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차체를 생산하는 대덕사 공장의 기계가 멈춘 지 150여일째. 올해 2월25일 회사가 동울산세무서에 폐업신고를 마쳤지만 금속노조 대덕사지회 조합원들은 공장을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2월28일, 사무직과 경영진 모두 공장을 떠나고 폐업공고가 붙던 날에서야 밤새 켜져 있던 공장의 불빛이 꺼졌다. 거대한 굉음을 내며 차체를 생산하던 기계들이 멈췄고 공장의 노동자들은 망연자실 손을 놓아야만 했다.

지난해 11월 초순부터 업체 폐업에 대한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았지만 애써 귀 막고 눈 가리면서 소문을 부정했던 그들이었다.

폐허가 되버린 공장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울산의 기온이 30도를 웃돌던 지난 21일 5개월째 기계가 멈춰진 대덕사를 찾았다. 음산한 기운마저 도는 공장엔 퀴퀴한 냄새와 녹슨 기계들만이 있었다. 지난 2월28일 오전 11시 정각. 기계를 멈춘 그곳은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한다.

밤샘 작업으로 지쳐 있던 노동자가 벗어놓은 때 묻은 장갑, 노동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산타모' 차체, 끊어진 라인 위에 뿌연 먼지와 함께 놓여 있는 부품과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작업일지. 지금이라도 전원을 켜고 노동자들의 손길만 닿으면 활기를 찾을 수 있을 듯한 공장 안은 적막함 뿐이었다.

“정확히 오전 11시였어요. 현대차에 차체를 대기 위해 40여명의 노동자들은 라인에서 바쁜 손길을 멈추지 않았어요. 더이상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경영진의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기계들이 토해내던 차체가 목에 걸린 듯 생산이 중단되고 기계소리가 멈춘 그 순간, 공장 안은 조용했다. 더이상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듯 여성노동자들의 흐느낌만이 들릴 뿐이었다.

스스로 기계 전원을 끌 수밖에 없었다는 박남철(가명·32) 조합원이 전해 준 당시 상황은 처참했다. 그렇게 5개월간 기계를 빼내기 위해 수차례 용역직원을 이끌고 공장으로 들어오려던 경영진을 막아서고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이들이 지난 11일 결국 집단 단식농성이라는 극한 투쟁방법을 선택했다.

“우리 고용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곳은 현대차 밖에 없습니다. 현대차 하나만을 바라보며 지난 30여년간 이곳에서 부품을 생산해 왔어요. 부품업체는 현대차로부터 신규물량 수주를 못 받으면 그날로 생명이 끝납니다.”

현대차, 부품사 ‘길들이기’인가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에도 대덕사와 현대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폐업단행 이유에 대해 회사쪽은 강성노조인 금속노조 대덕사지회 때문에 매년 인건비가 큰 폭으로 상승해 동종업체와 경쟁력을 상실한 것을 이유로 들며 노조에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 현대차 역시 두 차례 진행된 간담회에서 대덕사 폐업은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며 발뺌했다.

그러나 회사 설립 당시부터 30여년간 현대차 부품만을 생산했는데 하루아침에 폐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 더욱이 대덕사는 현대차 주 차종인 ‘클릭’ ‘아반떼 XD' '산타페’ 등 주요 차체를 납품하고 있었다. 대덕사가 폐업하게 되면 현대차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박춘곤 금속노조 대덕사지회장은 2003년부터 계속된 대덕사 경영진과 현대차의 마찰이 폐업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설명한다.

“2003년에 대덕사가 현대차에 단가인하(CR)한 금액을 ‘겁도 없이’ 내놓으라고 해서 15억원 정도를 돌려받았어요. 그리고 그해 현대차가 신규차를 생산했는데 당시 대덕사는 현대차에 수주를 못 따냈어요. 현대차를 통해 밥벌이하는 부품사가 건방지게도 원청에 이래라저래라 했으니 심기가 불편했던 거죠.”

박 지회장은 현대차가 대덕사 폐업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부터 세원물산, 대성사, 아진산업, MS오토텍, 우진산업 등 5개 업체와 이중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즉, 대덕사가 독점적으로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는 차체를 이들 업체가 생산하면서 현대차 생산은 차질 없게 진행됐다는 것.

이는 현대차가 대덕사를 본보기로 해 강성노조(?)인 금속노조 부품사 지회들을 길들이고 향후 진행될 자동차 모듈화 및 한일FTA 체결에 따른 대대적인 부품사 구조조정의 전초전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흠집이라도 내겠다

지난 11일, 21명으로 시작한 집단단식농성이 10여일을 넘어서고 있다. 어차피 공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바에야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차라리 ‘굶어죽기’를 각오했지만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이미 10여명이 탈진한 상태다.

농성장에서 만난 김태환(가명·34)씨는 “그만두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며 하얗게 말라버린 입술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회사가 폐업을 단행하고 농성에 결합했던 조합원들이 하나 둘 떠났지만 모두 취업이 안 되고 있다”며 “취업을 하기 위해 다른 부품업체를 찾았지만 ‘대덕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아무개씨의 경우는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 취업했음에도 현대차에서 공장출입증을 발급하지 않아 취업 15일만에 ‘해고’를 당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제껏 부품업체에서 일한 경력밖에 가진 것 없는 노동자가 국내 자동차 생산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차가 있는 울산에서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며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는 단식농성자들. 이들은 매일같이 현대차 정문 앞, 뙤약볕 아래서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으며 나머지 조합원들은 하루 종일 울산시내에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힘겹게 진행하고 이들의 투쟁에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 폐업의 장본인인 대덕사 사장은 이미 다른 업체를 차려 자기 잇속을 채우고 있다. 대덕사 부지를 인수한 '조일공업'이라는 부품업체 또한 ‘8월 중순까지 비워주지 않으면 법으로 상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조합원들의 실업급여도 이달말이면 대부분 끝이 난다.

금속연맹, 금속노조 울산지부 등 이미 수차례에 걸쳐 금속노동자들이 대덕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지만 현대차와 대덕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자가 울산을 찾은 지난 21일 역시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는 금속연맹 울산본부 주최로 ‘원·하청 불공정 거래 척결, 바이백 지침 폐기, 대덕사 조합원 생존권 사수 금속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대덕사 문제는 단지 일개 업체의 폐업 문제가 아니라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부품업체들에게 해외생산제품 역수입(바이백) 지침을 내리는 현대차와 금속노동자들의 한판 싸움을 의미한다”며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금속연맹 소속 완성차노조와 금속노조가 현대차라는 '태산'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업 150여일째, ‘현대차’라는 태산을 상대로 금속노조 대덕사지회 조합원들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이 불볕 더위 속에 계속되고 있다. 탈진으로 노동자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있지만 현대차는 더운 날씨에 공장 정문 앞에 깔린 잔디가 죽지 말라고 스프링쿨러만 계속 돌릴 뿐이다.

<인터뷰> 박춘곤 금속노조 대덕사지회장
올해 나이 서른. 며칠 후면 대덕사에 입사한 지 올해로 12년째를 맞는다. 박춘곤 금속노조 대덕사지회장은 1993년 8월10일 실업고 3학년 재학 중 이곳으로 실습을 나왔다. 군복무도 병역특례를 받았으니 그의 인생 절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지난 21일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 단식농성장에서 10일째 단식농성중인 그는 “죽기를 각오한 싸움,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 일지라도 현대차를 상대로 한 ‘고용승계’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의지를 태웠다.


- 집단 단식농성이라는 극한 투쟁을 시작한 이유는.
“지난 2월28일 회사쪽의 일방적인 폐업 이후 금속연맹, 금속노조 주최로 수차례 파업과 집회 등을 진행하며 이번 폐업에 대해 현대차가 책임지고 제3자 매각과 조합원들의 고용승계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장이 그동안 숱한 집회하면서 수배를 당하고 조합원 25명도 업무방해로 이미 고소·고발 된 상태다. ‘필사즉생’ 죽기를 각오하면 살지 않겠는가.”


- 대덕사 농성이 갖고 있는 의미는.
“올해 비정규노동자들 투쟁이 봇물처럼 터졌다. 이제 하반기 현대차의 바이백지침이 현실화되면 자동차부품업체 노동자들의 고용문제도 불거질 것이다. 해외생산제품 역수입 문제는 자동차부품업체 노동자들의 고용문제 뿐 아니라 노동3권을 위협할 뿐더러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문제다. 원청인 현대차로부터 토사구팽 당해 이렇게 길거리로 내몰려 있는 우리의 싸움을 통해서라도 바이백을 저지하고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막을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지회의 요구사항은.
“이번 사태의 실질적 책임을 지고 있는 현대차가 대덕사를 제3자에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3자 매각대상은 현대차에 납품하는 차체 부품업체 중 대덕사 아이템을 이중개발한 업체를 포함, 2004년 매출액 상위 5위 업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조건이다. 조합원들의 완전고용을 비롯해 단체협약, 노조승계가 원칙이 되어야 한다. 또 대덕사 경영진은 대덕사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고 노동자들의 퇴직금 중도정산 및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노동자들에게 위로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 원청을 상대로 한 싸움이 쉬워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가장 지치는 것은 조합원들이다. 88명이었던 조합원이 현재 35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의 결의를 세우고 다시 현대차를 상대로 한 커다란 싸움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집단단식농성을 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현재 금속노조 울산지부 독자적으로 하고 있는 이 싸움을 민주노총 총연맹으로 확대해 자동차 부품업체를 비롯해, 전체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반드시 만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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