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와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우리 사회의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자유로운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이들은 24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2006 한국사회포럼’에서 ‘3인3색’이라는 코너에 출연해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그리고 스크린쿼터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사진>

신영복 교수와 홍세화 위원장은 ‘진보의 위기’라는 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 신 교수는 “사회는 한번도 전환기가 아니고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며 “진보의 위기보다는 진보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으며, 홍 위원도 역시 “진보란 그 자체가 어렵고 느리고 불편한 것”이라며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진보의 길을 가고 있는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배우 박중훈씨 또한 “진보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관객과 함께 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어 대중적 공감을 얻는 데 힘이 드는 부분이 있다”고 진보 위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을 내놓은 뒤, 스크린쿼터제 폐지에 대해 “영화제작보다는 영화유통이 가로막혀 유통부분이 막히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어려움이 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원재 2006 한국사회포럼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담을 정리, 요약했다.


진보는 원래 불편하고 어려운 것


사회자 : 한국사회의 진보는 위기인가

홍세화 : 진보는 그 자체가 어렵고 힘든 것이다. 불편하고 느린 것이다. 진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을 바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여러분도 주위의 친구들과 가족들과 토론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만큼 진보는 어렵다. 진보의 위기를 논하기보다는 진보 자체가 애당초 어려운 것이었기에 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게 맞다. 진보가 어렵고 느리고 불편하지 않았다면 우리 자신에게 진보의 몫은 없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쉽고 빠르고 편했다면 모두가 진보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의 위기’라는 말은 나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는 않는 말이다.

신영복 : 역사적으로 과도기가 아니고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위기를 논하기 전에 진보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라는 것은 사람들이 점차 잘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해가는 것, 또는 신학적 질서를 현실 사회에 재구성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관연 우리 사회가 진보해 왔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도 있고, ‘경제발전이 곧 진보’라는 다양한 의견도 존재한다. ‘어떤 방향으로 구조와 의식을 바꿔야 우리의 삶이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절망적인 논의조차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같은 경우는 감옥에 오래 있었다. 감옥에서 출소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진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감옥 바깥이 감옥 안보다 좋지 않은 면이 있었다. 감옥 시절 출소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야만 했는데, ‘냇물아 어디로 가느냐’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노래에서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대목에 오면 모든 재소자들이 많은 상념에 빠진 표정을 짓곤 했다. 감옥 바깥에 나와서도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그때의 재소자들과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청중 웃음) ‘아 이 사람도 갇혀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제, 우리 사회가 더 인간적일 수는 없을까. 우리가 좀더 주체성을 갖는 사회가 될 순 없을까. 우리 사회를 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 순 없을까. 그런 고민들이 진보의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박중훈 : 내가 이해하기로 진보의 정의 중에 하나가 ‘옳은 것은 옳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는 ‘옳은 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고. 그런데 한국사회의 보수는 옳지 않은 현실도 지켜내려고 하기 때문에 수구로 몰리고 있다. 반면, 진보는 ‘바꿈을 위한 바꿈’, 사람들이 살아가는 상식마저도 바꾸려고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우리 같은 ‘영화라는 문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술성’은 ‘보편성’보다 ‘창작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창작성 또한 관객들의 공감을 획득하려면 상식적인 선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면도 있다. 말은 쉽지만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하나로 묶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뜻을 가졌음에도 대중적 공감을 갖는 데서는 어려운 점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자 : (신영복 교수에게) 최근 학생운동이 위기라고도 한다. 과거 경험에 비춰 이야기를 해 달라.

신영복 : 나는 59학번이다. 4·19가 2학년 때, 5·16이 3학년 때 있던 일이다. 당시는 담론이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 해방 전후 넘쳤던 정치담론들이 6·25 전쟁 후에는 초토화됐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학생운동은 뜨거운 전통이 형성돼 있고, 민주운동의 성과를 어느 정도 향유하고 있다. 반대로 최근에는 진보나 사회변혁,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이 없다. 생각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기쁜 일이 생겨도 ‘내가 기뻐해야겠지’라며 스스로를 타자화 시키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막강한 문화적 포섭기제가 있다고 본다. 거기에 젊은이들의 감성까지 대책없이 포섭된 것이다. 이런 상태가 5년만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끌어갈 동력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사회자 : (박중훈씨에게) 우리 영화 문화에 대한 진단을 해 달라.

박중훈 : 한국영화의 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검열이 사라지고 많은 인재들이 영화계에 몸을 담았다. 그래서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기본적 사실이다. 이에 더해 ‘한국영화에는 힘과 역동성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 영화가 해외시장에 나가서 ‘잘 만든 영화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오히려 일본이나 유럽에 그런 영화들이 많다.
그럼에도 한국영화가 주목받는 것은 굉장히 거치면서도, 좋은 의미로는 역동성 있으면서도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배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과 음악, 화면에서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는 게 세계 영화계의 평론가들의 말이다. 우리 영화는 역동성, 강한 에너지가 장점인 것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우리의 진보운동 또한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 뉴라이트, 신보수주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홍세화 : 잘 모르겠다. 박중훈씨가 ‘보수는 좋은 것은 간직하려는 것’이라고 했는데 좋은 표현이다. 그러나 올바른 것을 간직하려는 세력은 우리 사회에 없다. 그래서 수구다. 뉴라이트나 신보수가 좋은 의미에서 보수우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일제 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로 반민족 세력이 민족세력을 청산해 왔다. 그들은 분단 상황에서 외국세력을 등에 업고 ‘보수’를 참칭해 왔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그런 수구세력과 무슨 차별성을 두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뉴’를 붙이려면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좀더 지켜봐야겠다.

박중훈 : 영화를 찍으면 대부분 어떤 장르인지를 묻는다.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다양한 것을 담고 있는데 하나로 정리하기 어렵다. 후에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장르 구분은 중요하겠지만 분류를 위한 분류는 옳지 않다. 과거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희생을 해 왔다. 그것은 독재자들이 내 편과 네 편 혹은 우와 좌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은 가져야 하겠지만 모든 것을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진보 성향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보수적일 수도 있고 보수적인 사람들도 진보적인 면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영복 : 우리 사회는 보수구조가 확고하다. 보수가 주류 담론을 지배하고 있으며 보수언론인 ‘조중동’이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보수가 완강하다는 것이다. 한 사회를 바꿔내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혁명이다. 그러나 시대의식은 그 시대의 지배구조에 기반해 있다. 그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의식변화도 어렵다. 지식인의 역할은 잘못된 보수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초기적 실천 형태로서의 의식개혁운동이다. 4·19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총알이 머리를 뚫고 지나간 줄’ 알았는데 ‘머리가 아닌 모자만 뚫고 지나간 것’이었다. 많은 것이 변할 줄 알았으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우리는 사회의 막강한 억압구조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게 시작했다. 국내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그런 세력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학생운동의 성격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뉴라이트는 ‘뉴’라면 화살은 제일 먼저 ‘올드’에 보내야 한다. ‘뉴’와 ‘올드’가 뭔가라도 달라야지 ‘뉴’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뉴라이트는 아직 ‘뉴’가 아니다.

사회자 : (박중훈씨에게) 스크린쿼터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박중훈 : 쌀은 개방하는데 너희는 왜 안 하냐, 국익을 위해라, 왜 영화인들만 자기들 밥그릇 싸움 하냐, 라는 다양한 반대 이야기들을 들었다. 또 ‘우리 한국영화 좋아하니까 봐줄께’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영화도 현실적으로 ‘유통’이 중요하다. 미국은 한해에 약 800여편의 영화를 만들고 우수작은 200여편에 이른다. 우리는 한해 70편 정도를 만들고 우수작은 10편 정도다. 200 대 10의 싸움이다. 극장은 이윤을 추구한다. 돈이 되는 쪽으로 마음이 가고 행동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스크린쿼터가 있을 때는 극장이 외국유통사에게 할 변명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가 없어진다면 외국유통사들이 ‘대작’들을 무기로 극장들을 위협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킹콩’이라는 영화를 무기로 다른 영화들까지 함께 수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영화가 발전하고 해외로 수출되면서 영화 자체가 수천억원대의 엄청난 수익을 가져오고 있다. 또한 ‘한국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것들이 스크린쿼터제 폐지로 인해 사라질 위협에 놓여 있다.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는 영화문화로부터 시작된다. 문화침투인 것이다. 더욱이 협상은 주고받고 하는 것인데 협상도 시작하기 전에 스크린쿼터를 협상의 선물로 준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

신영복 교수는 마지막으로 “올해 1학기가 끝나면 정년이 된다”는 사실을 밝힌 뒤, “여태까지는 하고 싶은 하지 못하고 말로만 옆에서 참견하다가 혼만 나고 감옥도 갔다 오고 교수도 했는데 정년이 되면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직접 할 것”이라며 “그것은 목표가 분명하고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무엇보다 내가 오래 견딜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세화 위원은 최근 프랑스 사태에 대해 지적한 ‘티슈처럼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그런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나는 공부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한 프랑스 고등학생의 말을 전하며 “근본적으로 교육 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진보진영의 고민들이 더욱 깊어져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남겼다.

박중훈씨는 “사회적으로 혜택받은 사람으로서 물질적 양극화는 물론 감정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환원과 봉사활동을 하는데 많은 노력을 바쳐가겠다”는 다짐을 내놓으며 대담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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