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독자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부터 드려야 하겠습니다. <기획연재> 이 부부가 사는 법의 제목이 잘못됐습니다. 진보는 확실히 담론을 필요로 합니다. 과학이 없는 진보란 있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이 '심장 없는 머리'란 '머리 없는 심장'만큼이나 잔인합니다. 당초 이 <기획연재>를 시작하면서 품은 저희들은 기획의도는 우리 이웃이 사는 모습을 담아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진보는 바로 옆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만 저희들이 무지막지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부부만이 사람 사는 모습이겠습니까. 부끄럽고 죄송하기 이루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획연재> 제목을 바꿉니다. 귀한 이야기를 전해주신 '명희씨와 희준이에게도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 주>



김명희씨(46)는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났다. 3남1녀 중 외동딸. 경기여고를 다녔다. 칼라에 풀을 빳빳하게 먹인 교복을 입고 광화문으로 연극을 보러 다니곤 했다. 성균관대학교 사서교육원을 수료했다.

스무살에 애인이 생겼다.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불문학도였다. 막걸리로 유명하던 고대 앞 고모집과 음악감상실 르네상스가 데이트 장소였다. 막걸리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학자가 되고 싶어했던 애인은 공무원이 되었다.

1987년, 결혼을 했고,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침이면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남편은 가끔 공무원 생활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술에 취한 남편이 밤늦게 직장 동료들을 몰고 들이닥치면, 눈썹 한번 모은 뒤 요리 솜씨를 발휘해 남편을 기쁘게 해주던 그이였다. 여름이면 세 식구는 휴가를 떠났다. 이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9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과 낚시를 갔다 사고를 당했다.


‘혼자’…

다섯살이던 아들 희준이가 열여섯살이 되었다. 김명희씨는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희준이와 교회에 간다. 한 시간 동안 새벽기도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희준이와 아침을 먹고 등교 준비를 시키고 명희씨도 출근을 한다.

명희씨는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실험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후 4시30분, 퇴근을 하자마자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어린이 놀이방으로 달려간다. 교사가 퇴근한 놀이방에서 오후 8시까지 아이들 밥을 먹이고 청소를 한다. 집에 돌아와 설거지며 빨래, 방청소를 하고 희준이 간식 챙겨주며 다음날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근처 사는 교인들과 집을 번갈아가며 구역예배를 드린다. 금요일에는 교회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기도를 올린다. 토요일에는 여전도회 회원들과 등산을 가거나 전국여성노조 과학실험보조원 서울지회 회의에 참가한다. 일요일은 희준이와 교회에서 지낸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을 묻고 돌아왔다. 하늘도 땅도 길도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11평짜리 아파트에 희준이와 명희씨, 둘만 남았다. 아이는 아빠가 없어도 일찍 잠이 들었다. 명희씨는 막걸리를 마셨다. 하룻밤에 한두병씩. 고모집에서 마시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따라주는 것도 아닌. 집 근처 수퍼에서 막걸리를 사다가 동네 사람들이 남편이 세상을 떴다는 사실을 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다음부터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슈퍼에 가서 사왔다.

한 달이 지났을까. 베란다에 막걸리병들이 널렸다. 검은 비닐로 싸서 버리기를 몇 번. 몰래 술을 마신다는 느낌에 명희씨는 소스라쳤다. 싫었다. 명희씨는 희준이를 먹여 살려야 했다. 혼자 사는 여자친구의 소개로 학교급식조리사로 취직을 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

95년 가장이 되어 처음 시작한 일이 학교급식조리사였다. 신혼 초 한식과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둔 덕분이었다. 일당은 2만2천원이었다. 학교급식이 없는 토요일과 방학에는 돈이 나오지 않았다. 4대보험과 퇴직금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감수했다. 남편이 없는 명희씨는 4대보험이 중요했다.

학교급식조리사에서 교무실행정보조원으로 일하다 96년부터 과학실험보조원이 되었다. 급여는 50만원 정도 되었다. 여전히 비정규직이었고 방학기간이 문제였다. 방학을 대비해 비축해둔 돈과 방학 중 과학과 연수보조를 하고 받는 돈 30만원, 나머지는 어린이 놀이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을 해 나갔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집은 건드릴 수 없다. 명희씨는 아파트가 2채다. 남편과 살던 11평짜리 아파트와 남편의 퇴직금과 사망보험금을 합친 돈 5천7백만원으로 사놓은 19평짜리 아파트다. 명희씨가 사는 상계동에 있는 주공 아파트다.

아파트 2채에는 전세보증금 5천5백만원이 걸려 있다. 아파트 사면서 생긴 은행 대출금 5백만원이 있다. 명희씨는 전세보증금 2천5백만원을 주고 다가구주택에서 살고 있다. 아파트 2채와 지금 살고 있는 전세보증금을 합치면 명희씨의 재산은 1억4천5백만원 가량 된다. 웬만한 아파트 한 채 있는 셈이다.

명희씨는 가끔씩 가슴을 쓸어내린다.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남긴 돈으로 집을 사놓지 않았다면 희준이 대학은 꿈도 못 꿀 일 아닌가.

‘친구’…

2005년 7월, 수입과 지출
1.850.0901.215.820
300.000(보험료,생명,암,연금)
200.000(우체국 보험 적금)
40.000(태권도 학원비)
120.000(인터넷 과외비)
50.000(급식비)
16.000(비데 사용료, 희준) 100.000(아파트 융자금+마이너스 통장 대출 이자)
18.910(전기요금)
32.000(수도요금, 2달에 한번)
27.440(인터넷)
22.180(휴대폰)
4.400(유선 전화)
20.340(교통비)
11.000(여성노조 조합비)
10.000(복음마을 후원금)
12.0000(십일조)
8.0000(교회 헌금 매주 1만원, 여전도회비 회비 1만원, 교제비와 활동비)
*200.000(생활비. 마이너스 통장)
*500.000(동생 용돈. 마이너스 통장)
715.820(학교과학실험보조)
200.000(놀이방 아르바이트)
300.000(아파트에서 나오는 월세)

중학교 3학년인 희준이 별명은 ‘목사님’이다. 장래 희망도 목사님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게 희준이의 최대 고민이다. 엄마와 새벽기도 하고, 학교 가서 공부하고, 태권도 학원 들렀다, 집에 와서 인터넷 과외를 한다.

친구들이 즐겨 보는 ‘야동’을 어쩌다 클릭했다가 끔찍했다며 엄마에게 고백하는 희준이. 여자친구도 없고, 휴대폰도 없다. 옷도 엄마가 사주는 대로 입는다. 친구들과 PC방도 안 간다. 바깥에서 라면도 안 사 먹는다. 한 달 용돈 만원이 늘 남는다.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재미있어 한다. 요즘은 교회에서 만난 형이 가르쳐 준 베이스기타 때문에 교회 가는 게 더 좋아졌다.

희준이는 아빠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목욕탕 갈 때 아빠 생각이 난다. 친구들이 가족과 휴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가 있었으면 한다. 어디 이 뿐일까. 그러나 희준이는 그리운 아빠보다 엄마 생각을 더 많이 한다. 희준이는 엄마의 남자친구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엄마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해 드려야 되고 엄마의 얘기도 들어 드려야 한다.

엄마는 아들과 비밀이 없는 사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엄마는 물어 보기도 한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긴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희준이는 “엄마가 행복하다면야”라며, 정답을 댄다. 수염이 거뭇하게 났지만 아직 솜털이 보숭보숭한 희준이. 실은 엄마가 그런 행복을 찾기보다는 주님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김명희씨는 희준이를 보면서 젊은날이 후회된다. 사서교육원을 수료한 뒤 할머니 병간호 하느라 취업하지 않았던 일,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 조선호텔 양식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다 임신이 되면서 그만 두었던 일. 1년만 더 일을 하면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때 정규직이 되었더라면 남편이 없어도 희준이 뒷바라지를 마음놓고 해줄 수 있을텐데….

여기도 비정규직, 저기도 비정규직

명희씨는 자신이야 무슨 일을 하든 밥만 안 굶으면 될 일이지만 아이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과학실험보조원은 1년마다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다. 엄마가 비정규직이고 얼마 벌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때 늘 돈을 염두에 둔다.

“대학은 장학금을 받아서 가겠다”며 희준이는 의젓하게 엄마를 토닥이지만, 그럴 때마다 명희씨는 기특함과 고마움보다 번듯한 직장을 갖지 못한 자신이 더 원망스럽다. 얼마전 희준이가 학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 과외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혹시 집안 형편 생각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싶어 가슴이 덜컥했던 명희씨였다.

김명희씨는 연봉 960만원을 받는다. 보너스는 없고 4대보험과 퇴직금이 있다. 7월, 통장에 들어온 돈은 4대보험료와 친목회비를 제하고 71만5천원이다. 명희씨가 놀이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나온 돈이 20만원, 11평짜리 아파트에서 나오는 월세가 30만원이다. 이래서 명희씨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1백2십만원 가량이 된다.

희준이 밑으로 3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학원비가 24만원이다. 이번달에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인터넷 과외를 하느라 12만원만 지출됐다. 태권도 학원비가 4만원이다. 교인이 운영하는 학원이라 반값만 내고 다닌다. 급식비가 5만원.

실제 모자가정이지만 국가가 인정(?)하는 모자가정이 아니기 때문에 급식비를 내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모자가정은 월수입이 80만원 이하이고, 특히 집이 없어야 된다.

명희씨의 지출 가운데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보험료와 십일조다. 보험료가 30만원 나간다. 남편의 생명보험금 3천만원으로 집을 사놓았기에 이 정도라도 살아 갈 수 있다고 명희씨는 생각하고 있다. 십일조는 12만원 정도 된다. 명희씨는 하나님이 자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이밖에 각종 공과금으로 20만원, 생활비로 20만원이 든다. 생활비는 거의 먹는 데 쓴다.

요리 솜씨가 좋은 명희씨는 음식을 만들어 희준이 먹이고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것을 좋아한다. 두 식구 몫 돈까스를 만드는 데 돼지고기 한 근이면 남겠지만, 명희씨는 세 근을 산다. 한 근은 희준이 몫으로 남기고, 두 근은 엄마 아빠가 없거나 돌보지 않는 아이들과 목사님이 함께 사는 집으로 가져간다. 슈퍼 가서 희준이 줄 우유를 사다가도 한두병 더 사고 과자도 몇 개 담아 명희씨처럼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집에 갖다 준다.

내 친구는 희준이, 교회 그리고 전국여성노조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남편을 잃은 명희씨에게 여자친구들이 생겼다. 남편이 죽은 뒤 직장을 소개하고 교회로 이끌었던 이도 여자친구다. 교회 여전도회 회원들과 하는 봉사활동도, 등산도, 명희씨의 친구들이다. 친구는 또 있다. 전국여성노조다. 그리고 전국여성노조는 명희씨와 희준이의 ‘생존’을 돕는 친구다.

2003년 명희씨가 알고 지내던 학교과학실험보조원 한 분이 해고가 됐다. 억울했다. 10년을 일했는데 과학담당 교사와 교장 선생님의 한 마디로 학교에서 나와야 된다니. 명희씨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민주노총으로 가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 물어물어 찾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상담을 받았다. 전교조 선생님들도 만났다. 그 분들은 “힘을 합쳐서 집회를 하고 계속 투쟁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싸워본 적이 없는 과학실험보조원들은 두려웠다. 민주노총에서 들은 이야기가 구구절절 옳은 건 사실이지만, 교장 선생님 앞에 가서 항의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쿵쿵 뛰었고, 집회는 더더욱 엄두도 못 냈다.

서울여성노동자회로 가서 다시 상담을 받았다. 명희씨 같은 아줌마, 아가씨들이 맞아 주었다. 여성노동자회와 학교로 교육청으로 함께 다녔다. 복직이 되었다. 명희씨는 이때부터 여성노동자회에서 만들었다는 여성노조에 가입하고 스스로 조합원 모집하는 데 나섰다. “절대로 못 오를 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올랐어요. 힘을 본 거에요.”

전국여성노조 덕분에 지난해부터는 방학 동안에도 월급이 나온다. 김명희씨 같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학 때 월급이 없었다. 여성노조에서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했다. 국정 감사 때 국회로 찾아가기도 했다.

“방학이라고 밥 안 먹냐?” 소리 높여 외쳤다. 가슴 속으로는 할 말이 더 많다. ‘선생님들은 방학 때 월급을 받지 않느냐, 우리는 왜 못 받나?’, ‘선생님들은 각종 수당에 성과급까지 받으면서…’ 어쨌거나 여성노조 덕분에 일용잡급직에서 연봉을 받는 1년 계약직 노동자가 되었다. 김명희씨는 조합원 1만1천원이 아깝지 않다. 3월8일 여성대회, 최저임금 투쟁집회에도 참가한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아줌마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혼자 사는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교회, 술, 남자.” 명희씨는 교회를 선택했다. 희준이를 생각하면 후회 없는 선택이다. 나이가 들고 희준이가 아무런 탈 없이 잘 커가는 걸 보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더 든다.

희준이를 떠나서 온전히 자신만 생각한다면? 재혼에는 돈이 더 많이 든다. 아는 이가 사귀는 남자와 재혼을 생각했다. 남자는 어머니와 딸이 있었다. 여자는 아들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사려면 방이 4개 있는 아파트가 있어야 했다. 말만 오가다 결국 합치지 못했다. 명희씨 처지에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아주 돈이 없어 희준이와 굶을 정도가 되었으면 마땅치 않은 자리라도 갔을지 모른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새벽4시부터 일어나 교회에서 학교로 아르바이트로 또 교회로, 엉덩이 한 번 붙일 새 없이 움직이는데, 눈이 감기지 않는 날이 있다. 책가방에서 팔각형 성냥을 꺼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던 남편. 밥 딜런의 ‘녹킹 온 헤븐스 도어’를 좋아했던 남편. 명희씨는 금방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여보 오늘 말이죠….’ 동네 할머니들은 가끔씩 얘기한다. “여자 나이 사십이면 사그러들고 오십이면 오그라든다. 재미있게 살아라.” 그러나 명희씨는 주님께 물어보는 게 전부다. “왜 제 남편을 데리고 가셨습니까?”

남편만이 전부인 줄 알던 김명희씨와 아빠 품이 세상에서 최고인 줄로만 알았을 희준이가 수렁에 빠졌을 때 국가는 해 준 게 없다. 명희씨에게 국가는 전국여성노조보다, 교회보다, 여자친구보다, 못한 존재다. 적어도 국가는 희준이에게만은 아빠가 돼줘야 했다. 그러나 급식비도, 학원비도, 병원비도, 심지어 간식비까지. 국가는 아빠 노릇을 해준 적이 없다.

집 있는 엄마가 있으니까 우리 희준이는 그래도 낫다고. 김명희씨는 이만하게 사는 것을 늘 감사하게 여기며, 아침 출근을 위해 옷깃을 여민다. 그러나 희준이는 아빠가 있는 아이들처럼 제 꿈을 마음껏 펼치지 않는다.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아빠 노릇을 하지 않는 국가가 아들에게 아빠 대접을 바라다면, 도적이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던 명희씨가 일어나 교회에 나갈 채비를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부은 눈을 보며 오늘은 우유와 간식거리를 챙겨들고 엄마 혼자 아이 키우는 집으로 찾아봐야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명희씨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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