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에게도, 담배가게 주인에게도,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운영하는 포장마차에서도 보이지 않던 '선거'를 찾기 위해 기자는 공장 담벼락 안으로 들어갔다. 진보정치 1번지 울산 북구의 가장 든든한 ‘빽’이자, 10·26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비빌 마지막 언덕인 현대자동자 울산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흔쾌하지 않은 현장조직

공장 입구로 들어가는 길, 민주노동당 정갑득 후보를 지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보였다. 공장 안은 이미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정치’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소한 공식적으론 그랬다. 하지만 흔쾌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노조 현장조직들이 발간한 유인물.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 신문인 <노동자의길> 18일자 1면에는 “비리로 얼룩진 현 집행부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라는 큰 제목이 보였다. 이번 비리사태의 발단인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얼굴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재선거 관련 글은 마지막 면에 1단기사로 처리됐다.

민주노동자회(민노회)에서 발간한 한장짜리 유인물 앞면에는 오는 12월 현대차노조 임원선거에 대한 민노회의 입장이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반면 선거 관련 글은 뒷면 가장 구석에 1단으로 처리돼 있었다. “현장은 이미 정갑득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미 단결돼 있다”는 한 선거운동원의 말이 ‘착각’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선거 분위기가 안 뜬다”

노조 대의원의 도움을 얻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40대 중반의 한 조합원은 “집사람이 투표 안하면 쫓아낼 것”라며 웃으며 말한다. 누굴 찍을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현장의 선거 분위기가 안 뜨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초반의 조합원은 “재선거인 만큼 선거 분위기가 안 난다”고 말했다. ‘투표하러 갈꺼냐’는 질문에 “저녁6시까지 못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투표시간이 저녁8시까지라고 말하자, “그럼 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의 투표시간 확보를 위해 관철시킨 저녁8시 투표시간이 현장에는 아직 홍보되지 않은 것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40대 초반의 다른 조합원은 “조승수는 아깝다”면서 “선거 분위기가 뜨고 있진 않지만 우리가 한나라당 찍겠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을 들어보자. “당선된 다음이 중요하다. 정갑득씨가 당선되면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북구에 시장도 부족하고, 상가도 좀 생겨야 한다. 북구는 낙후돼 있다. 북구에 투자하고, 주민들에게 도움을 줘야 다음에도 될거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진보정치’란 무엇인지 궁금해질 무렵, 혼란스러움의 실체에 대한 정제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저 정치에 관심 없는데요. 선거에 관심 없어요.” 25살이라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말이다. (역대 선거에서) ‘투표하러 간 적이 있냐’는 질문에 “지난 대선 때 군대에서 한번 했다”는 답이다. 현대차 공장에서 일한지는 2년, 그는 지난 4·15 총선 때도 투표하러 가지 않았고, 이번 재선거에도 투표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공장을 나서는 길, 취재에 도움을 주었던 대의원은 “각 현장조직들이 도움주겠다고 말은 하는데, 실제 움직이지는 않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씁쓸한 기분으로 공장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가는 길, 현대차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효문공단을 보며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저쪽 공단은 주로 현대차 부품업체들이 있다면서요?” 돌아온 답은 기자의 입맛을 더 쓰게 만들었다. “보아하니 젊은 사람 같은데, 협력업체로 가지 말고, 현대차 안에 하청업체로 자리를 잡아. 그게 그나마 정규직 될 가능성이 있지, 밖에 협력업체로 가면 희망이 없어.”

정갑득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현장에 분위기를 잡은 것이 어제(16일)부터니까 이제 분위기가 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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