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이주노동자에 의한, 이주노동자를 위한’ 언론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인터넷, 방송, 라디오 등 매체형태도 다양하다. 40만명을 넘는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이 이제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당당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시민참여방송인 RTV(http://rtv.or.kr)에서는 매달 셋째주 토요일 ‘이주노동자세상’이란 코너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첫 방송을 선보인 이후 ‘이주노동자TV준비모임’(MWTV모임)이 방송제작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우리 문제를 스스로 풀 매체가 필요”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서울역 근처 시민방송 1층 시민교육실에 모인 이주노동자들과 자원봉사자들 10여명은 지난 방송에 대한 짧은 평가와 함께 21일 방송될 프로그램 내용을 점검하고 있었다.

“첫 방송이 많이 떨렸는데 촬영, 편집, 진행 등 앞으로 방송 고민을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자막처리도 괜찮겠네요.” “노동절 프로그램은 자칫 딱딱하면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니까.” “문화적인 부분은 편집에서 정리를 잘 해주면 될 거 같아요.” “이주노동자 집회에 동참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인터뷰하면 좋겠어요.”

최근 결성된 수도권 이주노조와 스톱크랙다운 밴드 인터뷰, 노동절,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등등. 각 15분 분량의 방송할 내용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 이뤄줬다.

“축제 소개 등을 통해 노동절을 더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인터뷰 대상의 다양성과 사전 섭외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주노조 결성소식은 누가 맡고 있죠?”

김혜승 시민방송 프로듀서와 ‘이주노동자세상’ 프로그램 총괄지원을 맡은 이병한 심스페이스 대표가 회의 중간 중간 의견을 말했다.

“이주노조 결성 등은 뚜라(버마)가 책임지고 정리하겠다고 했어요.” 마붑(방글라데시)이 뚜라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어린이날 기획을 맡고 있는 마붑. “어린이날 기획은 이주노동자 자녀들 가운데 취학을 못했거나 취학했어도 적응이 어려운 다양한 사례들을 넣되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통해 꿈과 희망도 보여주면 좋겠어요.” 곧 그가 소화해야 할 양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감이란 지적이 나온다. 역할을 나눠서 할 사람을 찾아서 하기를 주위 동료들이 권하지만 마붑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다.

난감한 문제는 또 있었다. “여성이주노동자가 좀더 발언할 기회를 주는 등 구조적 배분도 신경써야 할 것 같아요.” 여성 프로를 담당하는 김 프로듀서의 지적에 시디(네팔)가 말을 받았다.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여성들이 더욱 열악한 처지에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 이주노동자TV준비모임의 대표인 해미니(왼쪽)와 마붑, 크리스티안 칼은 국적은 달라도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해주고 있었다.  ⓒ 매일노동뉴스

이유는 이랬다. MWTV모임의 홍일점인 최춘화(중국)씨마저 불법체류자 신세라 곧 중국으로 가게 될 상황. MWTV모임 구성원들은 최춘화씨의 공백을 이주여성인권연대 등 여러 단체들과의 인적 네트워킹을 통해 해결할 요량이었다.

한 번의 방송이 나가기까지 어려움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인력과 재정 문제가 번번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어렵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이들이 ‘이주노동자세상’ 방송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계기를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블랑카나 아시아아시아란 프로그램은 우리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각이었죠.” 마붑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나 고용허가제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했어요.”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지난해 ‘이주노동자가 말하는 한국사회’라는 토론회를 통해 의기투합했다. 이 토론회에 참여한 이병한씨가 “퍼블릭액세스(시청자참여)란 구조가 있는데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쉽다”며 길을 터주었다. 위성방송이라 접근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방송에 필요한 장비와 운영비 등의 비용이 당장 들지 않는다는 장점은 충분했다.

“이주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일단 둥지를 틀고 이주노동자 시청자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관련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자칫 부족한 인력과 컨텐츠 중복 등의 우려도 생길 만하다. 이병한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다양한 방식의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큰 그림 속에서 배타적이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해 나가야죠.”

해미니(네팔) MWTV준비모임 대표도 방송의 목표를 새삼 일깨웠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방송에 나서서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소통을 이루자는 것 입니다.” 회당 100만원도 안되는 방송제작 지원금. 촬영편집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도, 사무실도 없는 열악한 상황. 차별을 떨쳐내기 위해 열정하나로 똘똘 뭉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일이다. “방송 마감에 맞추려면 부지런히 뛰어야죠.” 회의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은 하나둘씩 맡은 일을 찾아 회의실을 나섰다.


무지막지한 도전과 실험정신

이주노동자인터넷방송국(www.migrantsinkorea.net)은 5월18일 개국을 목표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월 목표가 조금씩 늦춰지면서 긴장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는 것. 매주 수요일 준비모임을 통해 홈페이지 구성과 세부 프로그램 점검 등을 수행하고 있다.

방송국 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문화활동가 박경주씨와 전민성 기자는 지난해 여름 의기투합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들의 관심과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지난 93년부터 독일 유학생활을 시작한 박경주씨는 재독한인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광부, 간호사 등을 만나 속사정을 알게 되고 깨우치게 된다. 유학 말미인 99년 이래 사진, 음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며 이주노동자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박경주씨는 이주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넘어 1년간의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국회로 보내자!’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 음반을 냈을 때처럼 인터넷방송국도 무지막지한 도전이기는 해요. 하지만 음반을 낼 때 민중가요 전문가들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해냈잖아요. 할 수 있어요.”

미국유학 시절 소수민족에 대한 일상적 차별을 느낀 전민성 기자도 귀국 후 다년간 <오마이뉴스>에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집중 소개했다. 전민성 기자는 박씨의 남다른 열정에 끌려 선뜻 무급 ‘노동’을 자처하고 나섰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시다로 일했던 70년대 소위 공돌이, 공순이의 모습이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에요.”

이주노동자의 ‘당당한 모습’과 ‘존엄성’을 담아낼 계획인 이주노동자인터넷방송국. 남들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할지언정, 이미 도전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구의 성서공동체FM라디오방송국(www.scnfm.or.kr)도 지역의 이주노동자, 시민사회단체 8곳이 결합해 지난 3월 방송에 들어가 지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독립미디어의 성격이 강한 이들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방송 MNTV(www.mntv.net)는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진다. 정부의 ‘외국인근로자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이 방송의 재원은 전액 복권기금이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추진하는 이 방송은 1일 개국했으며 지구촌사랑나눔(대표 김해성)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방송은 우선 한국어, 영어, 중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향후 최대 10개 국어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라디오,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들. 이들은 지역과 전국 및 세계를 향해 ‘노동자는 하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실험에 ‘볼륨을 높이는’ 연대와 소통이 절실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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