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현대미포조선, 상고 기각”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102호 법정. 주심 대법관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선고를 기다리던 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해고자의 표정이 순간 정지됐다. 함께 선고결과를 듣던 동료들에게 “상고기각 맞아? 진짜로?”라며 대법원의 판결 결과를 묻고 또 물었다.

승소를 재차 확인한 김씨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두 딸에게 ‘이겼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화 뒷켠에서 ‘와~’하는 함성 소리가 이어지자 연신 터져 나오던 그의 웃음이 비로소 환해졌다.

선고 직후 계속된 기자들과의 인터뷰 동안 그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8년3개월의 오랜 기간 원직복직 투쟁을 벌였던 그의 수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이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일인 양 행복해 하고 또 즐거워했다.

이날 울산에서 김씨의 선고결과를 함께 듣기 위해 올라온 이들도 10여명이 넘었다. 정윤광 서울지하철노조 전 위원장을 비롯해 송수근 울산 삼성SDI 해고자, 태광정투위 해고자 등도 김씨의 손을 꼭 잡고 “이길 줄 알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께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고맙다라며 허리 굽혀 인사를 한 김씨는 특히 “해고 직후 큰 딸 아이 학원이 끊길 뻔 했는데 당시 선생님께서 돈도 받지 않고 계속 가르쳐 주셨다”며 “서울에서 일이 모두 끝나면 내려가자마자 감사 인사를 꼭 전하겠다”고 가슴속에 묻어놓았던 이야기들을 풀기 시작했다.

“현대차노조 조합원 모두에게도 감사한다. 투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 1만원짜리 양말, 아마도 당시 현대차 조합원 4명 중 1명은 신고 다녔을 것”이라며 “당신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가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며 크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씨는 “해고자 한 명을 위해 각 방송사를 비롯해 인터넷매체 기자들의 보도 또한 이 판결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며 “하지만 8년3개월간 ‘꼬마부처’마냥 내 옆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지가 되어준 아내를 빼놓고선 이 모든 것들을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석진씨, 또다시 대법원 정문 앞에 서다

그런 김씨가 울산에 있는 가족에게로 바로 내려가지 않는다. 김씨는 이번주 또다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1인시위를 할 예정이다. 재판에는 이겼지만 죽은 법이 되다시피 한 민사소송법 199조의 현실화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제 일이 끝났다고 보따리 싸서 바로 내려갈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그는 “헌법 27조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민사소송법 199조에 따르면 상고심 판결은 5개월 이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대법원’인 사법기관이 이를 무력화시킨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법원의 책임을 촉구하겠다는 것.

김석진씨는 “40여개월 동안 판결을 지연시킨 대법원이 저지른 무언의 폭력은 나만으로 족하다”며 “여전히 대법원 앞에서 정의의 판단을 내려줄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1,200여명의 해고자들을 위해서라도 대법원장의 국민공개사과를 받은 후에 울산으로 내려가겠다”고 밝혔다.

8년3개월의 원직복직투쟁 기간, 회사 동료들의 손가락질에도, 경비대에 흠씬 두들겨 맞아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내쫓기던 그 순간도 아직 김씨의 가슴 속에 그대로 있다. 그 옆에서 묵묵히 자신을 믿어주며 지켜보던 아내와, 두 딸 소연과 승연,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석진씨.

과연 40개월간 아무런 이유없이 판결을 지연시켰던 대법원은 김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았을까. 5분도 채 되지 않은 대법원의 선고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렸던 그의 숱한 시간들에 대해 이제는 대법원이 다시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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