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경북 칠곡군에 위치한 장갑제조 회사 시온글러브에서 화재가 발생해 장애인 4명이 불에 타 숨졌다. 언론들은 일제히 장애인들을 고용한 모범사업장의 화재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나 언론은 시온글로브 성장의 그늘 속에 80여명의 장애인들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던 사실은 외면했다. 또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진 허술한 기숙사에서 참변을 피하지 못한 것을 ‘정신지체’였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중증 장애인의 '저주받은' 노동

불이 난 후 회사의 기숙사는 없어졌다. 비장애인도 탈출하기 어려운 비상계단을 장애인 대피용 미끄럼틀 등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없었다. 결국 출퇴근 할 수 있는 장애인만 받아들이면서 20여명의 중증장애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했다. 시온글로브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등 관계기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지난달 부도를 맞았다. 부도 이후 사장은 잠적했다. 60여명의 장애인들은 3개월여의 체불임금이 생겼고, 취업에 애로를 겪고 있다.

지난 5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 사례’ 토론회에서 장애인을 13년 동안이나 ‘노예노동’을 시킨 악덕사업주를 폭로하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가발공장은 8세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진 이모씨(37·정신지체장애 3급)를 지난해 9월까지 13년동안 무보수로 일을 시키면서 하루 식사 한끼에 상습적인 매질을 가했던 것.

또 있다. 부모가 숨진 후 8년 동안 농약을 치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온 김모씨(25·정신지체장애 2급). 그 역시 한번도 임금을 받은 적이 없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등록돼 정부로부터 생계비와 장애수당을 받았다. 하지만 그 돈은 모두 이웃집 박모씨 통장으로 재이체됐다. 그런데도 장기간 장애인을 노동착취 한 이들은 그를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관할 지자체와 정부로부터 각각 표창장을 받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같은 사례가 극단적이라면 좀더 일반적인 사례를 보자. 모범사업장으로 알려진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위치한 ‘동천모자’. 지난 98년 보호작업장으로 시작해 2002년 본격적인 ‘근로시설’로 탈바꿈했다.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천학교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해 침구 등 홈패션물부터 시작했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모자’ 품목을 특화하게 됐다. 차차 품질인정도 받으면서 앙드레김 골프, EXR, 험멜 등 유명 브랜드와 하이 서울, 군모 등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고 있다. 지난해 8억여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 8월 현재 매출액은 7억여원.

장애노동, 최저임금 벗어날 수 있나?

‘드르륵, 드르륵’ 미싱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재료를 챙겨 모아서 건네주고, 실밥을 뜯어내는 허드렛일은 ‘시다’의 몫이다. 여느 봉제공장과 다른 풍경은 미싱사 앞에 쭈그려 앉은 시다들. 7~8세 지능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손놀림이 빠르지는 않다. “ㅇㅇ, 빨리 줘. 얼릉.” 미싱사가 뺏듯이 모자재료를 낚아챈다. 밀린 일감 빨리빨리 채워야하는데 굼뜬 손의 답답함 때문이리라.

그런데 시다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만면에 웃음이다. 자신이 미움을 받는지, 칭찬을 받는지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 옆자리의 시다가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전체 55명 직원 가운데 장애인은 39명(훈련생 22명). 장애인비율이 높다 보니 작업속도와 능률은 다른 회사에 견줘 떨어진다. “실밥을 뜯다가 모자에 흠집이 가고, 첫 1~2년은 고생했는데, 이제는 섬세한 기술자들이 다 됐어요.” 기대 이상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동천학원의 성선경 원장의 고민은 끝이 없다. “정부의 고용장려금도 작년부터 절반으로 줄었어요. 장애에 따른 생산량 차이를 정부가 보조해 주지 않으면 장애인 실직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성 원장은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설명했다. “일반기업처럼 세금은 다 내는데 근로시설은 은행융자도 안 돼요.” 어음결제 관행이나 협력사의 부도로 돈을 떼이는 것 등은 다른 중소기업이 일반적으로 겪는 사항. 결국 운영자금 등을 빌리느라 성 원장은 집을 담보로 몇억원을 대출받고 있었다.

 

 


연차는 올라도 급여는 제자리

전국에 근로시설은 22곳 정도에 불과하다. 동천모자는 악조건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사업장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39명의 장애인들이 받는 월급은 65~75만원선. 근로시설의 의무조항인 최저임금을 간신히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장애인들은 이 돈으로 어떻게 생활이 가능할까? 장애인이라고 해서 집값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공과금 덜 내는 것도 아니다. 돈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결혼한 장애인노동자들을 만나봤다.

이곳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임대길씨(29)는 아내와 같이 맞벌이를 하고 있다. 이들의 한달 수입은 합해서 140만원. 임씨의 급여는 5년째 최저임금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집사람을 쉬게 하고 싶어도 여건이 그렇게 안돼서 미안해요. (월급) 100만원만 넘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재봉일 외에 16개 전 공정을 다 할 수 있다는 임씨. “불량 나왔으니 똑바로 박아요.” 재봉사 아줌마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도 이제 어엿한 숙련노동자라 자부하는데, 회사의 대우는 불만일 수밖에 없어 보였다. 상여금도 없고, 휴가비나 명절 떡값이라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연차별로 급여가 올라가야 일할 맛도 나고 하죠.”

곁에 있던 김숙자씨(34)도 맞장구를 친다. “인터넷에 채용공고를 보면 장애인은 무조건 50~100만원이에요. 얕보고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해요. 일이 조금은 느리지만 별 차이도 없는데….”

김씨는 아이를 낳고 2년간 집에서 쉬었다. “너무 쉬니까 답답하고, 우울증까지 생기겠더라구요.” 뇌병변 장애인인 김씨는 일에 대한 의욕이 높아 보였다. “위험하다고 걱정하는 건 좋은데 (가위질) 못하게 할 때가 속상해요.” 아줌마들한테 아이들이 ‘바보취급’ 당하는 느낌. 김씨는 그것이 지독히도 싫은 표정이었다. 비장애인들의 무의식중에 자리 잡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 차이가 차별로 드러나는 것은 백지 한 장 차이인 듯 보였다.

불만을 털어놓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그만한 직장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사업장. 임금은 체불되기 일쑤고, 차별이 심한 곳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다. 그럼 이들을 다른 중증장애인들에 견줘 '행운아'라고 해야 하나.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장애인들. 또 한편에는 차라리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장애인들도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가진 장애인들은 일을 하게 되면 그나마 쥐꼬리 만한 수입에도 불구하고 수급권 자격이 박탈된다. 의료보호, 영구임대주택 등 다양한 혜택이 취소됨은 물론이다.

이러한 제도상의 모순으로 인해 일을 하면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40~50만원 월급을 자처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기초생활보장금 40여만원과 월급 40여만원을 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통한 자립 원하지만 곳곳에 암초

2004년 12월말 현재, 50인 이상 사업체 1만6,950개소의 장애인 고용률은 1.31%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사업체 2,362개소는 1.26%에 그치고 있다. 의무고용률 2%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장애인 고용률에 따르면 1.5% 미만 정부기관은 12곳, 1% 미만 공기업은 59곳에 이른다.

또 장애인을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민간기업(상시근로자 300인 이상)도 214곳에 달한다. 장애인 한 명 고용하느니 차라리 고용부담금을 내는 것이 속 편하다는 의식 때문이다.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을 담당하는 박경미 간사는 뇌병변 장애가 있지만 독립성이 남달리 강했다. 20대 초반 평택의 한 만두공장에서 3년간 일한 박 간사는 첫 월급 40만원이 3년 내리 적용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한 동료 장애인들도 남자는 50만원, 여자는 40만원 정액이었다. 비장애인인 여성노동자들도 70만원 정도의 낮은 액수였다. 일이 많을 때면 새벽, 휴일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월급은 그대로였다.

“일한 만큼의 대가가 없으니 참기 힘들었죠. 몇 번 항의를 해도 ‘조금만 기다려라’ ‘너는 손이 느리잖아’라는 말 뿐이었어요.”

“몸도 불편한데 집에 있어라.” 아버지의 반대도 심했지만 나이도 있고, 눈치도 보이고, 독립생활을 하려는 박 간사의 의지는 확고했다. 박 간사는 이후 컴퓨터를 익혔다. “타자가 빨라야 한다. 손이 안 되잖아.” 취업하려고 수십 곳의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이 퇴짜였다. “나는 진짜 안돼는 걸까.” 좌절하던 그에게 자립센터는 희망의 등불이었다.

지방의 한 대학을 나와 취업을 준비중인 황철호씨(24). 카피라이터의 꿈을 안고 전문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자신감은 갈수록 떨어진다. 어떻게든 부딪쳐 봐야 하는데 입사지원서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남한테 푸대접 받기는 싫고,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서요.” 황씨는 대학 때 공무원시험을 보려했지만 볼 수가 없었다. 뇌병변 장애로 손이 떨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보조인’제도가 없어 OMR카드에 표시를 할 수가 없었다. 황씨의 주변 친구들도 취업하는 경우는 하늘의 별따기다. 취업난의 가중은 중증장애인들을 더욱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박홍구 소장은 “장애인의 노동은 생계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것”이라며 “언제까지 봉투풀칠이나 악세사리 만드는 보호작업장에서 10~20만원을 받고 일할 수는 없다. 의무교육과 취업교육 등을 충분히 받으면 중증장애인도 충분히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라는 원치 않는 멍에를 쓰고 노동의 사각지대에 철저하게 버려져온 중증장애인들. 중증장애인들과 자립생활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직종개발’과 ‘생계보장’ 및 ‘차별철폐’를 원하고 있다. ‘장애인노동권 쟁취!’ 연대를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언제 '공기의 진동'을 이룰 수 있을까?

 

 

 

 

한뇌연, ‘장애인 노동 차별 조사’ 결과
“장애인이란 이유로 취업 어렵다” 
취업희망 96%, 취업애로 89%…일자리·취업정보 부족 호소
미취업 장애인 10명 중 6명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취업을 희망하고 있지만 ‘장애인 차별’, ‘일자리 부족’ 등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노동 차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취업 상태인 장애인 55명 중 89%인 49명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거리나 직장이 있으면 일을 하겠다’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96%로 나타나 대부분이 취업을 희망하고 있으나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을 하려는 이유로는 60%가 ‘생활비를 벌기위해’라고 응답했으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응답한 사람이 23.6%, ‘용돈 마련’이 9.1%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일자리 부족, 취업정보 부족 등이 지적됐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라는 문항에는 80%의 응답자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미취업자 중 ‘취업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70%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9월 ‘장애인통합고용법’ 발의 예정…중증장애인직업재활 국가책임강화 난항

장애인 의무고용률 2%도 못 미치는 현실


이렇듯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장애인고용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진행되어 왔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떤가? 2004년 7월 정부는 정부부문 장애인 고용률이 2.04%에 달했다는 기쁜(?) 소식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2004년 12월말 현재, 50인 이상 사업체 1만6,950개소의 장애인 고용률은 1.31%에 불과하다.


특히 300인 이상 사업체 2,362개소는 4만6,674명의 장애인을 고용하여 1.26%의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의무고용률 2%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15년을 투자한 정책치고는 그 성과가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이 상태라면 현 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장애인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의무고용제…중증장애인 국가책임 강화 핵심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의 전면개정안인 ‘장애인통합고용법’을 준비 중에 있다. 법안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로 했다. 그 첫째는 기존의 의무고용제도를 강화하여 대기업의 장애인고용을 확대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중증장애인직업재활에 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민간기업들은 장애인 한 명을 고용하느니 고용부담금을 지불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형편이다. 부담금을 내는 것으로 장애인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의무제를 도입한 이유는 장애인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지 부담금을 걷기 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간기업의 장애인고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좀더 강력한 강제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장애인고용을 잘 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현재 중증장애인의 직업재활은 일부 국고보조가 있기는 하나 대부분 민간기업이 내는 부담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기업의 장애인고용이 활성화될수록 부담금액수가 줄어들어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사업이 위축되는 현상이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매우 기형적인 상황이다. 원칙적으로 중증장애인직업재활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국고보조를 확대하여 직업재활사업을 다변화, 활성화시켜야 한다.


장애인통합고용법안 추진상황


기존의 의무고용제도를 강화하여 대기업의 장애인고용을 확대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경총, 전경련 등이 일부 반대견해를 제시한 바 있으나 적극적으로 밀고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직업재활에 관한 국가책임강화부분은 그 진행이 순조롭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고용촉진기금의 2/9를 복지부가 이관받아 중증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복지부, 장애인시설협회, 장애인복지관협회 등이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그나마 기금에서 지원되는 부분이 없어지면 사업수행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관련하여 몇 차례 공청회와 간담회 등을 진행하였으나 아직 확정안을 제출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충분한 의견수렴과 법안검토과정을 거친 후 올해 안에는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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