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마무리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1차 본협상에서 투자 분야의 5대 독소조항이 협정문에 그대로 들어가고, 서비스 분야의 5개 조항 역시 한국 정부가 전부 ‘오케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지난 17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개최된 ‘한미FTA 1차 본협상 평가’ 토론회<사진>에서 이해영 범국본 정책기획연구단장(한신대 교수)은 “1차 본협상은 거시 통상전략의 부재와 미시협상전략의 부실이 빚어낸 재앙의 전주곡”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 단장은 ‘이익의 균형’, ‘민감분야의 상호존중’이라는 한국측의 협상 목표 내지는 원칙과 관련해, “이익의 균형은 협상의 결과여야 하는 것이지 목표나 원칙이 될 수 없으며, 목표는 당연히 이익의 극대화여야 한다”면서 “상호존중도 매우 우아한 원칙이나, 통상전쟁에서는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협상팀이 한미FTA에서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나프타 방식보다 강화된 나프타 플러스 방식”

협상 결과가 공개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평가에 나선 이 단장은 세계의 FTA를 미국형, EU형, 개도국형, 기타로 대별하고 현재 진행 중인 한미FTA는 거의 통일된 조항들이 적용되고 있는 미국형 FTA에 속한다는 것을 강조했다.<표1 참조>


EU형은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을 많은 분야에서 채택하고, 개도국형은 상품교역에 집중되어 있어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은 미비하거나 통일된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등 미국형 FTA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표1>의 서비스 관련 FTA 조항의 국제비교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요르단의 FTA 일부조항을 제외하고는 미국형 FTA는 서비스 전 분야에 걸쳐 최대한의 개방을 지향한다. 아울러, 체약국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는 자동적으로 협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래쳇(톱니) 메카니즘이 적용된다. 또한 시장접근상의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의 경우, 포괄주의(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해 예외로 규정하지 않은 모든 분야는 개방하도록 되어 있어 미래에 생길 신종 서비스산업 역시 자동으로 개방됨을 의미한다고 이 단장은 설명했다.

이와 함께, 미국형 FTA는 서비스 공급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설립 전 단계에서도 내국민 대우에서 제외하는 분야 역시 포괄주의 방식으로 그 대상을 명시해야 한다. 특히, 이 단장은 “서비스 공급을 위한 지사나 지점의 설립이 없이도 서비스 공급의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네번째 서비스 조항인 ‘비설립 서비스 공급 권리’가 협정문에 들어가 있다면, 나머지 4개 조항 역시 전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투자 관련 조항과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에서도 미국형 FTA의 특성은 그대로 드러난다.<표2 참조>


이 단장은 “1차 본협상에서 한미 BIT(양자투자협정) 초안에 들어 있는 5대 독소조항이 그대로 협정문에 포함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5대 독소조항은 그동안 △투자의향을 신고만 한 단계, 즉 설립전 단계에서 소유제한 방식을 네거티브 방식을 취하면서 예외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FTA 적용 요구 △WTO 부속협정가운데 하나인 ‘무역관련투자조치협정(TRIMS)'에서 한 걸음 더 나가 투자유치국에 의한 일체의 이행의무부과 금지 △투자분쟁해결절차로서 투자유치국 정부에 대한 제소권 부여 등으로 비판을 받아온 조항들이다.

이 단장은 특히, “투자유치국에 의한 일체의 이행의무부과를 금지하면 한국의 스크린쿼터 같은 현지생산품, 현지조달, 현지인고용, 기술이전 등과 관련된 정부 정책개입의 여지를 봉쇄하게 되기 때문에 WTO 하의 TRIMS를 훨씬 뛰어넘는 ‘TRIMS 플러스’가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도 미국형 FTA는 지적 재산권의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등 ‘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 플러스’를 적용하고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미FTA 방식은 나프타 방식보다 강화된 나프타 플러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관측했다.

“높은 수준의 FTA는 서비스 전 분야 개방 암시”

이날 이 단장은 또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FTA에서 상대국에 따라 서로 다른 추가서비스시장 개방을 요구해 왔다고 강조했다.<표3 참조>


호주의 경우 서비스산업 추가 개방과 관련해 방송 및 시청각 분야만 허용한 반면, 싱가폴의 경우 은행, 통신, 외국인 경영자 국적제한 철폐 등을 허용하는 등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단장은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준은 <표3>에서 언급된 전 부문이 협상의 대상이 될 것이며, <표3>에서 언급된 분야 전부가 개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은행, 보험, 통신, 방송 및 시청각 서비스, 금융컨설팅, 도소매 유통, 최고 경영자 국적제한, 특송, 부동산, 법률 등이 전부 추가적 서비스 개방으로 들어갈 것이며, 이는 미국이 말하는 ‘높은 수준’의 FTA는 바로 이 부분의 전면개방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자들은 한미FTA 협상과는 별개로 국내에서는 이미 보건의료, 금융, 교육부문 등에서 광범위한 사유화(민영화) 내지는 개방화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된다는 데 공감했다.

이해영 단장은 “미국은 교육, 의료 분야에서 비영리법인 제도의 변경과 이를 통한 시장개방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이는 미국이 교육과 의료자체에 대한 시장개방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미, 국내에서는 경제자유구역법 등을 통해 경제자유구역내에서는 교육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영리법인화가 진행중에 있기 때문에 미국은 비영리법인제도의 변경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을 놓고 국내에서 교육, 의료가 관심이 없다고 떠들고 있는 것은 ‘정신없는 소리’라는 게 이 단장의 설명이다.

범국본 보건의료공대위 소속의 변혜진 국장은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이미 600병상 이상의 1인실 병원이 이미 들어오고 있으며, 삼성 등은 이에 편승해 영리법인화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비슷한 맥락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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