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뉴스를 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니들 식구들도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고….”

2년 전 단위노조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친정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간 날 79세 노모는 짤막한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조 위원장으로 일하는 동안 어머니는 못내 불안하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노조 위원장을 하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의 신분(?)을 알게 되셨다.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비밀은 오래가기 어려웠다. 단위노조라고는 하지만 10개 지부를 두고 있던 관계로 지방출장에, 집회에 늦게 들어가거나 아예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니 비밀을 오래 지속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추궁이 시작될 무렵 먼저 나의 노조활동에 대해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뉴스를 두려워하셨던 어머니

그때부터 어머니는 뉴스를 두려워하는 분이 되셨다. 뉴스에서 집회 장면, 파업 소식,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하는 화면이 보일 때마다 당신 자식이 그 대열에 함께 하지나 않았는지 전전긍긍하며 뉴스를 보셨던 것이다. 그래서 큰 노조 파업이나, 집회가 뉴스에 등장할 때면 어머니는 딸에게 근심어린 안부전화를 하곤 하셨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고 해고되는 현실, 사측의 노조간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잦아지면서 그나마 살고 있는 집이라도 지킬라치면 명의라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조간부로 활동한다고 하면 가족 친지들은 먼저 걱정부터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여성으로 노조간부 활동을 하는 것은 더 걱정스런 일이다. 여기저기 집회 참가하고, 수없이 많은 회의를 하다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밤늦은 귀가를 할 수밖에 없다. 결정해야할 사안, 쏟아지는 요구안, 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가족은 뒷전이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친정어머니, 시어머니의 부담이 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밤늦게까지 놀이방에서 부모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집회투쟁 과정에서 연행이라도 되게 되면 집안은 쑥대밭이 되기 일쑤다. 그러니 여성이 노조간부로 활동을 한다고 하면 우리의 친정어머니, 시어머니들은 가슴을 졸이며 지켜볼 수밖에.

그래도 나는, 그런 부담을 안고 꿋꿋이 일하는 노조간부들이 있기에 우리 노동운동이 이만 큼 발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보면 언제까지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이 이런 근심과 걱정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되묻곤 한다. 불굴의 투사만이 노동운동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노사관계, 나아가 그 사회는 이미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정상 아닌가 말이다. 

가정의 평화까지 위협해서야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운동을 불법으로 만들고,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하고, 구속하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 선진국의 노사관계일수록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구속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요즈음 얘기되는 노사관계 로드맵 논의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노동운동도 바뀔 것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업투쟁을 하지 않으면 뭔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거나 해고된 노조간부들의 고통은 당연히 그러려니 하면서 외면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노조간부들도 개인적으로는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생활인이다. 노동운동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노조간부들이 조금은 힘들더라도 가정의 평화까지 위협받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데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도 구속된 자식을 풀어달라고 구치소 앞에 사시는 어머니, 노동운동 과정에서 산화해간 자식의 주검을 부여안고 “우리자식을 살려내라”고 절규하는 부모님들의 애끓는 절규를 들을 때마다, 내가 임기 마치고 1년도 되지 않아 효도다운 효도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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