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가 4형제가 지난 10년 동안 32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처분을 기다리게 됐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 대해 지난 108일 동안 과거의 '해부식 수사'가 아닌 '정밀 외과수술식 수사'를 지향해 기업 수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 김운용 전 IOC부위원장의 사례와는 달리 불구속 기소하는 등 검찰은 형평성 논란에 휩싸여 있기도 하다.

10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두산그룹이 동현엔지니어링, 세계물류 등 위장계열사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 67억원과 두산산업개발 비자금 219억원, 두산건설 29억원, 넵스 비자금 40억원 등 총 326억원을 빼돌렸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오 전 명예회장 등 총수일가 형제 4명을 포함해 두산계열사 전·현직 대표 14명을 특경가법상 배임 및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108일 동안의 수사를 일단락지었다.

검찰에 따르면 두산그룹 총수일가는 소수의 지분 보유에도 불구하고 위장계열사를 동원해 해마다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개인 대출금의 이자 대납과 생활비, 잡비, 총수일가 세금 등 회사 공금을 개인돈처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검찰은 박용오 전 회장이 진정서에서 밝힌 미국 바이오벤처 뉴트라팍을 통한 800억원의 외화도피 혐의와 생맥주 체인점인 태맥을 통한 250억원 비자금 조성, 엔셰이퍼 부당인수 및 고려산업개발 주가조작, 두산포장 등의 신주인수권 부당인수, 4개 계열사에 대한 신협 출자 등의 혐의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은 비자금 대부분이 현금으로 조성되고 유통돼 구체적인 용처를 밝히는데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혀 수사의 한계를 드러냈다.

한편 검찰의 불구속 수사 결정과 관련해 형평성에 어긋났다며 용두사미 수사라는 비판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불기속 사유에 대해 스포츠 외교 담당자임에 따른 국익 손상, 선처를 호소한 각계의 탄원, 본인의 반성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불구속을 이끌어 낸 가장 큰 이유인 IOC 위원이라는 자리는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투명성을 떨어트려 국가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게다가 법정최고형이 징역 7년인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마저 무시했던 검찰이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인 특경가법에 대해서는 오히려 불구속 수사를 결정한 것은 '정치검찰'임을 스스로 보여준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천정배 법무장관은 "불구속 수사원칙은 헌법과 법치주의의 원칙이며 계속 확대해 가야 한다"며 "공소유지, 양형에서 충분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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