쟁점을 다룬 제5장과 우리나라 산별교섭이 노조법 개정을 통한 준비된 교섭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노동계의 전략적 결정에 따른 전환이라는 점에 주목, 앞으로의 단체교섭 구조와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한 제6장이 특히 흥미롭다.

한편 저자로는 조 교수 외에 이승길 산업연구원 산업혁신팀장, 김홍영 충남대 교수(법학), 이원희 노무사, 이동복 HRD센터 연구원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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