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에 근무하는 철도노조원들은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더불어 매주 금요일 영등포역사 공공성 확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6월8일부터 19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이 투쟁은 영등포역 공공통로의 3/4 가량을 점거하고 장사를 하고 있는 롯데백화점에 맞서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를 위해 철도노조는 장애인이동권연대, 민주노동자연대 등 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책위원회를 꾸려 꾸준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처음에 시민들은 ‘노조가 별걸 다 한다’는 썰렁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한 철도노동자는 ‘한국의 시민들에게 공공성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명운동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반응은 좋아지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무수히 사회공공성 강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시민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시민들에게 역사가 공공영역이라는 생각을 만들어주는 것이야 말로 공공성 강화 투쟁의 진정한 시작일 수 있다. 투쟁에 참가한 철도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부터 공공영역을 빼앗기고 있는데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사회공공성 강화에 귀 기울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영등포역사 공공성 확보 투쟁

지난 여름 방학 전국과학기술노조는 ‘참과학 열린학교’를 운영했다.<사진> 지역 내 저소득층 가정 자녀와 결식아동들을 중심으로, 맞벌이 가정의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모아 진행된 이번 과학학교는 4주에 걸쳐 컴퓨터 교육과 항공우주연구원 지질자원연구원 등의 방문 체험과 각종 과학실험 프로그램, 그리고 노인복지관 봉사활동 등으로 구성되었다. 물론 이들에 대한 교통편과 점심식사는 과학기술노조가 자체 예산으로 충당했다. 자원 봉사자는 과기노조 간부와 조합원,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맡아 주었다. 참가 어린이들은 물론 지역 사회의 반향이 적지 않았다.


평가 설문 결과 프로그램이 좋았고 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95%를 넘었고 벌써부터 겨울 방학에도 이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를 묻고 신청해 놓은 가정도 있다. 물론 이는 곧바로 과기노조에 대한 칭찬 여론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휴가 하루 못 가고 이들 어린이들을 도와준 자원 봉사자들과 이를 지켜본 조합원들이 빈곤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노조 고영주 위원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전문 과학기술자로서 연구에 몰두하다보면 빈곤층에 대한 감성적 유대를 잃고, 중산층 의식을 갖기 쉽다. 이는 노조 약화로 이어져 왔다. 그래서 노조의 지역 활동은 단순히 노조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기반을 넓히는 역할을 넘어 노조의 계급성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과기노조 ‘참과학 열린학교’

사무금융연맹 서울보증보험노조 현장 간부 7명은 지난 8월18일, 6박7일간에 걸쳐 필리핀을 방문했다. 필리핀노총(KMU)과의 현장 교류방문을 위해서였다. 필리핀의 장기투쟁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며 투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입맛에 전혀 맞지 않는 음식과 고온다습한 기후, 불편한 잠자리 등 생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 참석자는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함께 연대해서 목숨 내놓고 싸우는 필리핀 노동자들을 보면서 비정규와 연대조차 주저했던 스스로가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국제연대는 구체적 성과로도 이어졌다. 서울보증보험노조는 이 투쟁을 계기로 조합비에서 매월 7만원을 필리핀 노조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교류와 연대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물론 이는 곧바로 조직력 강화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연대라면 상층 노조간부들끼리 모여 앉아 회의하는 것으로, 마치 못사는 노동자들에 대해 ‘지원(연대가 아닌)’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풍토에서 풀뿌리 국제연대를 통해 노동조합 강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서울보증보험노조의 발상의 전환은 매우 신선하다.


서울보증보험노조 필리핀 방문


많은 이들이 노동운동의 위기를 얘기한다. 그러나 대안에 대한 얘기는 별로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대안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엄청난 이론적 식견과 풍부한 경험을 갖은 메시아의 영역인 것처럼 생각한다. 실제로 메시아를 자처하는 노동운동가 혹은 조직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자신들의 노선과 조직만이 운동의 변혁성을 담보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대안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작지만 소중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성이 축적될 때 만들어진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위기의 대안은 아래로부터의 실천이다.

모든 노동운동가들이 한 목소리로 지적하듯 변혁적 노동운동의 토대이어야 할 노동조합이 실리주의에 매몰되고 그 결과로서 노동계급 내부가 분절화 된 데 작금의 노동운동의 위기가 존재한다.

따라서 대안은 아래로부터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성 회복과 계급성의 강화이다. 이는 지도노선의 좌우 이전의 문제이다. 이러한 아래로부터 토대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 운동노선의 좌우로 변혁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마치 4바퀴 모두 ‘빵구’난 자동차를 놓고 ‘왼쪽바퀴부터 바꿔야 한다’ ‘오른쪽부터 바꿔야 한다’며 논쟁하는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진다.

조직형태 논쟁 또한 마찬가지다. 대산별이냐 소산별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현장 강화 방안이 없는 산별논쟁은 마치 티코 엔진에 차체를 그랜저로 올리느냐 벤츠로 올리느냐 하는 논의만큼 허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아래로부터의 실천이 대안이다

노동조합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한 채로 지도노선의 좌우만을 문제 삼는 것이나 조직형태 변경을 대안으로 설정하는 것은 현실 노동운동 위기의 대안일 수 없다. 그래서 철도노조의 아래로부터의 공공성 강화 투쟁, 과기노조의 지역 빈곤층에 대한 진지한 개입 노력 그리고 서울보증보험의 풀뿌리 국제연대는 작지만 소중한 대안적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적 토대가 쌓일 때, 노동운동이 아래로부터 사회운동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노동운동 위기의 대안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시기 노동운동 위기의 대안은 위로부터의 쌈박한 지도노선의 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성을 회복하는 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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