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택시업계 대표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국회의원 일부가 경영난을 겪는 택시사업자에게 정부가 지원금을 지원하고 수명이 다한 택시의 폐차시기를 늦춰주는 등 택시사업자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정치자금법 위반과 배임증재, 공금횡령 등 혐의로 박복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을 구속한 서울남부지검에 따르면, 박 이사장은 공금을 유용해 열린우리당 의원 4명과 한나라당 의원 6명 등 10명에게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각 200만~400만원씩의 모두 5천여만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박씨는 또 수배중인 권오만 전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구속된 강승규 민주노총 전 수석부위원장 등 노동계 간부들에게도 금품을 건넨 혐의를 사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박씨는 또 지난해 17대 총선 후보들에게도 공금으로 선거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노조간부 접대비와 개인용도 등으로 공금 4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연합회는 전국 택시사업자들의 단체로, 박씨는 지난 1999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치자금을 받은 10명의 의원 가운데 7명은 택시운송업과 관련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일부 의원들은 지난달 30일 경영난을 겪는 운송업체가 스스로 택시를 감차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차령(차의 수명)을 최대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스기사 참조>

<매일노동뉴스>가 13일 확인한 결과 박 이사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의원은 김동철, 윤호중 열린우리당 의원과 김병호,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 등 4명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모두 건교위 소속이다. 이들 의원들은 구속된 박씨가 검찰에서 밝힌 건교위 소속 7명 중 4명인 것으로 보인다. 박씨가 밝힌 10명 가운데 나머지 6명(건교위 3명 포함)은 13일 현재까지 수수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들 가운데 김동철 의원은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윤호중 의원은 이 개정안 발의에 서명했다. 김병호, 김학송 의원은 건교위원이지만 이 법 개정안 발의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 외에 법 개정안에 서명한 의원들은 박상돈, 장경수, 주승용, 노영민, 이호웅, 김태홍, 염동연, 양형일 의원(이상 열린우리당)과 최인기, 이낙연 의원 (이상 민주당) 등 모두 12명이다.

서명 의원 가운데 건교위 소속인 열린우리당 박상돈, 주승용, 노영민, 이호웅 의원은 박씨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고, 장경수 의원은 수수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김태홍, 염동연, 양형일 의원은 건교위 소속이 아니어서 확인 대상에서 제외했다. 민주당 최인기, 이낙연 의원은 건교위 소속이지만 박씨가 진술한 두 당 소속이 아니어서 확인하지 않았다.

법안을 대표발의 한 김동철 의원은 올해 2월 등 수차례에 걸쳐 후원회 계좌를 통해 박씨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박씨가 건넨 후원금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윤호중 의원도 올해초 박씨가 후원금을 입금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은 김병호 의원은 지난 2월초 박씨로부터 후원금을 입금 받았으며, 김학송 의원은 지난해 12월 17일 박씨로부터 200만원을 송금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4명의 의원들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후원금 내역을 회계장부에 기록하고 중앙선거관리위에 제출하는 등 합법적으로 처리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개인은 연간 2천만원 한도 내에서 의원 1인당 500만원까지 정치자금을 낼 수 있다. 1회 10만원 또는 연간 100만원을 초과하는 후원금을 반드시 실명으로 내야 한다. 또 법인은 정치자금을 낼 수 없고, 의원들은 연간 1억5천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박씨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의원들은 영수증을 발급하고 회계처리와 선관위 신고 절차를 밟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물론 후원금 입금 사실을 확인 4명 의원 모두 이러한 절차를 모두 밟아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윤호중 열린우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12일 “박복규씨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며 “박씨가 어떤 기준으로 의원을 선정해 후원금을 입금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통장에 돈이 들어와 있어 박씨라는 사람이 돈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실 관계자도 같은날 “지난해 200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고, 이미 법에 따라 선관위에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동철 의원은 13일 “박씨는 개인명의로 후원금을 냈을 뿐 이 법 추진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LPG부가세 면세법안에 반대했다가 개인택시 기사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 이후 택시문제는 공급과잉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감차의 필요성을 자체 판단해 법안을 추진했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법안 추진과정에서 사업조합과 택시노조, 개인택시들의 의견을 모두 들었다”며 “사업조합은 오히려 전액관리제 폐지와 지입제 허용 등도 요구했는데 이는 곧바로 거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대노총 택시연맹 관계자들은 김 의원 주장에 발끈했다. 김성환 민주노총 민주택시연맹 정책국장은 13일 “법안 전체 내용에 반대한다”며 “이 법안은 기존 사업자들의 기득권을 영구히 보장해주는 법안으로, 사업자들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된 법안”이라고 말했다.

임승운 택시산업노조 정책국장도 “법안은 철저히 사업자를 위한 법”이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고 국회가 폐기시켜야 할 악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임 국장은 또 법안과 관련해 김 의원실과 전화통화도 한 적이 없으며, 법안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거나 의견을 밝힌 적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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