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다 사회적 교섭을 둘러싸고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기점으로 급격히 논의가 확산된 감이 있다. 불현듯 현실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대산별노조로의 전환, 사회공공성 투쟁에 대한 강조, 비정규 사업 등 입장에 따라 더러 강조점의 차이는 있어도 위기에 대한 대안논의는 수렴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강조점의 차이는 있으되, 딱히 뚜렷한 쟁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차이만 부각시키지 말고 민주노총의 사업계획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투쟁하자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위기진단은 그만하고 실천에 나서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진단과 대안이 수렴되어 간다면 그만큼 고무적인 일이 없겠다.

노동자들은 어떻게 투쟁에 나서는가?

그런데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왠지 허전하고 수상쩍다. 손에 쥐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맞서 싸워야 할 과제에 비해 현장 조직력은 취약하다.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을 겪어 온 조합원들은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당위’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갈수록 노조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위기논쟁은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이런 현실에 부딪치며 시작되었는데 대안논쟁을 거친 후에도 우리는 똑같은 자리에 서 있다.

노동운동은 조합원들의 역동적인 대중투쟁을 통해 오늘까지 왔다. 사회공공성 투쟁, 비정규권리입법 쟁취투쟁, 나아가 대산별노조로의 전환까지 모두 만만찮은 과제다. 또한 대중적 투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투쟁은 노동자들에게 그야말로 ‘천 번의 계산과 열 번의 타협을 넘어 한번의 결단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속성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과 사활을 같이 걸고 있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무엇으로 결단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조직혁신도 좋고 산별노조로의 전환도 좋다. 그러나 투쟁의 조직화에 대한 혁신과 대안이 없이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노총에서 1노조 1교육을 결의하고 위원장이 조직순회를 하고, 간부들이 철야농성에 들어가고, 몇몇 대공장과 유력한 공기업 몇 개가 하루파업과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고…마지막으로 지도부 단식에 돌입하는 뻔한 수순으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투쟁의 조직을 위한 혁신이 없으면 담합은 필연적

민주노총은 하반기 비정규권리입법 쟁취투쟁에 나서고 여세를 몰아 내년 3월에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총투표를 하고, 5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전개하자고 한다. 그런데 의구심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한쪽에서는 계획대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또 다시 ‘사회적 교섭’과 ‘담합국면’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실력 없이 말만 앞세우며 막상 투쟁은 조직하지 않고 비판만 일삼는 것’으로 간주한다. 양쪽 다 ‘어떻게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점잖게 함구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어떤가?

한쪽은 투쟁의 동력이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는 모습과 조합원들의 의식변화를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인식했다. 또한 그럴수록 현실에 압도 되었다. 내부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자본의 공세에 밀려나지 않으려면 무언가 외부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회적)교섭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대안 없이 동력을 소진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당장의 투쟁에만 몰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것이 당면한 투쟁을 회피하고 담합구조에 발을 디디는 위험천만한 행보로 보인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운운하며 쳐놓은 덫에 걸릴 것이라는 판단이다. 대중투쟁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고 전선에서의 후퇴인 것이다. 이렇게 양자는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투쟁의 실패,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려는 경향이나, 조합원들의 실리적 흐름을 다만 ‘어쩌지 못할 현실’로만 생각하고 상층교섭과 담합으로 우회하려는 모습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악순환만을 되풀이해 온 것이다.

대부분의 투쟁이 자본에 포섭된 형태

이 때문에 민주노총의 총파업 호소는 몇몇 조직을 제외하고는 이미 가동되지 않고 있으며, 총력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파업대오 부풀리기’ 수준에서만 맴돌고 있다. 작년에는 일부 조직의 ‘업종이익 수호를 위한 데모’까지 슬그머니 민주노총의 투쟁일정에 끼워 넣어져 비정규개악법안 저지투쟁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기도 했다.

열심히 투쟁을 조직했던 동지들에게 상처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간 대부분의 파업투쟁은 이미 자본에 포섭된 형태로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루 파업은 생산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있어 개별 자본의 묵인 아래 진행되어 왔고, 그나마 조합원들이 조별로 참여하는 ‘순환 파업’이기 일쑤다. 투쟁계획과 현실사이에 있는 이 간격은 조직담당자들을 중심으로 아이디어와 이벤트로 메꿔진다. 그러나 대중투쟁의 실패를 땜질하는 아이디어와 이벤트는 더 해악적이다. 실패의 지점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엄혹한 감시와 방해를 뚫고 나오는 투쟁은 전설이 된지 오래다. 이미 자본은 이런 투쟁으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위기논쟁의 결과는 활동가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투쟁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런 형태의 파업이 되풀이 되는 것은 늘 당면한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노동운동의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투쟁을 조직하는 문제에서도 혁신이 필요한데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투쟁을 혁신하기 위한 과제, 더 분명하게는 조합원들의 의식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안과 실천사업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쟁점이 있다면 적극적인 토론의 물꼬를 터야 한다. 그래야 위기논쟁의 결과가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조합원을 만나는 새로운 방법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산별노조가 곧 위기의 대안은 아니다

위기의 구조적 원인으로 ‘기업별체제’가 꼽히고 대안으로 대산별 건설이 제시되고 있다. 2007년 복수노조체제로 전환될 것이 예고되고 있고 금속, 공공 등에서 대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일정에 올리고 있으며, 민주노총도 내년 3월 산별전환 총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반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사무금융연맹이 별다른 투쟁 없이 당장 대산별 조직으로 전환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어느 대기업노조 위원장이 ‘우리 노조의 목표는 초일류기업’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분위기, 소속 업종의 수익구조개선을 위한 캠페인이 산별노조로 가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주장 아래 만들어지는 산별노조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사회운동적 과제와 계급적 연대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

자본의 흐름을 감시하고 통제할 사회적 진지로서의 노조. 외환위기 이후 실종된 사회운동성을 회복하고 대중적 역동성을 가진 노조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적 의제를 노조의 임단협에 적당히 얹어가는 투쟁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사회운동적 과제와 계급적 연대를 실현하는 투쟁은 매우 장기적인 계획과 새로운 실천활동들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개별 사업장에서의 임단투만 해도 수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하물며 계급연대를 위해서는 더욱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여담이지만, 금융권에 주5일제가 실시되고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났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그 조합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조사해 본 노조가 있을까 싶다. 봉사활동을 하는 조합원들은 대개 노조활동을 하지 않는다. 노조활동은 이기적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조직사업을 혁신하고 사회운동적 활동으로 전환해 나갈 때 이들도 새로운 노조활동의 당당한 주체로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의 혁신을 위해서 노조활동의 모든 영역이 재구축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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