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노동부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정 이후 현대차비정규직노조(지회)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5공장 탈의실 농성, 천막농성 등을 이어갔던 현대차비정규직노조(지회)들은 8월말 정부와 현대차를 상대로 공동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5일 현대차비정규연대회의 수련회에서 현대차비정규직노조, 금속노조,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3개 주체 대표자와 간담회를 갖고 상반기 불법파견 투쟁의 성과와 한계, 이후 계획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노동계 최대 현안에 대해 금속연맹이 8월26일 하루 정치파업을 선언했다. 또 당사자인 현대차비정규노조(지회) 역시 8월말 공동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 8월말 노동계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과 6일 현대차비정규연대회의 소속 3주체 간부 및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연대회의 결성 이후 처음으로 공동수련회를 가졌다.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끝난 이날 수련회에서 이들은 “이제 더이상 울산의 투쟁을, 아산과 전주의 투쟁을 각각 진행하지 않을 것이며 3개 노조(지회)의 싸움을 하나의 싸움으로 모아 공동투쟁을 진행하겠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이날 수련회에서 이들 3개 노조(지회)는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한다는 목표는 같았지만 노조설립 시기를 비롯해, 울산, 전주, 아산 등 각 지역별 공장별 상황이 모두 ‘같지만 또 다른’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이해하기에도 분주했다.

특히 첨예한 문제인 정규직노조와 연대문제는 노조 설립 준비부터 정규직노조와 함께 했던 전주비정규직지회와 울산비정규직노조, 아산사내하청지회의 상황이 상이하게 달랐다.


소통의 부재, ‘정규직-비정규직 서로의 간극’

이날 수련회 이후 가진 3개 주체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김형우 전주비정규직 지회장은 “모든 논의들이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현대차 전주본부, 비정규직지회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구조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 안에서 비정규직지회가 제안하는 일정들은 대부분 그대로 이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지회장은 전주본부를 제외한 본조(울산)와 아산본부에서는 서로간의 불신의 골이 보기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지회를 설립하기 전부터 뜻이 맞는 정규직 조합원, 간부들과 논의를 시작해 노조 설립시기·방법 등에 대해서 논의 초기부터 공동결정, 공동책임 구조를 가져가 서로간 신뢰가 돈독하다. 그런데 현대차 원·하청연대회의 회의 속에선 원청노조와 비정규직노조(지회)간 말에 가시가 돋힌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 노조 설립 당시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원청노조 직가입 문제를 시작으로 산별노조 전환 문제 등 잘잘못은 그렇다치고 당시의 앙금이 지금까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불편한 것도 사실이고….” 김상록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위원장직무대행은 “지난 1월 현대차원·하청연대회의가 구성되면서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현안 문제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1월17일 전·현직 위원장 기자회견을 통해 “97년 이후 사내하청의 무차별적인 증가를 막기 위해 16.9%로 사내 비정규직 비율을 정하도록 합의한 것은 잘못된 관행이었다"며,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 비정규직 노조들과 공동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등 적극 대응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홍영교 아산사내하청 지회장도 “처음 울산에서 원·하청연대회의가 진행될 때 아산본부(정규직노조)와 따로 움직이는 등 불편해 했지만 현재는 회의 참여 시에도 같이 이동하고 이전에 비해 함께 논의구조를 만들수 있는 것도 원·하청연대회의를 통한 성과”라며 불법파견 투쟁을 진행하면서 서로간 간극이 좁아지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연대, 당연해 보이는 이 문제는 사실 ‘원칙’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쉽지 않다는 데 3주체 대표들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원칙을 지켜내면서 조금씩 양보와 이해를 통해 이 간극 또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불법파견이라는 공동의 요구를 가지고 그동안 부족했던 소통을 다시 이어가는 것은 현대차라는 거대자본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

비정규직 조직화 3천여명, 원·하청연대회의 가장 큰 성과

서로가 알고 있되 말하기 부담스러웠던 주제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7개월간 진행됐던 현대차원·하청연대회의의 그간의 성과와 과제로 논의가 이어졌다. 3주체 대표들 공히 원·하청연대회의 가장 큰 성과로 지난 6월 한달 간 ‘부흥회’로 표현되어졌던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현대차비정규노조(지회)의 조합원 수는 3천여명. 특히 울산현대차비정규직노조의 경우 800여명이었던 조합원 수가 한 달여간 1,800여명으로 급증하는 등 놀라운 증가세를 보였다.

“사실 2003년부터 현대차노조에 공동투쟁단을 이야기했었는데 그 당시 현격한 입장차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2년의 과정을 넘으면서 비정규직노조의 존재차이를 인식하고 결과적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공동목표, 공동투쟁까지 내온 것은 커다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김상록 직무대행의 말이다.

홍 지회장 역시 “원·하청연대회의를 통해 그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괴리감을 좁혀나간 것 역시 성과"라며, "물론 ‘공동투쟁, 공동책임’이라는 조건이 비정규직노조의 독자투쟁에 일정 정도 브레이크를 걸고 있기도 하지만 서로의 입장차를 공식 논의 테이블을 통해 확인하고 한계와 과제를 분명히 도출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출범한 원·하청연대회의는 출범 이후 ‘공동투쟁, 공동책임’이라는 기조 아래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투쟁을 준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지난 5월 현대차에 특별교섭을 요구하고 또 6월에는 공동으로 비정규직 조직화를 실현했다. 물론 계속된 특별교섭 요구에 현대차는 “교섭에 나갈 이유가 없다”며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원·하청연대회의가 7개월간 진행됐고 특별교섭 역시 6차에 걸쳐 무산됐다. 이제 더이상 교섭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 투쟁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해서 현대차비정규노조들은 8월말 투쟁을 선언했고 오는 11일 열릴 예정인 원·하청연대회의 속에서도 특별교섭이 아닌 다른 방법을 내와야 할 때다.” 김 직무대행은 힘주어 말했다.

김 전주지회장 또한 “비록 단체교섭을 이유로 지금까지 5차에 걸쳐 부분파업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현대차가 하청업체에게 교섭에 나서지 말라며 압력을 넣고 있는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다"며, "심지어 지난 파업시 더이상의 파업을 강행하면 직접 ‘대체인력’을 투입하겠다고 공식화 했다"고 주장했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에게 원청의 개입이 지나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김 지회장의 지적. 그는 또 "현대차를 상대로 한 싸움에 비정규노조들뿐 아니라 공동투쟁을 약속한 정규직노조도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제 현대차노조가 판단할 시기라는 것.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지 8개월이 넘어서고 있고 특별교섭도 6차에 걸쳐서 무산됐다. 다행히 원·하청연대회의가 꾸준한 준비를 한 덕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수도 증가했고 시기적으로 현대차가 임단투를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임단투와 불법파견 투쟁을 함께 병행해야 할 시기라는 의미다. 더욱이 금속연맹도 8월말 금속노동자 하루 정치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등 8월말은 불법파견 투쟁을 본격화할 수 있는 호기인 셈이다.

8월말 불법파견 투쟁 포문 “열어야만 한다”

또한 현대차노조의 ‘무분규 타결’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혹여 올해 임단투가 투쟁없이 9월 추석 전 마무리가 될 경우 현대차노조는 곧바로 선거준비에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원·하청연대회의 논의도 더이상 진척을 보지 못하게 되고 불법파견 투쟁도 차기 집행부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직무대행은 “5공장 농성이 이미 200일을 넘어서고 있다"고 강조한 뒤, "지금 시기를 놓치면 지금까지 쌓아온 투쟁의 성과조차 물거품이 된다는 인식이 현장에 팽배해 있다"면서 "8월말 비정규직노조들의 투쟁은 이러한 절박함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고 속내를 비쳤다.

홍 아산지회장 역시 “금속노조가 올해 중앙교섭에서 불법파견과 관련 ‘불법파견 확인시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정규직화’한다는 합의를 이미 끝냈다. 아산 역시 관련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이러한 투쟁은 금속노조 전 사업장을 포함해 현재 불법파견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GM대우차창원공장, 기아차화성공장 등 비정규직 노조들의 투쟁으로 이어져 전국적 투쟁전선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홍 지회장은 “불법파견 판정을 노동부가 내렸다. 당연히 잘못된 것을 시정하도록 그에 대한 판단 역시 정부가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불법파견 판정으로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완전도급화 등 자본의 카드에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 더이상 수수방관하고 있으면 이제 칼끝은 정부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지회) 3주체 대표들과 가진 이날 간담회는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싸움이 결과적으로 현대자본과 정부와의 투쟁을 대상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지난달 22일 현대차를 대상으로 부산지노위에 불법파견 특별교섭 거부에 따른 쟁의행위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자위원의 일괄사퇴로 조정위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조정절차에 아무런 하자가 없으나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이에 대한 불법여부 판단은 법원에 맡겨지게 된다.

금속노조 소속인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와 전주비정규직지회는 이미 합법적 쟁의행위 절차를 밟았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의 경우 파업에 돌입할 경우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현재 절차적으로 합법적 쟁의권은 확보했다. 그리고 현대차노조의 임단협과 관련해 노조가 오는 16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행위를 결의, 곧 조정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돼 8월말에 현대차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들은 모두 쟁의행위 태세에 돌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8월말 이들 조직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공동으로 나설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날 간담회에서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은 더이상 정규직노조에게 라인을 잡아달라고 요구하지도 부탁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비정규직 노조들 스스로 현대차를 상대로 생산에 타격을 주고 그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겠다는 것.

다만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노조들의 투쟁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처해진 현실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공동행보를 할 수 없을지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지금 싸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시간 가량 진행된 간담회는 수련회 일정을 끝내고 뒷풀이를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의 '빨리 오라'는 성화에 끝이 났다. 현재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의 수준, 이후 투쟁계획 등 이들 대표자들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산적했지만, 이 이야기들은 뒤로 미루고 간담회는 마무리됐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