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 9시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 앞. 전국공무원노조 경기지역본부 소속 조합원 20여명이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1월15일 공무원 자격을 박탈당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지 벌써 다섯달.

그리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스티로폼 한 장만 깔고 침낭으로 몸의 체온을 유지하며 지낸 지 12일째.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지만, 여전히 공무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노숙투쟁은 징계가 ‘부당’하고, 소청심사를 ‘공정’하게 해달라는 시위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파업 이후 치명타를 입은 공무원노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경기지부가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더욱 크다고 한다.

“지난해 공무원노조의 파업 뒤 대규모 징계가 시작되자 노조원들이 상당히 위축돼 있습니다. 돌파구를 찾아야지요. 그런데 각 지부에서는 이에 걸맞는 투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투쟁다운 투쟁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전원 복직을 이야기한다는 말입니까.”

조창현(47) 경기지부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회복투) 위원장은 “소청만을 위한 투쟁은 아니”라며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늦은 시각 도청을 찾는 시민들을 상대로 연신 공무원노조 투쟁의 정당성을 홍보한다.

노숙투쟁장 주변에는 ‘비리단체장 규탄’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랭카드도 여기저기 걸려 있다. 노숙투쟁과 함께 시민들을 상대로 전개 중인 ‘10만인 탄원 서명’은 이런 맥락에서 진행 중이다.


시민들 격려 손길에 어깨 더 무거워

“화성시장, 오산시장, 안산시장, 광주시장 등 경기도내 자치단체장들은 줄줄이 비리에 연루돼 있습니다. 그러나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비리단체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에 파면 및 해임 등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억울함이 크다고 했다. 최원교 화성시지부장은 “총파업 관련 징계자 가운데는 상당수가 병원치료를 위해 병가 결재를 받거나 가정 문제 등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2~3일 결근했으나 손학규 도지사는 총파업에 가담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비상식적인 무더기 중징계를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노숙투쟁을 전개 중인 참석자들은 “우리의 투쟁은 정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시민들이 공무원노조에게 기대 이상의 격려를 보내줄 때는 두려움마저 생긴다고 했다.

“파업 뒤 국민들이 공무원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시민선전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걱정을 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민들을 만나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시민들은 공무원노조를 격려한다는 것.

“공무원노조만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한 시민의 말은 여전히 이들의 귓가에 맴돌고 있다. “국민이 공무원노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네요.” 결국 이들은 답을 정했다.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는 것은 국민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벌써 2만명의 지역시민들이 지지서명에 동참했다.

서울에서 수원 권선구청까지 매일 출퇴근했던 조 위원장은 징계를 받은 뒤 수원으로 아예 집을 옮겼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이해를 못해줘서 많이 싸웠는데 지금은 격려해준다”는 그는 아빠가 보고 싶어 이날 노숙투쟁 현장까지 찾아온 딸을 힘껏 껴안았다.

징계 뒤 수심만이 가득했던 회복투 공무원들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노숙투쟁을 전개하면서 수많은 노동계 동료들이 이 곳을 하나 둘 찾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날도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현장을 방문해 지지하고 격려했다. 정용천 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경기지부의 모범적 투쟁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날이 갈수록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며 희망의 싹을 키워 나가고 있지만, 5개월 전은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이었다. 언론의 공세. 이로 인한 여론의 악화. 여기서 비롯된 가족들의 냉대. 지난해 9월 공무원노조 광명시 지부장에 당선돼 10월21일 공식적인 노조를 출범시킨 강성철 지부장은 이런 경우다. 그는 총파업에 돌입하자마자 해임됐고 당시 가족과 친지, 이웃들은 그런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며 당시를 술회했다.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배제징계가 할퀴고 간 상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추위에서 따뜻함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4월이지만, 여전히 날씨도 그렇고 몸과 마음은 더욱 차갑다. 노숙투쟁 4일째였을까.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시쳇말로 당시는 죽을 맛이었다고 했다.


공무원노조, 이제는 '외톨이' 아니다

비일비재한 도청과의 갈등도 상처를 아물지 않게 하고 있다. 원래는 도청 앞 공터에 천막을 치려 했으나 경찰이 저지해 노숙농성을 택했는데 이제는 매일 같이 찾아와 “꼭 이렇게 해야 하느냐”며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는 것도 힘이 든다. 지난 8일에는 팔달구청 건축과, 건설과 직원들과 노점단속반을 포함한 도청 청원경찰까지 총동원돼 플랜카드와 농성장 철거를 시도했으나 이를 완강히 저지해 이들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59명의 회복투 소속 공무원들은 현재 3개조로 나뉘어 노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의식주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등 노숙투쟁을 전개하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 11일 안산을 시작으로 경기지역도 소청심사가 본격화돼 심사결과가 완료될 때까지는 최소한 1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돼 이들의 노숙투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잡음도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일부 소청심사위원들은 “노동3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노조간부를 그만둘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등 소청심사인지, 징계위원회인지 알 수 없는 듯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강성철 지부장은 “소청심사위원회는 인사위원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잘못된 징계로부터 공무원을 구제하는 기구”라고 다그쳤다.

공무원노조 경기본부 김원근 본부장은 “손학규 도지사는 부당한 중징계를 철회하고, 소청심사위원들도 윗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있게 소청을 하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경기도청은 지난해 파업에 참가한 경기본부 조합원 96명에 대한 징계를 단행했으며 이 가운데 59명의 조합원이 파면, 해임 등 공직에서 배제됐고 조합원 38명은 정직, 감봉 등의 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현재 노숙투쟁, 1인 시위, 시민선전전 등을 통해 원직복직을 위해 주야로 애쓰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수가 복귀할지 아무도 모른다.

경기도청은 지난 9일부터 17일까지 ‘행복한 우리가족 벚꽃과 함께’라는 주제로 벚꽃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도청 앞에서 가족과 떨어진 채 노숙투쟁을 전개 중인 도내 소속 공무원노조 징계자들은 벚꽃 축제를 어떤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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