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북구는 민주노동당 ‘동네’, 양아치들 말로 하면 ‘나와바리’다. 국회의원부터 구의원까지, 이 동네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여당이다. 구의원 8명 가운데 5명이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조합원 출신이다. 민주노동당의 표어는 노동자와 서민의 정당. 그러니까 울산 북구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노동자와 서민의 동네다. 

이런 ‘좋은 동네’에 사는 박광식씨(38)와 조남례씨(37)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도 않을 뿐더러 관심도 없다. 광식씨는 레미콘업체에서 기사 겸 정비사로 일하고, 남례씨도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진짜 노동자 부부. ‘진보’라는 단어가 없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 진짜 노동자 부부다. 그런데 왜?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러냐고? 천만에 말씀. 광식씨와 남례씨는 먹고 살기 바쁜 만큼, 아니 그 이상, 오순도순 웃으며 산다. 이 부부는 ‘정치’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식씨와 남례씨가 자랄 때 그들은 항상 ‘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꿈꾼다. 노동자 부부는 우리 대에서 끝이라고.

산전, 수전, 공중전…‘봄날’은 간다

광식씨가 첫 직장에 들어간 것은 열일곱살 때.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1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더 멋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더 많이 준다고 해서, 회사가 망해서, 친구 따라서, 재수가 없어서…. 이직의 이유는 광식씨가 살아온 사연만큼이나 많다. 어쨌든 광식씨는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노동자다.    

광식씨의 고향은 전북 남원이지만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때 대구로 이사 왔다. 대도시에서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다. 광식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을버스 기사의 소개로 버스회사에 취직을 했다. 기사, 정비사들의 잔심부름을 하고 한달에 6만원을 받았다. 광식씨는 손재주도 좋고, 영리했다. 어깨 너머로 정비 기술을 배웠다. 가끔씩 정비사 형님들의 연장이 ‘광식이’한테 날아오기도 했지만, 그놈의 ‘사회생활’이라는 말에 그러려니 했다.

스물한살 되던 해에 버스회사를 그만두었다.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가 싫었다. 그리고 광식씨는 젊었다. 공장 밖을 벗어나면 더 멋있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88서울 올림픽 깃발이 펄럭이던 대구 동성로. 광식씨는 전신주에 붙어 있던 선원모집공고를 봤다. 음, 사나이라면…. “국위 선양도 하고 집안에도 보탬이 되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에 양수겸장이었다.

부산항을 떠난 배는 북태평양 베링해로 가서 명태를 잡았다. ‘어깨 넘어’ 눈치가 보통이 아닌 광식씨는 영어 단어 몇마디도 귀에 집어넣고 다녔고, 이 덕에 ‘똘똘이’로 꼽혀 조타수로 일했다. 월급은 한달에 40만원이었다. 이 돈은 고스란히 집으로 보내졌고, 아버지는 소를 사고 형님 장가 밑천으로 썼다.

광식씨는 자신이 배 체질이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조타수라 해도 원양어선이다. 그런데 광식씨는 별로 힘든 줄 몰랐단다. 꼬박 열달을 배에서 일한 광식씨는 1989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배를 한번 더 탔다.

버스회사로 돌아왔다. 배 체질이라는 것하고 뱃일이 위험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 앞에 호기를 부리는 것도 한두번이다. 배 타면서 기계를 더 익힌 광식씨였다. 정비기술은 녹슬지 않았고 험한 뱃일을 하면서 생긴 자신감까지 붙어 실력 있는 정비사라는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월급을 3배나 올려준다고 했다. 당연히 회사를 옮겼다. 한 3년 다니자 이번에는 월급은 비슷했지만 사택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다시 옮겼다. 1998년, 이 회사에서 사표를 쓰기 전까지가 광식씨의 봄날이었다. 
   
열네살 남례씨…공장의 마스코트가 되다
 
남례씨는 광식씨보다 세살 빠른 열네살 때부터 공장에 일을 하러 다녔다. 남례씨의 고향은 전남 해남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대구로 왔다. 대도시에서, 남례씨 부모님은 광식씨 부모님과는 달리 농사지을 형편도 안 됐다. 아버지께서는 집에 계셨고, 어머니께서 집안을 돌보셔야 했다. 남례씨는 남례씨 언니와 함께 성서공단에 있던 섬유공장에서 일했다. 엄마, 언니, 남례씨 이렇게 여자 세 명이 벌었는데도 남자 한 명 버는 것보다 못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돈을 벌어 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례씨가 다니던 섬유공장은 성서공단 내 복명직물이라는 작은 회사로, 일하는 사람은 10명이었다. 어머니께서 취업동의서를 써주셔서 ‘열네살’ 남례씨는 취직이 됐다. 2교대였고, 하루에 12시간씩 일했으며, 월급은 12만원에 보너스 300%였다.

‘아줌마’ 남례씨는 ‘꼬맹이’ 남례씨를 두고 졸음만 오지 않았다면 그때 그 공장에서 일했던 게 차라리 나았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를 푼다.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일하는 남례씨는 공장의 마스코트였다. 힘들기로 말하면 공장 언니들이 더했겠지만, 다들 남례씨를 이뻐해줬다.

공장 오가는 길, 어쩌다 맞이한 휴일에, 또래 아이들이 가방을 들고 학교 오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나빠졌다. 동네 어른들이 혀를 차며 하시는 “나이도 어린 것이 고생이 많다…”는 말씀도 정말 듣기 싫었다. ‘꼬맹이’ 남례씨는 ‘비교’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보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될 것 같아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여기에서 광식씨를 만났다. 학교에서 사귄 친구가 광식씨를 소개해 주었다. 처음에는 ‘날라리’ 같아서 싫었지만, 자상함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찾은 듯해 함께 살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1991년 살림을 차렸다. 광식씨가 450만원을 주고 방을 구했다. 남례씨는 회사에서 명절 때 받은 이불과 냄비를 들고 갔다.

남례씨는 그때 엄마를 원망했다. 열네살 때부터 번 돈을 엄마한테 고스란히 다 드렸는데 어떻게…. 엄마는 그 돈으로 남동생들 공부를 시켰다. 섭섭했지만 남례씨에게는 광식씨가 있었다. 남례씨는 행복했고, 행복은 잊는 데에서도 찾아오는 법이다.


“‘비빌 언덕’이 없는데 어느 곳에 산들…”

살다보면 실수를 하게 된다. 문제는 만회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인데, 쉽게 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광식씨와 남례씨는 열심히 일했지만 ‘비빌 언덕’이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새 직장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외환위기 탓이었나. 그 와중에 광식씨가 그만 사고를 냈다. 다른 사람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낸 것이다. 음주운전이었다. 차값에, 치료비에, 170만원이 필요했다. 모아둔 돈은 두달 전에 아파트 사느라 다 털어넣었다.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버는 돈은 없었지만 생활비는 필요했다. 10만원, 20만원씩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현금서비스 받은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카드를 사용했다. 불과 서너달 사이에 카드 네 장을 쓰게 됐다. 순식간이었다. 벌금도 3백만원이나 나왔다.

놀란 광식씨는 버스 정비 일만 고집하지 않았다. 1년을 막노동을 했다. 다행히 버스회사에 자리가 생겼다. 한달에 170만원 받고 일하기로 했다. 월급에는 만족했지만 이 돈만으로는 밀린 카드대금이 해결되지 않았다. 연체가 반복됐고, 꽤 갚은 듯싶다 했는데 웬걸 카드빚은 더 늘어났다. 광식씨는 “음주운전 한번만 더 하면 내가 성을 간다”며 반성을 했지만, 반성한다고 카드빚은 줄지 않았다. 실제로 광식씨는 그날 이후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

지쳐가던 광식씨와 남례씨에게 광식씨 동서가 울산으로 오라는 기별을 넣었다. 현대자동차에 취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부부는 그 말 한마디만 믿고 2001년 남례씨 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울산으로 왔다. 남례씨 어머니가 아파트를 구했고, 광식씨와 남례씨가 살던 아파트는 2,400만원에 전세를 놓았다. 1,000만원으로 카드빚을 갚고, 700만으로 이리저리 빌린 돈을 갚고, 나머지 700만원을 남례씨 어머니께 드린 뒤, 얹혀 살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취직은 되지 않았다.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광식씨와 남례씨는 울산에 눌러 앉았다. 없는 사람이 어느 곳에 산들…. 부부는 마주보고 눈을 맞췄다. 광식씨는 현대백화점 셔틀버스 운전을 했다. 꿩 대신 닭이지만 이게 어딘가 하는 심정으로 고마워했는데, 이번에는 시내버스업체들이 난리를 치는 통에 백화점 셔틀버스가 사라지게 됐다. 일이 안 되려니 자꾸 꼬인다.     

광식씨는 생활정보지를 뒤져 몇번인가 취직을 했지만 들어올 때 듣던 얘기와 달라 이직을 거듭했다. 2002년, 지금 다니고 있는 레미콘회사에 월 150만원을 받고 취업했다. 남례씨는 집 근처 세탁공장에 다닌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보면”

십대부터 노동자로 살았지만 광식씨에게 노조가 도움이 되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광식씨가 일하던 관광버스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었다. 버스 한 대가 사고를 일으켰다. ‘차 고장이냐, 기사 과실이냐’를 놓고 노사 간에 갈등이 생겼다. 이 와중에 노조는 불법정비를 하는 관광버스회사의 잘못된 관행을 문제 삼았다. 관광버스회사는 정비사를 두고 본격적인 정비를 하면 안 되는데, 노조에서 광식씨가 버스 정비를 하는 것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광식씨는 복잡한 마음을 접고 사표를 냈다.

광식씨는 노조와 민주노총을 원망하지 않는다. 광식씨의 봄날을 빼앗은 사연이 그로부터 출발했건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선의의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까. 어떻게 그 모든 일을 담고 사냐? 남자인 내가 소주 한잔 마시고 털어버려야지.” ‘사나이’ 광식씨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중의 하나가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보면…’이다.

이런 광식씨도 노조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레미콘조합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1,3주 일요일에도 작업을 하라고 한다. 한달에 두 번 쉬는 일요일에 맞춰 가족 ‘행사’를 잡아놓는데 번번이 회사에 나가야 했다. 아무리 ‘사회생활’ 한다는 광식씨지만, 이건 너무했다.

동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식씨도 동료들을 따라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일하는 사람, 건설운송노조 사람들을 만났다. 얘기인즉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식씨들은 포기하고 말았다. 게다가 광식씨들의 움직임을 회사가 알게 돼 나중에는 ‘노조’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됐다. 노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광식씨는 ‘사회생활’ 경험은 풍부했지만, ‘노조생활’ 경험은 없었다.

결국 쉬게는 됐다. 물량이 줄어들어서다. 광식씨는 그저 회사가 망하지 않아 계속 다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사장 이하 전 직원이 열심히 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계부
지출수입
519,850 (삼성카드 2,000만원) 
307,590 (삼성카드 1,000만원)
273,716 (암보험 3개)
150,000 (세희 어린이집 원비)
 58,800 (현이 급식비)
 46,770 (현이 학교운영비, 1년에 4번 냄)
 75,000 (아파트 마련하면서 생긴 은행대출금)
 80,000 (광식씨 아버님 용돈)
 34,500 (휴대폰 요금)
 17,000 (전화 요금)
 35,000 (인터넷 요금)
150,000 (쌀 부식 아이들 간식, 생활비)
 97,000 (생필품)
 50,000 (현이 책, 용돈 )
100,000 (광식씨 용돈)
100,000 (외식 )
100,000 (남례씨가 어머니에게 빌려드림)

= 2,195,226
1,427,840 (광식씨 월급)
1,161,710 (남례씨 월급) = 2,589,550
* 이번달에는 남례씨의 월급이 평소보다 많았다. 기본급 605,000원에 각종수당이라는 명목으로 201,600원이 붙어 보통 80만원 가량 되는데, 이번달은 휴가 기간에도 일을 해 휴일 연장수당이 325,110원이나 됐다. 기분이 좋았던 남례씨는 남편에게 용돈 10만원을 주었고, 오랜만에 외식하는 데 10만원을 썼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남례씨는 일에 지칠 때면, 자신의 월급 80만원 중 50만원이 카드결제대금으로 빠져나가버릴 때면, 남편이 원망스럽다. 공부 안 시켜 준 엄마까지 미워진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그 자리가 그 자리다. 오히려 떨어지는 건 아닌지 그럴 때면 처량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남편한테 짜증도 내보지만, 우리의 광식씨는 ‘돌덩이’라 끄떡도 하지 않는다. 착한 아이들만 엄마 눈치를 본다.

남례씨는 중학교 2학년인 아들 현이를 붙잡는다. “공부 열심히 해라? 엄마 아빠처럼 살면 안 된다?” 착한 현이는 “엄마 아빠가 어때서?”라며 짐짓 되묻는 척하지만, 엄마 말씀이 ‘공부 열심히 해서 고생하며 살지 말라’는 뜻인 줄 다 안다.

현이는 엄마와 아빠가 살아온 얘기를 듣다 보면 한숨이 나오고, 목이 메기도 하지만 솔직히 엄마의 결론은 부담이 된다. 공부라는 게 잘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가? 현이는 학원에 다녀야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학원에 가는 친구들이 신경 쓰인다. 학원에 간다고 해서 성적을 올릴 자신도 없는데, 이건 엄마 아빠 더 힘들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현이.

사실을 말하자면, 현이는 학원보다 태권도 도장을 더 다니고 싶다. 태권도 3단, 현이의 꿈은 태권도 사범이다. 엄마 아빠는 형편이 좀 나아지면 태권도 도장에 보내주신다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현이는 일곱살짜리 동생 세희를 돌본다. 엄마 아빠가 회사 가서 늦으실 때면 현이가 동생 밥을 챙겨먹이고 놀아줘야 한다.

친구들과 같이 숙제를 하거나 놀기 위해 나가야 할 때 나가지 못하는 현이를 보면, 남례씨는 또 속상하다. 남동생들 뒤치다꺼리 했던 자신이 떠오른다. 행여 대물림을 시키는 게 아닌지 식은땀까지 난다. 친정엄마한테 얹혀사는 처지라 공부방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 현이의 성적인 40명 중 20등. 딱 절반이다. 정말 기특한 우리 아들 아닌가. 남례씨는 남편 말대로 ‘웃고 살자’고 마음먹는다.

“기자라면서 왜 '까만 옷'을 안 입고 왔어?”

광식씨와 남례씨는 뭘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저지른 일인데 열심히 일해 갚는 수밖에 더 있나?” 천성이 어질어 ‘내 탓이요’하는 것만은 아니다. 광식씨와 남례씨는 살아오면서 타인, 사회로부터 받은 게 별로 없다. 자신을 책임질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나온 광식씨와 남례씨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 왔다. 이들 부부는 나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다른 무엇이, 자신에게 뭘 해줄 수 있다고 상상하는 법을 모른다. 아니 그런 상상을 왜 해야 하지? 광식씨와 남례씨는 상상보다는 책임을 먼저 배웠다.

부모와 형제, 친구들은 그저 마음으로 기댈 뿐이다. 친구들은 그만그만 산다. 한두달에 한번 만나 술 마시고 하소연 나누는 정도다. 회사 동료들과는 더 자주 술잔을 기울이게 된다. 일하고 살림하는 남례씨는 시간이 별로 없다. 고향친구가 마침 한 동네에 있는 게 다행이다. 어쩌면 광식씨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남례씨와 술이고, 남례씨의 가장 친한 친구는 광식씨와 수다일지도 모른다.

사는 데 도움이 됐던 사람들을 굳이 찾자면 광식씨가 다녔던 버스회사 사장들이다. 기술이 좋다며 뒷돈을 찔러주기도 했으니까. 광식씨는 노조와 민주노총이 말하는 바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노동자도 어렵지만 회사도 어렵다. 노동자가 단결하면 회사도, 세상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지만 그렇게 되면 어지러워질 텐데, 누가 책임을 지나?

정치도 마찬가지다. 책임질 수 없을 바에야 어지럽지 않는 게 낫다. 그래서 광식씨의 결론은 항상 1번이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를 찍었다. 번호는 달랐지만, 울산 북구에서는 민주노동당이 ‘1번’이었다. 그러나 찍고는 그만이다. 지금은 자신이 찍어 당선시킨 의원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곱씹으면서도 정작 자신을 온전히 믿지는 못하는 광식씨와 남례씨.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래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은 기운을 내기 위한 일종의 주문이고, 삶의 지혜다.

광식씨와 남례씨를 만나러 이 부부가 사는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집의 공주님 세희가 엄마한테 매달려 귀속말을 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됐다. “기자라면서 왜 까만 옷을 안 입고 왔어?” 일곱살 세희에게도 기자는 ‘까만 옷’(정장)을 입어야 하는 대단한 직업이라고 생각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착한 세희가 기자라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되면 얼마나 실망할까.

남례씨는 인터뷰가 끝난 뒤, 기사가 나오면 공장에 갖고 가서 보여주겠다며 웃었다. 그런데 남례씨는 <매일노동뉴스>가 어떤 신문인지 모른다. 이건 정말 숙제다. 민주노동당이 자기 ‘동네’에 사는 노동자 부부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노동’자 붙인 신문이 노동자 부부에게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

누구 때문일까. 아무려나. 광식씨와 남례씨는 울고 웃으며 재미있게 산다. 이 부부의 관심은 온통 현이와 세희한테 쏠려 있다. 관심을 끌지 못해, 흥미를 끌지 못해 아둥바둥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매일노동뉴스>지 광식씨와 남례씨가 아니다. 그런데 아둥바둥 하기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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