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오늘이다. 8년간의 기나긴 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해고자에 대한 대법원 해고무효소송 확정판결 선고가 22일 열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며 김석진(45)씨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지금, 누구보다 가슴 졸이며 선고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은 그의 가족들이다.

선고결과를 이틀 앞둔 지난 20일 오후 9시께 김석진씨와 가족들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울산 화정동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았다.


김씨의 선고날짜가 확정되자 그의 지난한 복직투쟁을 지켜보던 주위 동료들의 안부전화가 이어졌다고 했다. 이날 역시 현대미포조선 조합원인 진종규(56)씨가 김씨를 찾아 이미 술 한잔을 걸친 상태.

“꼬마부처 아닌교. 당신 같으면 8년 동안 복직투쟁 한다고 길거리에 나앉은 남편 뒷바라지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몬하는기라. 해고무효 확정되면 제일 먼저 아내한테 엎드려 절해야 하지 않겠능교.”

“석진이 처음 노조 활동하라고 부추긴 사람이 나였는데, 상사 명령에 불복종 했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해고를 당하고, 내 참 아직도 여가 갑갑한기라”며 가슴을 치는 진씨는 김씨가 해고를 당한 이후 지금까지 그의 곁을 지킨 수많은 이들 중 하나다.

주위 동료들의 분노와 가슴앓이가 김씨와 그의 가족들을 담담하게 만든 것일까. 선고를 이틀 앞둔 김석진씨와 그의 아내 한미선(42)씨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대법원으로부터 선고일을 받고 나서 아무 생각도 안났습니다. 이제 끝나는구나 하는 안도감보다는 이제야 끝나는 건가라는 서운함이 더 크게 밀려왔습니다”는 김씨. 그의 아내 역시 “담담합니다”라는 말로 8년간의 고통을 묻었다.

해고자의 아내. 수천만원의 빚을 지면서 제대로 된 세간 하나 갖추지 못하고 아이들 옷 한 벌, 맛있는 식사한번 제대로 내오지 못했던 시간이 8년이다. 그 와중에 시어머니, 친정아버지 병수발도 해야 했던 그. 차마 기자는 한씨가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8년의 세월을 끄집어 낼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김씨의 둘째딸 승연(12)이의 재잘거림도 들린다.

“복직투쟁 하느라 집에 신경을 못 써서 이렇게 집에 있는 날이면 제가 식사당번입니다”라며 직접 만든 쥬스를 전해주는 김씨. 낯선 기자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승연은 오늘 방학식을 한다며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 아빠는요. 제가 물, 그러면 물 갖다 주고요. 컵 치워달라고 하면 컵도 치워주세요”라며 바로 아빠를 부른다. 승연의 말대로 김씨는 딸의 명령(?)에 즉각 응답하는 자상한 아버지다.

22일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묻자 “아빠 회사 출근하는 날이요. 근데요. 저는 아빠가 회사 안 갔으면 좋겠어요”라며 아직은 자신과 놀아주는 것이 더 좋은 그의 어린 딸 승연.
며칠 전부터 방학을 맞아 늦잠을 자던 첫째 딸 소연(15)이 일어났다.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는 기자에게 예쁘게 나와야 한다며 부산스레 세수를 하고 환하게 웃는 사춘기 소녀.

모처럼 가족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8년간 복직투쟁을 하느라 김씨는 단식농성장에서, 서울의 대법원 앞에서 그리고 연대투쟁을 위해 전국 곳곳을 돌아다녀 자식들에게 소원했고, 아내 역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화장품 판매를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다행히 소연과 승연, 두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이제 22일, 41개월째 미뤄졌던 대법원 해고무효소송 확정판결 선고 결과만 나오면 이들 가족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상처들은 비록 치유되지 않을지라도 여염집 가족들이 사는 것처럼 그렇게, 단란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오늘 대법원의 판결은 김석진씨의 복직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행복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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