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청소’와 ‘시설관리’ 업무는 ‘진료’와 마찬가지로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수술이 끝난 뒤 피고름을 치우고 인공호흡기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어야만 환자의 생명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와 시설노동자 역시 의사만큼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청소와 시설관리 업무를 도급회사에게 맡기고 있으며,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고용불안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병원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보장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고 있는 전남대병원 파업현장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편집자 주>




“오죽허면 이십대 장정이 쓰러졌겄어. 젊은이도 못 견디는 곳이 병원이랑께”

전남대병원 미화부 하청노동자들이 도급업체 변경에 따른 고용승계 약속을 지키라며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 33일째 되던 지난 18일. 광주역에서 열린 3차 보건의료노조 총력투쟁 현장은 전날 의료가스 공급실에서 근무하는 기계부 스물아홉 청년이 쓰러져 생명이 위독하다는 비보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한손엔 빗자루를, 한손엔 피켓을 들고 광주역 광장을 지키고 있던 5, 60대 늙은 하청노동자들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묻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할 병원이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병원은 돈벌이에 눈이 멀어 비현실적인 도급비를 책정해놓고, 악질 도급업체는 이마저도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기 때문에 기계부 노동자가 생사를 오가는 상황인 것입니다” 보건의료노조 최권종 광주전남본부장은 기계부 하청노동자가 중태에 이르게 된 것은 병원과 도급업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부모상을 당해도 쉴 수 없었다”

전남대병원 하청업체 전일사 소속 직원인 한정열씨(남, 29세)는 지난 16일 밤10시부터 다음날 오전7시까지 지하3층 의료가스공급실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지하3층의 두 평 남짓한 휴게실에 ‘점심때쯤 깨워달라’는 말을 남긴 채 잠들었던 한씨를 11시께 동료들이 깨웠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황이었다. 한씨는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담당의사는 ‘생존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한씨의 갑작스런 의식불명 상태로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전남대병원 원·하청지부 간부들은 비상대기 중이었다. 한 간부는 "기계부 하청노동자들이 업무상 과로와 노조탈퇴 압박 등의 스트레스를 자주 호소해 왔다"면서 “이미 예견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씨가 근무하는 지하3층 기계실은 옆사람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굉장하다고 한다. 그곳에서 한씨는 3년째 근무해 왔다. 특히 지난해 '전일'로 도급회사가 변경된 후 자꾸 인원을 줄여나가, 47명이 4조3교대로 일하던 기계실에는 41명이 주간에는 2명이 야간에는 1명씩 근무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 지부는 “사쪽에서 올해 재계약을 앞두고 노조탈퇴를 지속적으로 강요해 왔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기계부에서는 15명의 조합원 중 절반가량이 줄줄이 노조를 탈퇴, 한씨를 포함해 8명의 조합원만 남게 됐다.

이뿐 아니라 전남대병원 하청노동자들은 부모상을 당해도 쉴 수 없는 조건에서 일해 왔다고 입을 모았다. “부모상을 당하거나 결혼을 해도 쉴 수가 없어서 사람을 사서 일당을 주고 자리를 채울 정도”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다행히도 한씨는 18일 저녁 9시 의식이 돌아왔다. “그래도 젊은 사람이 쓰러졌으니 망정이지….” 옆에서 올해 61세의 미화부 노동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읊조렸다. 그러나 한씨는 손가락을 움직일 정도일 뿐 회복했지만 21일 현재까지도 응급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사람대접 받고 싶다”

한편, 한 달이 넘도록 파업 중인 미화부 하청노동자들의 사정도 기계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남대병원 청소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지부 미화부 조합원들은 지난달 17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고용보장을 약속하며 새로 들어온 도급업체가 보름만에 고용보장 합의를 파기하고 불친절,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16명의 미화부 하청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해고된 박아무개 조합원(61세, 13년 근무)이 자비를 들여 재검을 받아보니, 나온 판정은 '사회생활에 지장없다’는 것이었다. 지부는 “이번 무더기 해고자 가운데 5명이 노조간부”라며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고라는 수단을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 미화부 하청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한달 임금은 법정최저임금 641,840원에도 못 미치는 57만원. 이들 하청노동자들은 “하청업체가 거산개발로 바뀐 지난 9월부터 설이나 추석에도 상여금 한푼 못 받았고, 공휴일에도 일을 시키면서 시간외수당은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조합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1명 이상의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 이 돈으로 생계를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뿐 아니라 감염자의 방을 청소하거나 쓰고난 주사바늘에 찔리는 일도 허다할 정도로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이들은 전한다. 한 조합원은 “쓰레기를 치우다가 쓰고 난 주사바늘에 찔렸지만 병원에서는 치료조차 거부했다”면서 “그래서 보건소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들 하청노동자들이 “사람대접 받으려고 파업한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하나된 원·하청 노동자, “희망이 보인다”

하청지부가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원청지부 류영숙 지부장은 20여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며 파업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정규직 조합원들은 ‘임단협 등 원청문제로도 빠듯한 상황에서 하청지부 파업에 원청지부장이 나설 이유가 없다’며 단식농성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전남대병원에서 만난 한 정규직조합원은 “하청노동자들의 문제는 무척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라면서도 “하지만 원청지부가 이렇게까지 나서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일 윤영규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까지 전남대병원 하청지부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단식농성에 돌입하며 노조 차원의 전면대응이 시작됐다. 병원 하청노동자들의 싸움에 노조가 이처럼 전면적으로 결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 윤 위원장은 “이번 사태가 본조차원의 조직적인 집중과 전국적 투쟁 없이는 돌파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노조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결의로 단식에 돌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노조는 전국 지역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조합원 하루교육 과정’에서 전남대병원 하청지부의 파업사태와 관련한 내용을 주요하게 다루며 정규직 조합원들의 의식변화를 꾀하고 있다. 노조는 이번 사태 해결과정을 원·하청노동자 연대의 가장 아름다운 표본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 노조가 가야 할 길은 멀어보인다. 강신원 하청지부장은 “이번 사태로 전남대병원뿐 아니라 전국의 보건의료노조 정규직 조합원들이 ‘도급노동자의 현실’을 알게 된 것만이라도 큰 성과”라며 “정규직 조합원들의 의식변화가 하루아침에 가능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 역시 “올해 병원 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 사업을 주요과제로 삼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각 지부가 하청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 위원장은 “이번 전남대병원 사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산별교섭을 중단해서라도 하청투쟁에 집중할 생각”이라며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전남대병원에서 15년 동안 청소를 해왔다는 윤순현 하청지부 조합원(57세)은 ‘꼭 보답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를 위해 같이 싸워준 ‘동지’들처럼 우리도 또다른 밑바닥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서 보답하겠다”고 말이다.

현재 노사는 수십차례 교섭 끝에 일부 조항에 합의했으나 해고자 복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일 막판 릴레이 교섭을 벌였으나 거산개발쪽에서 "15명을 고용하되 폭행사건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5명에 대한 임금은 노조에서 지급하라"고 주장해 전원복직을 요구하는 노조와 합의를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전남대 원·하청 노동자가 손 맞잡고 전면전을 벌이고 있기에 타결의 그날은 머지않아 보인다. 전남대병원의 원·하청 노동자들과 보건의료노조는 이렇게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윤영규 위원장 인터뷰
전남대병원 하청지부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열하루째 단식농성 중인 윤영규 위원장으로부터 보건의료노조의 병원하청투쟁 현황과 계획을 들어보았다.



- 교섭기간 중 단식농성까지 진행하는 이유는.
"지난 3년간 하청지부 투쟁을 지켜보며 가슴이 참 많이 저렸다. 최근 하청지부 조합원들이 ‘사람처럼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동안 기죽고 주눅들어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이제 ‘우리도 당당한 인간이고 노동자’라며 ‘비록 임금 못 받아 생계는 힘들지만 희망이 뭔지 알 것 같다’고 도리어 나에게 힘내라고 한다. 지금도 그런 조합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면서도 자랑스럽다. 현재 전남대병원 하청투쟁은 본조 차원의 조직적인 집중과 전국적 투쟁 없이는 돌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단식은 노조가 끝가지 책임지겠다는 결의다."


-  하청투쟁을 전면화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의 반응은.
"처음 류영숙 전남대병원 원청지부장이 단식을 시작할 무렵, 일부 원청조합원들이 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원청지부 현장순회 등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거의 해소됐다고 본다. 하지만 정규직조합원들은 이번 사태를 안타까워하고 또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정도이기는 하나, 아직까지 하청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  병원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은.
"전남대병원이 유일한 하청지부다. 그러나 전남대병원에서 원·하청지부가 하나가 되어 투쟁하는 모범을 만들고 있다. 올해 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 사업은 본조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간부들이 이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선뜻 조직화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부들이 결의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또한 이번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산별교섭을 중단해서라도 하청투쟁에 집중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강신원 전남대병원 하청지부장 인터뷰
지난해 당선된 이후 전남대병원 하청지부 투쟁을 이끌고 있는 강신원 지부장으로부터 전남대병원 하청노동자들의 현실과 문제 해결전망을 들어보았다. 



-  병원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 파업 중인 미화부 하청 조합원들은 대부분 10~20년을 병원에서 일해 왔다. 그래서 어떤 환자가 들어왔고 그 사람이 어떤 애환을 가지고 있는 지도 다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몰렸다. 한 젊은 기계노동자는 과로와 노조 탈퇴압박으로 쓰러져서 생사를 오가고 있다. 이것이 무슨 생명을 다루는 병원 노동자의 모습이란 말인가. 2003년 한국노총 산하에 있던 휴면노조를 부활시켜 보건의료노조로 조직변경을 한 이후에 가장 먼저 진행한 게 사쪽더러 근로기준법을 지키도록 요구한 것이다. 그 이전엔 연월차도 생리휴가도 수당도 전무했다.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기계부의 경우 맞교대로 운영되고 있었고 미화부도 12시간씩 막노동에 내몰렸다. 지난 3년간 투쟁으로 그나마 기계부를 4조3교대로 전환하고 법정최저임금을 준수하도록 했다.


-  이번 파업사태가 장기화되는 이유는.
"지난 9월 새로 들어온 미화부 도급회사 거산개발은 정말 ‘악질 중에 악질’이다. 어제 교섭자리에서 한 말이 오늘 교섭자리에서 달라진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도급회사 문제라며 수수방관하는 병원이다. 사실 병원 하청업무는 대부분 원청의 지시와 관리 하에 이뤄지고 있다. 1분 1초가 다급한 수술실에 어떻게 하청업체가 함부로 출입할 수 있겠냐. 우리가 사용하는 물품들도 모두 전남대 소유다. 병원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한다.


-  원·하청지부간 공조는 잘 되고 있는가.
"간부들간의 유대감은 높다. 사무실도 같이 쓰고 있고 업무협조도 비교적 잘 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전남대병원지부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보건의료노조 정규직 조합원들이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지금 병원노동자들은 전남대병원 하청지부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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