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처럼 아팠더냐?
건장한 수십의 팔뚝이 너와 나를 떼어놓았을 때
너도 나처럼 서러웠더냐?
너도 나처럼 죽고 죽이고 싶었더냐? 불사르고 싶었더냐?
(중략)
이제 너를 가슴에 묻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초라한 병신과 흉물스런 쇳덩이로
아무도 모를 피눈물 삼키며
너를 가슴에 묻는다.
다시는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으리!
다시는 남모르는 눈물 흘리지 않으리!”
(전동휠체어 진혼가 중)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진구청 앞. 전동휠체어 두 대가 불태워졌다. 순식간에 타버린 전동휠체어는 불과 몇 분 만에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장애인들은 울었다. 아니 통곡했다. 장애인의 불편한 몸을 대신하던 그들의 분신(分身)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분신이 분신(焚身)을 했다. 그들의 몸과 다름없는 전동휠체어를 장애인들이 불태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의 '몸' 전동휠체어 분신으로 항의

장애인 이용시설인 ‘정립회관’의 민주적 운영과 이완수 이사장 취임을 반대하던 장애인들. 문제해결을 요청하는 장애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내동댕이쳐진 그들의 육신과 모멸감이었다. “8.23 16:00 정립공대위의 불법시위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경고 없는 무단돌진으로 인해 구청직원이 큰 부상을 당하여 입원치료중에 있는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집회가 열린 광진구청 앞 곳곳에는 구청장 명의의 현수막이 휘날렸다. 정립회관 이완수 이사장의 연임 취하 요구에 구청측은 ‘이사회 운영 정관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구청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장애여성을 죄인 끌어내듯 사지를 들고 모멸감과 수치감을 안겨주고도 사과하지 않는 구청. 게다가 장애인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은 없이 곳곳에 현수막을 내거는 행태가 부끄럽지 않은가?” 장애여성 ‘공감’의 박영희 대표는 구청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재차 촉구했다.

장애인 이용시설인 ‘정립회관’의 민주적 운영에 대한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90년 첫 농성이 진행되면서 노조도 만들어졌다.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운영의 문제 때문이었다.

직원의견은 묵살되기 일쑤였고 혹여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직원들에게는 “사표 써라”는 말이 횡행했다. 정립노조의 한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비정규직 여성 직원들에게는 회식 때 술시중까지 들게 했다. 근무시간 중에 직원을 동원해 자기 집 수리를 시키거나 음식점 화단 꾸미는 일 등은 예사였다. 심지어 주식투자를 하던 전 관장은 운전기사에게 사은품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손자가 아파 병원을 갈 때도 회관 차량이 이용됐다. 장애인차량개조도 정립회관의 예산을 쓰면서도 유료서비스를 시행했다. 차량개조 일은 관장 친구가 맡았다.

“누가 오더라도 일인지배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시설민주화를 위한 변화는 어려워요.” 정립회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의’ 시설은 ‘이사회’를 장악한 개개인의 이윤추구와 독선적 운영의 장 일뿐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전국의 장애인 이용시설, 생활시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96년 에바다 농아원 사건, 2003년 성실정양원, 은혜사랑의 집, 지난해 정립회관 비민주적 운영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시설의 민주적 운영과 내부 비리를 폭로하던 노조원들은 회관측의 강압과 회유의 대상이었다. 정규직이었던 한 경비 노동자는 용역으로 전환하겠다는 관리자의 협박에 못 이겨 노조를 탈퇴했다. “(노조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잘리게 되니 이해해 달라” 눈물의 호소였다. 사회복지사 노조원들은 ‘주간보호센터’ 등 하루 종일 장애인들을 돌봐야 하는 힘든 일에 배치되거나, 다른 업무로 배치되었다.

지난해 농성과정에서 회관측은 비조합원을 대거 승진시켰다. 10년 경력의 노조원은 3년 경력의 후배 팀장 아래 놓였다. 임금의 차이는 물론 허드렛일을 하면서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계기는 전혀 마련되지 못했다. 이를 마다하면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농성으로 인해 해고된 조합원 4명 가운데 한 명은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복귀한 조합원에게는 ‘3개월 정직’이라는 또 다른 징계가 가해졌다.


시설민주화·시설폐지를 향해

“매일 같이 얼굴을 붉히고 폭력을 행사하고…. 농성한 죄가 뭐길래요. 여긴 그러면 안돼죠.” 지난해 농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한 한 여성장애인의 말이다.

사회와 격리돼 폐쇄된 ‘섬’ 속에 갇힌 장애인들. 이용시설과 생활시설 속의 장애인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갈까? 정립회관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강원도 철원에 소재한 성람재단 산하 ‘은혜장애인요양원’에서 지난 96년 5월부터 2003년 3월까지 근 7년간을 지낸 박정혁(36)씨. 그는 현재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간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생활시설에 대한 체험담은 이랬다. “보모의 수건을 썼다는 이유로 흠씬 두들겨 맞고, 소풍간다는 말에 속아 그곳에 입소한 장애인들도 있었어요. 죄인들의 수인번호처럼 방 번호를 앞가슴에 부착한 채 1년 12달 똑같은 하루일과를 보내고, 외출 기회조차 1년에 한 번 될까 말까입니다.”

그렇게 격리수용당하며 옥살이 아닌 옥살이를 해야 했던 차별의 경험. 그가 요양원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 작대기를 입에 물고 ‘꾸욱 꾸욱’ 컴퓨터 자판을 눌러 쓴 ‘우리들을 있는 그대로…’ 시에는 요양원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요양원 자식들은 소만도 못 한가요?’ ‘우리는 탈출을 꿈꾼다’ ‘빡빡머리 승준이의 비애’ ‘그 누가 올빼미를 잡을 소냐’….

시설은 그곳에 수용되어 있는 모든 장애인들을 획일화시킨다. “장애라는 장막에 가려진 그들의 재능과 소질은 시설 속에서 쓰레기처럼 버려집니다. 시설 속의 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최악입니다.” 그는 시설에서 나온 뒤 지하철도 타보고, 노래방을 가고, 포장마차도 가보았다. 물론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장애인들은 아무런 자율성도 없이 요양원에 갇혀 있다 보니 사회성은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의 요양원 생활이 ‘사육수준’이다 보니,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모르고 사는 거죠.” 박정혁씨는 이 땅의 모든 중중장애인들의 자유를 갈구한다. 그만의 ‘탈출’이 아닌 모든 중증장애인들의 희망을 위해.

“인간의 삶이 아닌 가축의 삶이었죠.” 박정혁씨의 부인 지영(38)씨도 6년여 성람재단 산하의 은혜장애인요양원에 있었다. “주는 밥이나 먹지 왜 (자장면을) 시켜 먹냐.” 당시 말을 떠올리는 지영씨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진다. 지금도 차별과 멸시를 당하고 있을 원생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아주 심한 경우를 제외하면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서 떳떳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죠.” 지영씨는 박정혁씨와 밝은 얼굴로 눈빛을 교환하며 휠체어를 굴려 내려간다.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시설을 거부하는 중증장애인들

# “우리나라 중증 장애인들이 거의 다 나이가 들어 가족이 돌보지 못 할 때까지 집에서 있다가 결국은 시설로 들어가곤 하는데 시설로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도 이성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인간인데 몸이 좀 다르다는 이유로 철창 안의 동물처럼 살순 없지 않습니까? 지금은 우리 가족들 모두 제가 독립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나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최선의 방법이란 걸 알게 된 거죠. 사회나 가족이나 왜 항상 독립생활을 부정적으로만 보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오성환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사무국장)

# “독립을 꾀하는 장애인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네가 혼자서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걱정과 염려가 많으신 것이 사실이다. 괜한 걱정만은 아니다. 나 역시 혼자 지낸지 8년차지만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적어진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꼭 가족이 해주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가족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서로에게 형벌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장애인도 가족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되고 장애인의 가족에게도 자유를 주어야 한다. 장애와 장애인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함께 책임지고 풀어가야 할 문제다. 중증장애인의 독립생활이야말로 장애와 장애인을 사회로 통합하는 과정의 하나이다.” (김지수 작가, 지체1급, 독립연대 회원)

돌봐줄 부모형제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장애인들은 미안한 마음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시설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이 지난 6월13일 발표한 일상에서의 차별 조사결과에 따르면 설문참여 중증장애인 가운데 절반 정도는 ‘수용시설에 들어가라’는 권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애 때문에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40% 정도로 조사됐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 시설은 옥살이 아닌 옥살이가 된다.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우리의 관리를 받고 절대 딴소리하지 말라.” 생활시설에 들어가자마자 휴대폰은 압수다. 외부와 연락할 길이 막연하다.

척수(경추5-6번)1급 장애인인 정연창씨는 친구들과 씨름을 하다가 장애인이 되었다. 치료비 등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되면서 생활시설에 자청해서 입소했다. 좋은 시절도 잠시. 차차 의문이 커져 갔다. “먹고 마시고 싸고 잠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일까?”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시설 생활.

경증의 정신지체인들은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서 사회 적응 훈련을 받으면 충분한 사회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과 함께 살면서 느꼈던 정씨였다. 그러나 재활원측은 반대로 하고 있었다. 장애인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 재활시설의 본분이며 정부에서도 권장 하는 정책인데도 말이다.

독립을 하려는 정씨를 재활원측은 적극 만류했다. “어떻게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겠냐?” 정씨가 결국 장애인 두 명과 재활원을 나올 때 재활원측은 욕도 많이 했다. “재활원의 속셈은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있어 정부의 지원금과 사회의 후원금을 받아 챙기려는 것이었겠죠.” 현재 정씨는 10여명의 장애인들과 장애인공동체인 예수사랑선교원을 운영, 상부상조하며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시설에서 지역으로!’ 중증장애인들은 2000년경부터 독립생활(Independent Living)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자립생활센터, 자립재활센터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세워져 현재 25곳 정도가 만들어졌다. 매달 한 두 곳이 생길 정도로 파급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자리 잡은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약칭 독립연대)’도 9명의 중증장애인과 2명의 비장애인이 2000년 12월 첫 모임을 가짐으로써 태어났다. 모임을 결성한 장애인은 대부분 혼자서는 자기 신변처리도 힘든 중증장애인으로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보고자 모임을 만들었던 것.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이미 시설이 결코 장애인 삶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죠. 장애인 당사자들이 나서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운동을 해요. 영국 사회학자 올리버는 시설에 갇혀 사는 장애인은 치유하기 힘든 ‘의존’이라는 ‘시설병’을 앓는다고 했어요.” 독립연대의 윤두선 회장은 독립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울퉁불퉁한 길. 1시간여 매연을 뒤집어쓰고 기다려야 하는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도 저녁 10시면 차고로 들어간다. 대부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중증장애인들. 실업난에 장애인을 쓰겠다는 사업장도 거의 없다. 우리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은 더욱 높다. “저 아저씨가 잡아간다. 뚝.”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장애인은 희한한 사람 취급받기 일쑤이다. “왜 길을 막냐.” “병신XX가 왜 길 나돌아 다녀. 너 때문에 넘어질 뻔 했잖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축이다.

독립연대는 현재 활동보조인 파견사업과 동료상담 및 각종 교육문화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또한 장애인이 지역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 편의시설 조사와 평가 사업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으며 각종 정보제공과 이동지원도 하고 있다.

세상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470만 장애인들. 그들을 시설 속에 가둬두고, 시설의 각종 비리와 부조리에 눈감고 있는 사회. 2005년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시설공대위는
지난 2003년 11월에 결성된 ‘조건부신고복지시설생활자인권확보를위한공대위(준)’(이하 시설공대위)는 ‘조건부신고시설’로 등록된 정신요양시설안에서 탈출한 안모씨와 또 다른 정신요양시설에서 탈출한 이모씨에게 “자신들이 죄를 진 사람들도 아닌데 감옥처럼 갇혀있다”는 제보를 받아 긴급실태조사를 벌임으로써 그 활동을 시작했다.


공대위 결성 이후 지금까지 성실정양원, 은혜사랑의집, 영낙원, 바울선교원, 심신수양원, 지인언어치료원 등의 인권침해를 적발하고 고발조치 및 생활자 추후대책 마련, 관리감독책임기관에 대한 고발과 감시등의 활동을 해왔다.


조건부신고시설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와 횡령 등의 범죄들은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시설공대위는 이를 막을 제도적 보안장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시설정책단’을 꾸려서 내부세미나와 토론회 등을 진행하면서 대안모색도 하고 있다.


2005년 1월 기준으로 미신고시설(조건부시설 포함)은 총 1,200여개, 약 2만여명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약 70%가 올해 말까지 신고시설로 전환을 완료할 예정이다. 나머지 30%의 미신고시설들은 민관합동실태조사를 통해 신고시설로 전환하거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시설들은 폐쇄될 예정이다.


시설공대위는 총 25개 장애인, 인권, 건강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속단체들은 경기복지시민연대, 경기장애인연맹, 노들장애인야학, 다름네트워크,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섬김과나눔회장애인봉사대, 안산노동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천여성의전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교육권연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학생연대회의, 좋은집, 천주교인권위원회, 태화샘솟는집,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한국산재노동자협회,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노동조합,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행동하는의사회, CMHV(한국지역사회정신건강자원봉사단 등이다.

사회복지시설, 선택? 메뉴도 돈도, 욕구도 없다!!
                                                                                                                               김주현 시설공대위 활동가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6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미신고복지시설의 70%가 신고시설로 전환 또는 전환확실하고, 이에 따라 신고시설로 전환한 약 800여 개소에 대해 지원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또 미전환 미신고시설에 대해서는 9월부터 민관합동 실태조사 실시 후 시설별로 지속적인 양성화, 또는 시설폐쇄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는 애초 3년의 행정처분 유예기간을 두고 실시했던 미신고시설양성화정책을 번복하고 기준미달 시설들에 대해 또 한번의 기회를 주는 ‘2차 양성화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미신고복지시설 정책에 대해 학계나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여러 가지 비판과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신고시설의 발생원인에 대해서 소규모, 가족적인 분위기와 현실적인 입소요건, 신고시설에 대한 정보 미흡 등의 수요 측면 및 종교적·양심적 운영동기의 상존, 제도권 진입장벽의 존재 등의 공급 측면, 그리고 시설입소 대상자의 상존에 비해 시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측면을 들고 있다.


이에 미신고시설양성화정책에 대해 개인운영·소규모 시설에 대한 재정지원 및 관리감독책임부분 소홀, 설치기준, 종사자기준 등의 하향으로 입소자에 대한 서비스의 질적 보장 포기, 탈시설화라는 정책적 전망에 역행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며 개인운영시설에 대한 법인화 유도 및 재정적 지원, 철저한 관리감독방안 수립, 10인 미만시설에 대한 적극적 지원책 모색 등을 제시하고 있다.(이태수 2005)


또한 시설생활자, 운영자, 종사자, 관리감독기관, 일반인의 시선 등 근본적으로 모두에게 부정적인 작동원리에 놓여있는 주거시설을 긍정적 역동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핵심 열쇠는 ‘선택’이라며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거주배치서비스 운영방식을 들어 사정체계 도입을 통한 거주배치서비스의 지역사회서비스로의 통합, 입소제도와 생활시설의 기능에 대한 제도개선, 서비스 점검과 평가와 관련해서 현재의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관료적 관리방식에서 전문적 관리방식으로 전환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임성만 2005)


반면, 시설공대위에서는 시설문제를 탈시설화가 아닌 시설발전정책 강화라는 틀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시설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인 시설 생활인들의 사회통합 및 자립생활은 요원하다며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 공공성 확보, 생활인 인권보장의 제도화 등을 강조한다. 또한 시설내의 인권침해와 비리의 원인에 대해 시설상황을 개방할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 정부책임전가로 인한 사회복지사업의 영리화, 복지부와 시군구의 직무유기, 지역사회의 무관심과 님비, 일반시민들의 차별의식, 가족중심의 복지정책의 한계 등으로 꼽고 있다.(김정하 2005)
이러한 대안들은 좌파적이라는, 혹은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 체제 내에 안주하는 대안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그러한 이념적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시설의 현실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시설의 부정적인 측면을 긍정적으로 전환할 대안을 ‘선택’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설생활인, 혹은 예비 생활인들에게는 선택할 메뉴도, 선택을 통한 구매력, 아니 수요의 근본인 욕구조차도 거세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이 시장지향적이다,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물론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와 공공성확보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와 함께 사회복지영역에도 일단은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현금이든, 바우처 등의 쿠폰이든 간에) 복지재원이 직접 제공되고, 서비스 메뉴가 시설이나 기관에 의해 일방적이고 획일적으로 프로그램 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들의 욕구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시설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든,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