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하십시오"
사실 이 시기 단병호 전 위원장은 영입 ‘1순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전 위원장은 노동현장에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상징성이 있었고 당 입장에서는 출마에 대한 ‘확약’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또한 비례대표 경선방식을 정하는 중앙위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던 때였던 만큼 노-단 회동에서 제법 구체적인 말들이 오고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날 오전 둘 사이에선 무슨 말이 오고갔을까.
당시를 전하는 단병호 의원, 노회찬 의원의 말이 조금씩 다르다. 또한 비례대표 경선 당시 노-단 선거캠프 주요 인사들의 말도 조금 다르다.
우선 단병호 의원은 “당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출마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던 시기였고, 노회찬 당시 선대본부장을 만난 것도 그 일환이었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고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단병호 의원과 노회찬 의원의 비례대표 경선캠프의 관계자들은 “노 선대본부장이 당시, 단 전 위원장에게 비례대표 경선에서 1등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을 전했고, 노 선대본부장 자신은 경선에서 앞 순위에 욕심을 내고 있지 않다는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노 본부장 자신은) 일반명부 3등(전체 6등)을 바라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노회찬 의원은 “당시 직접적으로 등수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은 없다”면서 “단지 선대본부장으로서 출마를 권하는 것과 더불어, (노 선대본부장 자신도) 출마 결심을 한 상황에서 내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말과 당시 정황을 비쳐볼 때, 경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말들이 오고가지는 않았겠지만, 오간 말들을 (각 경선 선본쪽에선) ‘구체적으로’ 해석했을 것으로 가능성이 크다. 이 회동의 의미는 하는 바는 이날 밤 대구에서 있었던 ‘17인 모임’을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좌파, 지지후보 선택 놓고 이견
같은날 밤, 17인 모임이 대구에서 열려서 비례대표 경선에서 누구를 조직적으로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했다. 단병호 전 위원장과 심상정 전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이미 지지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터였기 때문에, 이날의 쟁점은 노회찬 당시 선대본부장을 지지후보로 결정할지 말지였다.
민주노총 중앙파와 진정추쪽은 단병호, 심상정, 노회찬 이렇게 3명을 지지후보로 결정하자는 의견이었고, 이에 대해 화요모임쪽에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당시 화요모임쪽에서는 “지난해 10월 중앙위에서 ‘사회주의 이상의 계승’에 대한 안건 처리과정에서 노 총장은 좌파적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다”면서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상자기사1 참조> 진정추(노회찬 의원은 진정추 활동을 했었다)쪽과 ‘중앙파’쪽 사람들이 중재 노력을 했지만 무산되고, 화요모임은 급기야는 ‘표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네트워크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웠던 17인 모임은 인선 문제에 있어선 완전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시 그 모임의 한계였다. 만약 그날 표결로 들어갔으면 그것으로 좌파 연대는 깨졌을 것이다. 결국 노 총장은 17인 모임이 조직적으로 지지하는 후보에서 빠졌다.”(17인 모임을 주도했던 한 활동가)
이날 중재노력을 했던 쪽에서는 “그래도 노회찬을 지지하는 좌파가 많을 것”이라면서 진정추쪽을 설득했지만 진정추쪽은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노회찬 당시 선대본부장은 “그 모임에서 다신 내 이름을 거론치 마라”고 전했다.<상자기사2 참조>
“경선에 나서는 입장에서 지지해주겠다고 하면 거절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란이 있다면 굳이 기대고 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가서 잘 보이고, 설득하면서 지지를 호소할 입장도 아니었고,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내 등수 올리기에 주력할 상황이 아니었다.” 노회찬 의원의 회고다.
결국 17인 모임은 일반명부 한 표는 단병호 후보, 여성명부 한 표는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지만 나머지 한 표씩은 자율에 맡겼다. 범좌파의 ‘나머지 한 표’는 지역별로, 성향별로 나눠졌다.
거래할 ‘꺼리’가 없었다
좌파쪽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는 동안 당내 ‘자민통’계열, 당시 민주노총 새 지도부를 꾸리고 있던 국민파 등에서도 후보자들끼리 연대전선이 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좌파처럼 ‘테이블 논의’ 수준의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시점 또한 좌파의 논의시점이 2월20일 중앙위 이전이라면, 자민통-국민파쪽은 후보등록 다음인 3월초에 선거연합 논의가 이뤄졌다.
이는 중앙위 이전까지 후보로 나설 것이 확실했던 사람은 이영순 후보밖에 없었던 것을 고려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자민통과 민주노총 국민파쪽에서는 일반명부에서 천영세, 강기갑 후보를, 여성명부에서는 이영순 후보와 함께 최순영, 현애자, 이주희 후보 등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 묶음은 ‘강력하지’ 않았다는 게 여러 정황과 조건에서 나타난다. 각 후보들을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정파그룹 사이에 ‘거래할 꺼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영세, 최순영 후보의 경선에 관여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선거는 어차피 이기는 게 목적인데 지지를 표하는 사람을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선거 실무 수준으로 지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천 후보는 당시 자기 조직표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소위 ‘연합’(자민통)쪽에서 표를 준다고 해도 우리가 줄 표가 없었다. 거래할 생각도 없었고, 거래할 조건도 아니었다. 또한 정파질서에 묶이는 것은 천영세, 최순영 의원의 운동경력을 봐도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다.”
강기갑 후보쪽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농민 당권자가 거의 없었던 만큼 주고받는 거래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또한 전농쪽에서는 당시 당의 정파질서에 편입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자민통 계열에서도 이 시기에 ‘세팅’을 의도하진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울산연합의 핵심관계자의 말이다. “우리는 농민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만큼 당선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건 정파 문제가 아니라 당의 정치적 지지층 확보의 문제로 이해해 달라. 또 단병호, 심상정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해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식할 수 있다 없다는 이미 우리 상상력 밖에 일이었다. 이영순 후보가 자민통 운동의 대변자로서 국회에 입성하는 것을 위해 노력했다. 농민은 우리가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선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을 지지하는 입장을 정한 수준이다.”
비례대표 경선이 한창이던 3월초, (당내 좌파의 대척 개념으로서) 우파쪽 관계자들의 회동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 후보군 ‘세팅’에 대한 확실한 논의는 없었다.
|
“비례대표 경선은 세팅선거가 아니다”
결국 좌파도, 자민통도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 독식을 의도한 ‘세팅’을 하진 않았다. 후보군이 형성되긴 했지만 확고부동하진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세팅선거’는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세팅후보군에 들어감으로써 당선되는 것을 뜻한다. 그로 인해 유권자는 후보가 아닌 후보군을 보고 찍어야 하는, 사실상 선택권이 제약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세팅선거는 비판을 받는다.
비례대표 경선에서 각 정파그룹은 자기 세력권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만큼 이 비판을 비례대표 선거에 적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비례대표 경선까지는 세팅선거가 아니었다. 하지만 표수가 2만명 단위가 넘어가는 선거에서 각 정파들은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됐다.”
좌파쪽 핵심 조직활동가의 말이다. 각 정파는 비례대표 경선으로 자신들이 어디까지 당원직선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계량할 수 있는 실험값을 얻었다. <상자기사3 참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총선이 끝나고 한달 후에 있었던 당 지도부 구성을 위한 당직선거에서 확실히 나타나게 된다.
|
|
|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 “누구도 그렇게 많이 당선될 줄 몰랐다”
- “사생결단하고 여성을 찾아라”
- 비례대표 후보 출마, 어떻게 이루어졌나①
- 농민 국회의원 후보의 탄생
- 탄핵, 민주노동당이 위태롭다
-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 4만 당원, 막강했던 ‘지상전’의 전사들
- 어디로 갈 것이냐, 어떻게 나눌 것이냐
- ‘압승’ 그리고 ‘참패’·…그러나 승리한 자도 패배한 자도 없었다
- 김선일씨의 ‘죽음’,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단식’
- ‘개혁공조’, 호랑이 등에 탄 민주노동당
- ‘정치공학’이냐 ‘철학’이냐 ‘공부’냐
- 국정감사 ‘선전’…그러나 민주노동당에게는 ‘양날의 칼’
- 부유세 앞에서 '부유'하던 민주노동당
- ‘2중대’ 파동, 민주노동당을 뒤흔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