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자가 유학하던 시절 런던시내에 좀 잘 차려입고 나가면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받고, 좀 초라하게 하고 나가면 베트남 난민이냐는 동정어린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올 여름 연구교수로 이곳에 와서는 예외 없이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받는다.정말이지 중국인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고 여기 유학생들이나 심지어 옥스퍼드 대학에 ‘유일한’ 진보적 지식인 Andrew Glyn 교수와의 만남에서도 이 주제가 거론되었다.

홍콩이 중국에 넘어가면서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빠져나온 중국인들과 본토에서 학업, 사업관계로 나온 중국인들이 뒤섞여 있는 양상이다. 싫건 좋건 한국인이라는 소수자는 지금부터 중국인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양 사람이 한국인과 중국인을 사촌쯤으로 간주하는 마당에 중국인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면 덩달아 한국 사람도 서양에서 고생하게 되어 버렸으니 어쩌겠는가? 

금융자유화가 각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지난주 Glyn교수와 2시간에 걸친 대화에서 필자는 세계화에 대해 한국의 진보진영과 서구의 진보적 지식인간에 존재하는 강조점이나 해석에 있어 공통점은 물론 미묘한 차이점도 확인하였다.

우선 지난 10~20년간의 국제적 경제통합과 자유화가 세계경제를 불확실과 불안정이 지배하는 시대로 이끌었다는 것, 특히 금융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취약성, 그것이 실물경제에 주는 과도한 부정적 영향, 미국의 과도한 대외채무 문제 등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이었다.

흥미 있는 관찰은 미국의 경우 ‘쥐꼬리만한’ 국내저축은 군비지출 등 정부재정적자와 일반가계의 주택투자에 다 쓰고 실제 GDP의 약 5%에 이르는 기업의 순투자(=총투자-감가상각)는 순전히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이루어진다는 계산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가 빚으로 연명하고 있는 현상은 놀라운 일이다. 공급되는 외국돈의 약 절반은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화폐의 가치상승과 그에 따른 수출 감소, 외환위기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의 재무부증권과 회사채 매입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장차 국가간 채무조정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금융자유화가 각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빈발하는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으로 증명되고 있다. 금융자유화가 각국의 거시불균형의 제약을 완화하고 보다 부드럽게 넘어가게 하는 효과도 분명 있으나 단기자본의 빈번하고 급격한 이동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화, 성장률의 억제 등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위기는 그 비용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사회안정 측면에서도 문제거리이다. 그런데 이미 '고삐 풀린 자본주의'(capitalism unleashed)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냐는데 대해서는 Glyn교수도 아무런 답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서구사회가 중국에 느끼는 복잡한 감정

한국에서도 중국경제의 영향은 이미 충분히 논의된 것이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서구의 경우 중국 제조업과 수출의 성장은 그것이 선진국의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을 파괴하여 일자리수를 감소시키는 점에서 강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들 제조업을 포기하고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이동하는 경우 새로 생기는 하나의 일자리에 대해 6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화되고 임금은 억제된다. 일본, 한국이 수출주도로 고성장할 당시에도 유사한 효과가 있었지만 이들 경제가 성장하면서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잉여인력이 고갈되고 임금도 급속히 상승하였기 때문에 선진국 노동시장에 대한 교란효과는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잉여인력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데서 다른 결과가 예상된다. 현재 총 7억 5천만의 종사자 가운데 약 반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도시부문으로 나올 수 있는 잠재인력이 약 1억5천에서 3억에 이르고 있고 국유기업의 잉여인력 방출까지 더해진 때 그 엄청난 숫자가 가지는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모두 흡수될 정도로 중국경제가 팽창하게 되면 중국의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몫은 2003년의 7.3%에서 다시 7%포인트 증가하여 약 1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다.

이는 전 세계 에너지 수급 균형문제, 산업 재조정 문제, 고용조정 등 여러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Glyn교수는 질은 차치하고 그 엄청난 양이 가진 세계경제에 대한 교란효과를 엥겔스의 양질 전환의 법칙까지 거론하면서 강조했다. 중국의 성장으로 일부 저가제품이나 노동집약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대신 다양한 중화학제품을 수출하여 중국성장의 최대의 수혜국이 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중국의 잠재적인 불안정화 가능성을 다소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화와 사회안전망 동시 진행되는 이유

짐작은 했지만 서양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세계화, 특히 생산과 무역 측면에서의 세계화와 중국의 진출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그것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밀접히 관련이 있었다. Glyn교수는 중국의 경우 노동조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특히 중국 내 한국과 대만의 기업에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심하기로 유명하다는 보고서도 인용하면서 선진국이 노동자들은 당연히 하향평준화(race to the bottom)의 압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노동시장유연화에 대한 압력 또한 크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는 이미 오래된 얘기이다.

결국 시장자유화를 기조로 한 세계화는 선진국과 한국같이 최근에 급진적인 시장개혁을 추진한 나라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고 그 내용에 있어서 다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투기자본의 대량 유입에 따른 장기투자위축, 경영권 불안정화, 비정규직 증대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 점에서 선진국은 가해자, 수혜자의 입장이고 서구에서는 다른 측면의 부정적인 영향이 문제로 되고 있다고 정리하면 될 것이다.

흥미 있는 점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유럽의 경우는 보수당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정당이 권력을 차지하고 세계화에 따른 내부 조정을 지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는 9월말 10월초에 각 정당의 전당대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 가디언의 한 칼럼리스트는 보수정당은 세계화 흐름을 타지 못하여 당분간 권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각국마다 다양한 사정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시장이 강화되고 개방될수록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따라서 국가의 사회안전망도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어야 사람들이 불안, 불만도 억제될 수 있다는데서 그 근본유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정당이 세계화를 어쩔 수 없다는 이유, 또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방향으로 추구하는 경우에 그들은 동시에 사회보장, 사회안전망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견이 없는 공통적인 견해는 세계의 불안정성과 구조적 여건의 급격한 변화는 미래에 대한 예측 자체를 불가능하게, 또는 불필요하게 한다는 점이었다. 미래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는 진실은 혼란상황에서 그 무게를 더하면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