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식구라는 이름으로 부부와 가족이 경제적 공동체임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경제적 공동체를 이루는 가족구성원 모두 소비생활의 자원인 돈을 벌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이 벌고 같이 쓸 수도 있으나, 누구는 쓰고 누구는 벌 수도 있다. 이때 경제력을 구성함에 있어 흔히 간과되어 왔던 것이 여성이 생산해내는 무형의 가치들이다. 가사, 육아, 가족 유지, 가족구성원의 정서발달과 안정을 위한 노력 등등.

사실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오른손을 휘두르며 끄덕인다. “당연하지!” 그렇지만, 그 ‘당연한’ 가치관을 외치던 사람들 대부분은 부부가 혼인 이후에 형성한 재산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공유재산’이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바로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그건 너무하지이~. 아무리 그래도 내(대부분 남편)가 더 ‘뼈빠지게’, ‘밖에서’ 돈벌어다 만든 재산인데”라며 억울함을 강조한다.

어느 집단에서건 원칙이나 도덕적 측면에서 합의된 사항이라도 그것이 ‘돈’으로 연관되기만 하면, 늘 문제가 된다. 부당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강변하기 위해 상대방의 노동의 가치를 다시 폄하하기 시작한다.

최근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고 한다. 결혼생활을 20년 넘게 한 뒤 이혼하는 황혼이혼이 지난해 전체 이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3%로 1981년 4.8%였던 것에 비해 완전 증가한 수치이다.

황혼이혼을 말할 때면 1998년에 있었던 ‘이시형 할머니 황혼이혼소송’사건이 늘 우리의 기억을 헤집고 들어온다. 우리사회에서 첫 황혼이혼 소송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주인공은 40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강행했는데 당시 그 여성의 나이는 70세였다. 이시형씨 소송은 그녀가 72세 되던 해에 끝이 났다. 대법원은 그녀에게 재산의 1/3과 위자료 5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이혼, 특히 나이든 여성의 이혼을 둘러싸고 여성의 인권과 재산권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당시 이시형씨의 이혼제기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엔 ‘재산을 노린 이혼’이라는 비난조의 색안경낀 눈초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판결로 인해 그녀가 재산의 얼마를 분배받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40년간 함께 살며 형성한 재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의 행위를 ‘노린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여성의 재산분배 요구를 남의 것에 대한 욕심이나 침탈을 내포하는 단어인 ‘노린다’로 표현하는 것은 경제적, 정서적 공동체로 불리는 가족관계 속에서 여성의 지위와 노동이 얼마나 폄하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비단 여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사회 가족구조의 가부장성으로 인해 여성들이 노동과 임금, 재산권에 있어 불이익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남성들이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는 아들을 가진 어머니로서 당면한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나는 내 아들이 가족 부양을 위해 혼자 생계를 짊어지고 더 많이 고생한다고 생각하며 결혼생활을 하길 원치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아내와 공동으로 생활을 잘 꾸려가고 있으며 서로간의 노력이 ‘공평하게’ 들고 그래서 행복다고 생각하며 결혼생활을 하길 원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똑같이 행복한 결혼, 혹은 가족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재산의 권리를 둘러싸고 극단적인 이혼소송으로 가기 전에 재산에 대해 공평한 약정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나는 부부재산을 규정하는 민법을 ‘부부공동재산제’ 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한국여성의전화연합과 함께 국회에 발의한 ‘부부공동재산제’ 민법개정안은 혼인 이후 형성된 재산을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이룩한 것으로 추정하며, 혼인 전과 혼인 후 언제라도 부부약정을 통해 재산에 관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부부약정의 시기를 완화했다. 또한 재산 상황에 대한 정보조회권을 신설하여, 현재 별산제 하에서 명의자가 재산을 빼돌려 명의를 갖지 못한 상대 배우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부부공동재산제는 실제 법안의 통과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결혼에 대한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보편화될 수 있다. 어차피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결혼생활은 월급봉투 하나로 해결될 수 없다. 그렇다면 공동의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야 할지, 이러한 노력에 대해 얼마만큼의 권리를 서로 분배해야 할지 등에 대해 합리적으로 약정해, 차분히 계획되고 성평등한 가족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결혼생활을 통해 누구도 더 많이 고생하고 희생했다는 생각을 버릴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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