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빨리 찾아오나 보다. 외풍을 막기 위해 문풍지를 바르지만 어디론가 흘러 들어오는 바람의 심술은 피할 길이 없다. 계단 한쪽 쌓아놓은 연탄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그나마 연탄보일러라도 땔 수 있는 방은 행복하다. 난방시설이 없는 쪽방에선 두터운 이불과 전기매트를 준비한다. 외투도 꺼내 입고, 양말도 두세 겹 챙겨 입고서야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새우잠을 자다 이불 밖으로 나간 발은 냉골의 한기에 소스라친다.
한 송이 국화꽃을 바라보며 여생을
서울역 맞은편 거대한 빌딩 뒤편 초라한 쪽방촌이 드러난다. 겉보기엔 그냥 다세대 연립주택이다. 하지만 한발 짝만 내디디면 0.5평에서 1평 남짓 쪽방들이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벽산빌딩에서 힐튼호텔을 바라보면 왼쪽이 남대문 쪽방촌이고, 오른쪽이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이다. 용산이 1천여 세대로 전국 11곳의 쪽방촌 가운데 최대규모다.
규모가 큰 만큼 그 형성도 제일 빠르다. 남대문, 용산의 쪽방촌은 쪽방의 ‘원조’라 불리기도 한다.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이 7천원 정도의 일세로 하루를 나기도 하지만 이들은 뜨내기일 뿐이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장기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들은 18만원 내외의 월세를 내고 산다. 주로 독거노인들과 장애인 그리고 사업실패로 가족이 1평 남짓 쪽방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대문로 5가 622번지 회현동. 조수남(85) 할아버지가 홀로 살아온 지도 십 수 년이 훌쩍 넘었다. 월세 15만원은 기초생활수급 34만원으로 충당한다. 버너에 냄비하나, 전기밥솥, 전기주전자, 간단한 취사도구와 전기이불, 두꺼운 외투가 좁은 방을 채우고 있다. 여느 쪽방 사람들처럼 단촐한 살림살이다. 방 한 켠 창가에 놓인 노란 국화꽃이 화사하다. 맥주병을 화병 삼아 꽃아 놓은 몇 송이 국화꽃.
“할아버지, 꽃 좋아 하시나 봐요.”
“그냥 산책 나갔다가 몇 송이 꺾어 오곤 해.”
내 누님 같고, 내 어머니 같은 국화꽃을 바라보며 노인은 눈물지으리라. “저런 미물도 꽃을 피우며 화사한 생명력을 자랑하잖아. 그러곤 또 이내 시들지.” 몸은 바짝 마르고, 주름은 깊어지고, 허리는 휘듯이 노인은 오늘내일 찾아올 죽음을 그렇게 준비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살다가 조용히 이곳에서 죽어야지.” 팔순의 할아버지는 대각선으로 뻗어야만 몸을 누일 수 있는 쪽방의 삶을 탓하지 않는다. 0.5평 좁은 쪽방에서 인생은 마무리 되리라. 자식들이 보고 싶지는 않을까? “이 나이에 자식들, 일가친척 찾아봐야 이제 무슨 소용이요.” 누추한 몸으로 짐만 될 뿐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징용을 피해 만주로 피신한 얘기며, 해방되고 공사판을 전전하며 다녔던 이야기들. 그러나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다. 구구한 이야기들이 이제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갈하게 씻고 다소곳이 정좌해 있는 노인. 그의 삶은 우리의 현대사처럼 굴곡졌겠지만 죽음 앞에 당당하고픈 모습은 숙연한 아름다움이 묻어났다. 마치 ‘피고 또 지는’ 국화꽃처럼.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보인 할아버지의 반응이 그의 삶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노동일 하면서 돈 모은다는 건 거짓말이야. 저 노동자들, 사정 내가 잘 알지.”
현대판 ‘고려장’ 쪽방의 쓸쓸한 초상
쪽방 부근을 산책중인 정문녀(82) 할머니. 30여년을 이곳 쪽방에서 살아온 할머니에 대해 동행한 나사로의 집 김흥용 소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어려운 살림에도 명절이면 꼬박꼬박 2만원씩 봉투에 넣어 헌금해요. 자신보다 더 소외된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소중해요.”
남대문, 용산지역 쪽방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렇듯 몸 가눌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이다. 쪽방의 겨울은 현대판 ‘고려장’이 성행하는 을씨년스런 풍경이 연출된다. 늙은 부모를 지게에 지고 가 산이나 동굴에 버리듯 도심 속 ‘외로운 섬’에 버린다. 노인들 스스로 쪽방을 찾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어렵고 힘들게 사는 자식들에 짐 되기 싫어 스스로 찾아드는 것이다.
조용하게 여생을 마무리하며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노인들이 있다면 대다수 노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비참한 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서, 몸이 아파도 약을 쓰지 못해서, 연탄 한 장이 없어서, 그렇게 죽는 겁니다.” 이들의 죽음은 며칠이 지나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인이 방세 받으려 왔다가, 시신이 부패해 썩는 냄새가 나서야. 장례식도 어렵다. 장례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연고자가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지문을 찍어 신원조회를 하고 가까스로 연고자를 찾아 전화해도 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김 소장은 그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한 많은 인생. 쓸쓸하게 죽어간 쪽방촌 이들의 삶을 기록한 양지교회 소식지를 넘겨봤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두재씨. 객사였다. 그는 3년 동안 나사로의 집을 드나들던 걸인이었다. 10년 이상 서울역 등지에서 걸인생활을 하다보니 연고자도 찾을 수 없었다. 김 소장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장례를 치르던 날. 묘지까지 따라온 쪽방촌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살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해 취로현장에서 현기증에 쓰러졌던 구상봉씨. 영양실조였다. 끼니를 때울 것이 없어 거의 매일 설탕물이나 라면으로 연명했기 때문이었다. 기초생활 수급 혜택도 받지 못한 구씨는 일하며 번 돈에서 방세를 내고나면 수중에 돈은 몇 푼 남지 않았다고 했다.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의 애틋함
어둠은 금새 찾아왔다. 시간에 쫓겨 또 다른 할머니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장점덕(65) 할머니는 동자동 쪽방에서 10년여 생활하다 지난해 나사로의 집과 교회의 도움으로 전세금을 마련해 인근에 2층 방을 구해서 살고 있다. 할머니는 3살 난 손녀를 키우고 있다. 엄마는 아이를 밴 몸으로 쪽방을 찾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도망을 쳤다. 원치 않는 아이였고,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 뒤로 나간 아들도 연락이 끊겼다. 할머니의 아들은 20여년 전 장사할 때부터 벌어놓으면 그 돈 가져가서 탕진하기를 반복했던 철부지였다. 할머니가 손녀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든 손녀 고등학교까지는 키워야 하는데….” 할머니는 백내장, 관절염 등 자신의 성치 않은 몸이 걱정이다.
교회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집을 찾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이는 신나서 맨발로 뛰어 나간다.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기자와는 달리 낯익고 살가운 표정이다. 일주일에 한번 들러 잠깐 가르쳐주는 공부지만 아이는 선생님을 무척 따랐고, 그 시간만 기다려지는 모양이다.
장 할머니는 아직 보증금 500만원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금에서 월세 10만5천원을 내고 있다. 교회에서 쌀이며, 옷가지, 반찬 등을 제공해 주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어렵다. 어려운 살림에도 할머니가 빼 먹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손녀의 앞날을 위해 매달 붓고 있는 2만원짜리 보험이다.
계속되는 쪽방 철거 대책은?
극빈층의 마지막 삶의 터전 ‘쪽방’의 철거도 가속화되고 있다. 도심의 금싸라기 땅이 ‘개발’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서울역 맞은편 게이트웨이 타워 뒤편. 남대문 지역 회현동 일대도 200여 세대가 나갔고,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쪽방 주민들은 철거에 따른 아무런 보상도 없이 또 다른 인근의 쪽방과 도심 외곽의 비닐천막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영등포 쪽방지역 철거에서 보듯 철거대상 주민 80%는 관내 쪽방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몇몇 주민들은 재차 노숙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한다. 개발에 밀린 도시 극빈층의 마지막 보루 쪽방의 철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영구임대주택’ 등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면 좋으련만,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60년대 걸인, 노숙생활을 했고, 한국은행 퇴직금을 털어 지난 97년 ‘나사로의 집’을 설립하면서부터 활발한 구제활동을 하고 있는 김 소장. 소외된 이웃의 자립, 자활을 위해 ‘죽을 시간도 여가도 없다’는 김 소장은 영구임대주택 얘기가 나오자 말을 쏟아냈다. 극빈층의 마지막 삶의 터전을 대책 없이 철거하고 있는 것에 그는 분개했다.
“이 곳 2천여 세대, 막말로 방 2천개면 해결돼요. 정치인, 기업인들이 매년 겨울철이면 찾아와 생색내기나 하지 말고, 자활해서 전세라도 나갈 수 있도록 보다 근원적 해결책을 생각해야 합니다.” 밥 퍼주고, 점퍼 나눠주고, 연탄 몇 장 보내고, 그리고는 신문방송에 대문짝만하게 ‘사회공헌’ 활동을 홍보하는 세태. 김 소장이 달가울 리가 없다.
“시골의 200여평 집을 개조해 쪽방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 나름의 이주대책을 제시하고 개조에 필요한 물품과 비용 등의 지원을 부탁해도 묵묵부답일 뿐이다. 자립과 자활을 위해 ‘안정적인 주거’만큼 근원적 해법이 있을까? 어둠이 내린 쪽방촌에는 그 흔한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적막이 흐른다. 누군가 길가에 널어놓은 빨래도 내년에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무심한 빌딩 뒤에 가려진 쪽방. 빌딩의 그림자는 그곳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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