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이 ‘복지모델’이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부르조아 정치, 사회에 위협적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며 위기감을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부르조아가 그냥 양보하지는 않는다. 체제전복의 위협이 있을 때만이 양보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의 박노자 교수(한국학)는 6일 오후 7시 숭실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 정종권) 주최의 7월 월례포럼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주제로 강연했다.

전투성 잃어버리면 ‘복지’ 양보란 없다

3백여 좌석이 꽉 찬 가운데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박노자 교수는 노르웨이 복지모델의 성립과 후퇴과정 및 그것을 막기 위한 상시적 계급투쟁을 설명하며 “노동계급이 전투성을 잃어버리면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어떠한 양보도 얻어낼 수 없다”며 “세계적 규모의 변혁만이 자본주의 모순을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선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를 자본주의 극복모델로 바라보거나, 복지모델은 ‘역사의 막다른 골목’이라며 실패로 보는 양극단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며 “복지국가는 정치적 협상과 타협의 산물로서 늘 불완전하고, 자본주의 풍파에 노출되어 있으며, 복지모델을 지키기 위해 노동계는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복지사회의 반동적 경향에 대해 “보수내각이 임시, 비정규직 보호법률 개악안을 냈으나 비정규직을 채용하더라도 분명한 사유를 노동위원회에 제시, 허락받도록 하고 비정규직 모집 시 노조의 동의를 구하도록 했다”며 “이는 노조가입률 50%를 기반으로 한 총파업 등 노동계가 2년여 투쟁 끝에 막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노르웨이 사민주의 사회에 대해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노르웨이에서 3D직종은 이민자의 몫이며 이민자 2~3세들은 인종, 문화 차별 때문에 노르웨이판 ‘창씨개명’을 하고 있고, 대학의 학생자치권 축소나 의료분야의 민영병원 15% 수술률 등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후퇴의 징후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신자유주의 수출은 가능해도 복지국가 수출은 불가능하다”며 “복지국가는 해당지역과 국가 단위에서 얼마만큼 투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소한의 복지를 얻으려면 훨씬 더 전투적이어야 하는데 노르웨이의 50% 노조조직률에 견줘 한국의 10% 가입률로는 부르조아를 압박해 양보를 얻어내기란 역부족”이라며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투쟁, 양대노총의 현장실천력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민족’ ‘국민’ 근대성 유산 한계 떨쳐내야

노르웨이는 1887년 노동당의 설립과 1899년 전국노총의 창립으로 급진적 노동운동을 전개한다. 1930년대 초기 세계공황 당시 계획경제와 주요 생산수단의 국유화 등 ‘진보적인 국가자본주의’ 노선으로 자본가들을 압박해 노동자 참여에 기반한 복지국가라는 양보를 얻어낸다. 이후 30년간 노동당은 내각을 독차지하며 거의 ‘일당국가’ 체제를 이룬다.


박 교수는 그러나 “30년대 복지제도를 수립하면서도 노동당은 ‘불량유전자 소유자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 법안’을 반대 1표를 제외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며 “집시 등 비유럽인의 자유를 빼앗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노동당이 당시 ‘인종주의’ ‘우생학’ ‘자본주의 적자생존’이란 거대담론에 백기투항한 것”이라고 근대성의 유산을 떨치지 못한 한계를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를 연장해 “최소한 민주노동당도 정체성과 전투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며 “민주노동당이 최근 독도에 군대를 보내자거나, 국적포기자에 동포권리를 빼앗자는 극우적 법안에 5명의 의원이 찬성한 것은 수치스런 일”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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