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운동가들에게 최대 조직과제를 꼽으라면 대부분 ‘산별노조 건설’을 대곤 한다. 금속연맹 활동가들에게는 이 조직과제가 더 절실한 상황이다. 전재환 금속연맹 위원장도 최근 취임 인사말에서 산별노조 완성과 관련해 “노동조합 조직운동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안주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이라고 산별노조 완성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금속노조의 출범을 결의한지 4년이 지난 금속연맹은 산별노조로 전환한 4만명 외에 대공장노조를 비롯해 12만명의 산별가입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금속산별’의 틀을 갖추는게 우선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번 금속연맹의 4기 임원선거는 주목할만 하다. 금속연맹 내 주요 정파그룹인 전국금속모임, 노동자의 힘, 전국회의가 ‘산별노조 완성’을 목표로 ‘통합후보’를 내 당선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도 남아있다. 후보통합 논의에서 산별이행 경로에 대한 각 조직의 의견차를 확인한데다, 지난 두 차례 선거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정파들이 연합한 것에 대해 현장의 시선이 곱지 않다. 전재환 집행부는 선거 과정에서 산별노조 건설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구체적 이행경로에 대해선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는 세 조직이 연합을 했음에도 과반이 약간 넘는 지지율(56.1%)로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관련해 4기 집행부가 ‘산별완성’을 위해 앞으로 어떤 길을 밟아나갈지 주목되고 있는 시점이다.


'산별완성' 목표 4기 집행부 출범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002년 실시한 제1차 사업체 실태조사 분석결과에 따르면 노조대표자들은 산별노조 건설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사용자단체의 저항 및 반대’(32.8%)보다 ‘기업별 노조의 무관심 및 반대’(36.5%)를 더 많이 꼽았다.

노조 대표자들도 스스로 ‘기업별 노조운동’의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경우에도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한 사례가 드문 것을 보면 기업별노조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 노조간부들의 고민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금속연맹 노조간부들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산별노조를 완성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을 쏟아냈지만 서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통합후보’도 마찬가지였다.

통합후보로 당선된 전재환 위원장은 “금속연맹에 4기 임원이 마지막”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임기 내 산별노조를 완성하고 연맹을 해산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밝혔다.

하지만 현 집행부 내에는 기존방침인 ‘금속노조 가입을 통한 산별완성’과 달리 ‘산별전환 후 대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같은 차이는 금속에서 산별노조를 완성하는 문제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돼버렸기 때문에 발생한다. 금속연맹에서 지난 4년간 금속노조로 조직전환한 인원은 4만명에 그치며, 현대차 등 완성차 4사, 조선사 등 11개 대공장노조의 11만명을 포함해 12만명 정도가 연맹에 남아있다. 이미 대공장노조를 금속노조에 가입하도록 설득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차이가 있음에도 현 집행부는 “이번 선거를 통해 산별노조가 최대 조직과제라는 점을 공유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주장한다. 2007년부터 도입되는 사업(장)별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구조조정 등에 맞서기 위해 산별노조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기 때문에 통합지도부 구성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이견들

그러나 금속연맹의 산별전환 사업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별이행 경로’가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이행경로 논의는 중요하다. 노조간부들이 산별노조 전환의 절박성을 공유한다고 해도 ‘경로’에 대해 이견을 갖고 있는 한 산별전환에 적극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속연맹이 그동안 산별이행 경로에 대해 공식적으로 토론을 벌이지 않았다는 점도 향후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여부에 관심을 갖게 한다. 더구나 문제는 정파별 논의 속에서 의견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산별노조를 도깨비방망이로 알고 있다’는 식으로까지 비판받는 전국금속모임은 산별노조에 가장 적극적이며 ‘금속노조 가입을 통한 산별완성’을 주장하고 있다. 전국회의도 경로에선 전국금속모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독자출마했던 1차 임원선거에서 ‘투쟁을 통한 산별완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은 선거 과정에서 ‘대통합식 산별완성’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동자의 힘’ 소속의 양동규 연맹 전 경기본부장은 “대공장노조에게 금속노조 전환만 촉구하는 것은 현장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를 완성된 산별노조로 보지 말고 다양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동규 전 본부장은 산별전환 방향에 대해 “금속노조의 정통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고 말해 입장차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반면 금속연맹 4기 임원선거에 출마했던 박병규 후보진영은 “산별노조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공장노조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산별노조만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새흐름’으로 불린 박병규 후보진영은 앞서 ‘대산별노조’보다 ‘업종산별 등 소산별노조’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기업별노조가 당면한 문제들로 인해 ‘소산별노조’ 주장마저도 접은 상태다. 이들은 업종별 차이에 따라 업종산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기보다 산별전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소산별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속연맹 내에서 산별이행 경로와 관련한 다양한 주장 중 ‘금속노조냐, 아니냐’의 문제만 남아 있는 셈이다.

금속연맹이 ‘대산별노조’로 방향을 잡고 있는 이유는 현재 전 사업에서 몰아닥치고 있는 구조조정 등을 볼 때 합리적 교섭구조를 통해 산업정책에 개입하는 것에 앞서 전 조직의 단결된 힘이 더욱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한 간부는 “우리나라 노조운동이 ‘변혁’을 지향하고 있다 보니, 정파별로 효과적인 변혁운동 방식에 대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노동운동 내에서 중앙파를 제외한 좌파들은 산별노조가 투쟁보다 교섭을 중심에 두게 함으로써 간부와 현장조합원의 거리를 멀게 해 관료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곤 한다.

“구체적 방안 ‘산별완성위’에서 결정할 것”

금속연맹은 오는 20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4기 집행부의 공약사항인 ‘산별완성위원회’를 구성, 산별완성의 방법과 시기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참이다. 전재환 위원장은 당선 인터뷰에서 “중앙에서부터 의견을 좁혀나간 다음 단일한 기획안이 마련되면 단위노조 간부, 활동가들과 토론을 통해 산별노조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산별완성위원회가 이같은 일정의 첫 출발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금속연맹 활동가들이 서로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별이행 경로에 대한 생각들이 왜 차이가 있는지, 각 방안의 장단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잘 말하지 않는다.

민경민 금속연맹 교선실장은 “그동안 산별완성이 잘 안 된 이유도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실천을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민 실장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현실가능한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자기가 말하는 것만 옳다고 주장해선 의견을 좁힐 수 없다”고 말했다.

민 실장은 현대차노조가 지난 2003년 실시한 조직전환투표에서 2/3 찬성을 얻진 못했으나 60% 이상의 찬성이 나왔고 기아차노조는 조직전환 투표를 한번도 진행하지 않아 아직은 산별이행 경로에 대한 논란보다 “활동가들의 의지와 결단”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산별이행 경로는 직접 조직전환 투표를 해야 하는 조합원들에겐 걸림돌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로 가는 길이 대공장노조에서 확보한 교섭력과 대응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산별차원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조합원들에게 심어주는 일은 노조간부나 활동가들의 몫이어서 이들의 입장정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와 관련 정일부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산별전환이 확실하다면 금속노조로 가입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면서 “금속노조 정통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보며 현재 이견은 미묘한 차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금속노조는 대공장노조들이 산별전환을 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규약 정비나 교섭구조 논의 등 모든 것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해 금속연맹이 앞으로 어떤 논의결과를 내올지 더욱 주목되고 있다.

한편 대공장노조가 금속노조에 들어올 경우 조직운영의 방식이나 교섭구조는 사전에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금속노조는 현재 지역별로 지부가 구성돼 있으나 출범 초기 대공장노조에 한해 기업지부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조직전환을 먼저 마무리한 보건의료노조도 98년 출범 당시 이행경로와 관련 ‘단계적 건설론’과 ‘동시 건설론’을 갖고 논란을 벌였으나 대병원노조가 산별전환에 적극 나서면서 논란은 쉽사리 정리됐으며 출범 초기 75%가 산별전환에 성공한 바 있다. 산별전환에서 대공장노조의 역할이 어느정도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입장차를 떠나 같이 힘을 모으자는 주체들의 결의가 가장 중요했다”고 회상했다.

금속연맹은 다시 한번 ‘산별노조’ 완성을 꿈꾸고 있다. 특히 이번 통합지도부의 지도력에 기대를 품고 있는 모습이다. 전재환 위원장도 “각 조직이 연합한 집행부이어서 중앙에서 합의된다면 현장 활동가들이 적극 나서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반대로 ‘산별노조 완성’을 위해 ‘사회적 교섭’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연합을 한 만큼, 산별노조로 가는 방향이 흔들린다면 4기 집행부의 ‘지도력’뿐만 아니라 연맹의 전망까지 흔들릴 수도 있다.

4기 집행부는 지금 보이는 ‘산별이행 경로’에 대한 작지만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좁혀낼 것인가. ‘불법파견’, ‘바이백’, ‘구조조정’ 등등…. 금속연맹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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