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 햄, 게맛살, 칼국수, 떡, 김…. 아이들의 영양식(?)에 들어갔다는 먹다 남은 도시락 잔반 불량재료들을 모아 학부모들이 죽을 끊였다. “돈가스가 없잖아”, “가래떡도 넣어야지”, “라면도 넣고 김치, 깍두기도 넣어요” 22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청에 모인 고려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일명 ‘개죽’  또는 ‘꿀꿀이죽’을 만드느라 부산하다.

왜 죽을 끊이는 것일까? 학부모들은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걸 먹었어요. 구청 담당자들도 이거 먹어보란 얘기에요.” “그래도 우린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로 죽을 만들진 않잖아….” 돌이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듯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호기심에 쳐다보며 한마디씩 거든다. “이거, 정말 ‘꿀꿀이죽’이구만.” “기가 막히네. 허. 참.” “이래서야 어디 마음 놓고 (어린이집) 보낼 수 있겠어?”


어린이집 아이들의 식중독, 구토, 장염, 피부병, 물 사마귀 등의 증세를 불러와 온 국민의 분노를 샀던 ‘꿀꿀이죽 사건’. 이 일이 알려진 지 열흘이 지나도록 감독관청인 강북구청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학부모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어린이집 꿀꿀이죽 구청장은 사과하고 보육조례 개정하라!” “강북구청은 임시어린이집 안정적 운영 보장하라!” “고려어린이집 폐쇄하고 원장을 처벌하라!” “양심선언 교사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라!” 강북구청 앞에 모인 30여명의 대책위 학부모들과 민주노동당 강북지역위원회 당원들은 피켓을 들며 항의했다. 대책위의 학부모들은 ‘진상규명·관련자처벌·구립어린이집 설치’ 등의 요구사항이 담긴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구청의 각성을 촉구했다.

대책위의 한 학부모는 “구청장은 구청 홈페이지에 달랑 사과문하나 올려놓고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며 “구청장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고, 후속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국회 여성위)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며 “결국 공공보육이 관건인데, 시장에 아이들을 맡길 것이 아니라 무상교육·보육 등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또 “현재 공공보육의 비중은 5%에 불과한데, 이를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무상보육이 될 수 있도록 학부모 여러분들이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 따르면, 고려어린이집은 ‘꿀꿀이죽’ 등 급식·간식만이 아니라 원장이 무자격자인데다 81명 정원을 초과한 145명이 다니는 등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육료 외에 각종 잡부금을 징수하는 등 영유아보육법을 비롯한 관계 법령 위반 소지도 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어린이집 원장은 양심고백 교사들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고, 사설 경호원을 동원해 어린이집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가관인 것은 지도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강북구청(구청장 김현풍)의 행태다. 이번 사건 전까지 단 한차례도 급식시설에 대한 위생점검을 실시하지 않았던 것. 또한 구청 차원의 진상조사를 통한 행정조치, 형사고발 등 적극적인 노력 없이 현재 과태료 100만원 부과와 시정명령만 내렸을 뿐이다. 사태를 무마하려는 듯한 구청의 미온적 태도에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현재 구청쪽은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사과문’을 띄웠으나 오히려 학부모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었다. 구청장이 학부모들에게 찾아와 사과하지도 않고, 면담요청도 바쁘다는 이유로 회피하며, ‘임시어린이집’을 마치 구청에서 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공통된 분노였다.

강북이 아닌 강남에서 ‘꿀꿀이죽’ 사태가 터졌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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