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고 3학년 재학생이던 강의석 군의 단식투쟁과 학교쪽의 제적처리 맞대응으로 촉발된 ‘학내 예배선택권 자유’ 공방이 벌써 1년 전의 이야기가 됐다. 강군과 학교쪽의 팽팽한 맞대결은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계뿐만 아니라 종교 외곽의 일반인에게도 큰 관심거리가 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40일 넘게 단식을 벌였던 강군은 대학생이 됐고, 당시 강군의 외로움 싸움을 지지, 독려하던 스승은 교단을 떠나 악세사리 노점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류상태 전 대광고 교목실장.<사진> 올해 마흔아홉, 전직 목사이자 교사였던 그가 남들이 ‘철밥통’이라며 시샘하는 안정적인 기득권을 집어던지고 길거리 노점상으로 나 앉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성직자라는 제한된 활동반경에서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은 듯 보이는 류상태씨. 그가 최근 한국 개신교를 향한 이유있는 반항을 시작했다.

“한국 교회, 특히 개신교가 교리의 독선과 배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도태할 것”이라는, 보수적 교단의 신경을 건드리는 발언을 겁없이 발표해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최근 발간된 그의 저서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역시 ‘불신지옥 예수천당’에 도취돼 있는 다수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미간이 찡그려질 만큼 파격적인 주장들로 가득차 있다.

스스로의 용기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고 다만 제자에게 떠밀려 이 자리까지 왔노라고 고백하는 그. 하지만 그는 이미 한국 개신교 개혁의 선두의 위치에 서 있는 듯 보였다.

2천년 전 원시인의 기록 ‘성서’, 읽을 것인가? 재해석 할 것인가?

지난 17일 저녁, 서울 동소문동에 위치한 인권실천시민연대 교육장. 개신교 신자를 포함해 불교신자, 천주교 신자, 류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미션스쿨의 교사, 머리가 희끗한 신학교의 노교수들, 종교에는 관심이 없지만 류상태라는 인물의 주장에 뜻을 같이하는 일반인 등 20여명이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특히 개신교가 성경의 문구 하나하나에 얽매이거나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서의 문화라는 것은 ‘2~3천년 전의 원시시대’와 ‘근동지역’이라는 특수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탄생된 것이므로, 성서에는 당시의 원시문화와 유치한 사상이 그대로 배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가르침이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유용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려면 당시의 문화를 바탕으로 오늘의 우리에게 맞도록 재해석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의 신 야훼가 사람을 ‘죽이라’고 명하는 부분이 꽤나 많이 나옵니다. 성서를 일점일획의 오류 없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신앙인들에게 이런 부분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라면, 사람을 죽이라고 명하는 이런 잡신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냐는 게 그의 지적.

“출애굽기 32장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해(출애굽) 광야에서 천막을 짓고 무리지어 생활할 때, 지도자였던 모세가 이들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40일 넘게 산에만 묻혀 있었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고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대신할 신을 찾게 됐습니다. 금송아지를 빚어 숭배를 하게 된 거지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의 지도력이, 하느님을 향한 신앙이 흔들리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지요. 다시 말해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이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되고,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관용을 베풀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은 가차 없는 징계에 대한 원시인들의 합리화이자 고백적 기록인 것입니다.”

그는 성서의 기록은 당시 원시인들이 하느님을 이해한 수준을 반영한 고백의 글에 불과하다며, 현대의 우리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오늘날에 맞는 성서적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일신’이란 하나가 아닌 전체

그는 이어 개신교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화로 제사문화와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신의 개념으로 조상에게 절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내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배를 하듯, 내 부모의 부모에게 예를 갖추는 것을 우상숭배로 모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또 최근에도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단군상 목자르기’나 ‘사찰에 불지르기’와 같은 사건들의 주범이 기독교인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의 근저에는 역시 잘못된 성서의 이해가 원인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유일신’이라 것은 전체 포용으로써의 유일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배타성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그렇게 볼 때 하느님의 품에서 제외되는 종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우리의 이웃이지요.”

예수종교 아닌 예수운동 돼야

그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비행기가 위태롭게 가고 있으면 우선 착륙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착륙을 한 연후에라야 고칠 것인지 폐기처분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모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다만 고장난 비행기와 같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한국 기독교의 독선과 배타성을 끊임없이 증언하고 혼란을 부추길 것입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면 살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죽을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예수종교가 아닌 예수운동’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존중받는 사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에 걸맞는 복음의 전형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이날 강연을 끝냈다.

“끝끝내 복음의 원형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결국 소멸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