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현자 비정규직 노조

최근 몇년 사이에 비정규직 확산과 함께 비정규직 운동도 급속히 확산됐다. 화물연대, 레미콘, 타워크레인, 건설플랜트, 학습지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은 투쟁을 거치면서 전국적 규모로 발전하고 있다.

그 중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인 비정규직노조는 현대자동차라는 대규모 사업장 현장에 처음으로 조직되었다는 점, 민주노총 내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갖췄다고 알려진 현대차노조가 사업장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점 등으로 인해 기대와 관심이 집중됐다. 좋든 싫든 하나하나의 실천이 전국적 초점이 되고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은 한 몸

김남수
· 64년생
· 울산노동자신문 편집위원
· 현대자동차 현장투(노동해방 인간해방 현장권력 쟁취 투쟁위원회) 간사
현대자동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생산라인에서 한데 어울려 자동차를 만든다. 조직적 편제 역시 보통 정규직 30명, 비정규직 15명 정도로 같은 반에 편성되어 있다. 회식 때에도 정규직, 비정규직이 같이 하며, 반 대항 체육대회도 같이 참가한다. 주야 10시간 맞교대, 잔업, 철야특근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조건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정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시켜주고 있다. 여기에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친인척이나 선후배 관계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추천에 의해서 입사했다는 점 역시 이들 사이의 친밀도를 더 높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정규직, 비정규직이 밀접한 연관 하에 뒤섞여 있음은 비정규직의 조직화나 실천이 정규직의 지지나 지원 없이는 대단히 힘든 상황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필연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 그러나 정규직노조와 활동가들의 태도는?

현대차에 비정규직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8대 정갑득 집행부에서 비정규직의 현장 투입을 노사합의로 인정한 후부터다. 그 이후 급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한 생산라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재 1만명을 넘어섰다. 비정규 노동자를 80명 가량 '불법파견' 하는 업체의 사장이 한달에 2,500만원을 번다는 통계에서 보이듯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는 편법과 부당착취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이 ‘비정규직도 인간’임을 선언한 것은 아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월차를 쓰려다 식칼테러를 당한 얼마 후인 2003년 5월, 불과 3년도 안 된 일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조직화를 선언하자 회사는 물론 정규직노조, 활동가들도 바빠졌다. 원청인 현대자동차 노무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까지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담당한 곳은 노무관리부서가 아니라 부품관리 담당부서였다. 이 얼마나 기막힌 현실인가! 이들은 노조 조직을 계기로 비로소 부품이 아닌 인간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에 대한 정규직노조와 활동가들의 최초 반응은 어떠했을까! 당시 현자노조를의 이끌던 10대 이헌구 집행부는 비정규직노조 창립 당일인 2003년 7월8일 ‘상무집행위원 일동’의 유인물을 통해 “독자노조 추진-미조직특위 결정 반하는 사항”, “비정규직 독자노조, 강력 재고 요청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러한 정규직노조의 태도는 정규직노조 및 활동가들의 지지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비정규직노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노동자들에 악영향을 미쳐 대중적으로 비정규노조를 고립되도록 만들었다.

자주적 연대, 계급적 단결인가?
아니면 종속적 의존, 하위 파트너 관리인가?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지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운동 내에서는 비정규직노조와 현자노조 간의 관계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핵심적인 게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태도였다. 10대 집행부는 물론 11대 이상욱 집행부도 비정규직노조를 자주적 연대, 계급적 단결의 주체로 흔쾌히 인정하지 않았다. 비정규직노조와 금속연맹이 불법파견 진정서를 제출할 때 현대차노조는 참여하지 않았고, 원하청이 함께 비정규직을 집단적으로 조직화 하는 과정에서도 비정규직노조로의 조직화를 반대하기까지 했다.

지금의 원하청연대회의는 현대차노조와 비정규직노조(울산, 아산, 전주)가 각각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하고 사업부별로 원하청공동투쟁단을 구성하는 등 외형적인 구색을 갖추고 있지만, 현대차노조 집행부의 하위 실무조정기구로 전락하면서 실질적인 투쟁방향, 계획 수립 등에서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대자동차 사측이 비정규직노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현대차노조가 불법파견 문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투쟁을 통해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는 이상욱 현 위원장이 올초 “(조합원이) 1천명도 안되는 비정규직노조가 1만 명의 비정규직을 대표할 수 있느냐” “1천명을 뺀 나머지 비정규직을 상대로 사업을 하겠다”는 말을 공동집회에서 할 정도였다.

이것이야말로 현대자동차 사측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며, 현대차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리교섭, 처우개선으로 비정규직노조의 실질적인 해체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자칫 잘못하면 사측이 원하는 '현대차노조가 비정규직을 하위파트너로서 관리'하는 역할에 충실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불법파견 철폐투쟁은 중요한 분수령에 와 있다

2005년 임단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불법파견 특별교섭에 대해서는 별다른 상황 진전이 없다.

현대차노조는 2004년 9월22일 처음 불법파견 판정이 난 이후 12월9일 울산공장까지 전체 불법판정이 날 때까지 ‘정규직 조합원의 정서가 준비되지 못했다’면서 어떤 투쟁도 조직하지 않았다. 2005년 1월 비정규직노조가 투쟁을 돌입하면서 100여명 해고, 위원장 및 사무국장의 구속과 집단폭행이라는 무자비한 탄압을 받으며 불법파견 철폐투쟁에 함께 할 것을 호소했을 때 그들의 투쟁을 철저히 외면하고 “불법파견 철폐투쟁”으로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 당시(2005년 2월) 벌어지고 있는 투쟁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까지 내세웠던 명분은 정규직 임단투와 같이 해야 힘이 실린다는 것. 그런데 이제 와서 또다시 정규직 조합원의 정서에 편승해 임단투만 끝내고 불법파견 철폐투쟁은 슬그머니 내려놓겠다는 것인가?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실패는 정규직 조합원의 패배주의로 이어질 것

일부에서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정규직의 고용불안”이 정규직 조합원 일반의 정서인 것처럼 얘기하면서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소극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드러난 부분만 본 것일 뿐이다. 대다수 정규직 조합원들이 몸 축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철야특근에 매달리고, 오히려 대의원들이 회사에 철야특근을 보장을 요구하고, 심지어 사측이 노동탄압의 도구로 철야특근 통제를 하는 게 지금의 현대자동차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다.

1998년 정리해고 이후 조합원들은 사측이 합의서 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과정에서 초토화된 현장, 무력화된 노조를 느낀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해외공장을 보면서 고용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40대 중후반의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물량쟁탈전, 철야특근으로 내몰리게 만드는 주된 이유다.

과연 이들이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고용방패가 될 것이라고 진짜로 믿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1/3 비용도 안 되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신들 중 사측이 누구를 선호하는지 분명히 안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1998년 사측의 정리해고 책동 시 노조가 합의해 1만여명이 정리해고, 무급휴직, 희망퇴직으로 강제로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들은 9,23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노조의 투쟁 포기로 정규직화에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 것인가. 더이상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참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현대자동차 사측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투쟁을 통한 불법파견 철폐냐, 겉으로 드러난 정규직 조합원 정세에 편승한 투쟁 포기냐. 두 갈래 길이 지금 현대차노조 앞에 놓여 있다. 9천여명의 젊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투쟁을 통해 정규직 조합원으로 끌어올린다면, 현대차노조는 현장 장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12월이면 현대차노조는 12대 집행부 선거에 들어간다. 지금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 투쟁을 외면하고 그때 가서 “고용안정” “투쟁하는 민주노조”를 외친다면 현 집행부는 물론 현장의 많은 조직과 활동가들은 조합원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 필자 사진은 필자의요청으로 게재하지 않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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