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피고인만 다른, 같은 사안을 놓고 2개월여 간격으로 상반된 판결을 내려 하급심 재판의 기준이 되는 최고 법원 판결의 통일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대법원 재판결과는 당해 사건에 관한 하급심을 기속하는 점을 고려할 때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은 일선 법원의 심리과정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적지않은파장이 예상된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18조는 '상급법원의 재판에 있어서의 판단은 당해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쟁점 = 이번에 논란이 된 판결 대상 사건은 98년 5월6일부터 12일까지 만도기계 노조가 조합원 투표절차 없이 벌인 파업이 위법성 조각 사유를 갖고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 형사2부(주심 조무제. 趙武濟 대법관)는 지난 3월10일 판결을통해 절차상의 하자를 불법이라고 본 반면 5월26일 판결(주심 이용훈.李容勳 대법관)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이는 '노조의 쟁의행위는 직접. 비밀.무기명 투표에 의한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41조1항에대한 미묘한 시각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당초 대전지법 원심 판결은 노조 내부의 민주적 운영을 확보하기 위한 이 조항을 따를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이 있거나 조합원의 민주적 의사 결정이 실질적으로 확보됐다면 투표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을 문제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5월26일자 대법원 판결은 이 점을 중시, ▲찬반투표가 없었지만 조합원 총회로파업이 결의됐고 ▲파업 참여도를 보면 조합원 대다수가 파업에 찬성한 것으로 보이며 ▲파업독려 과정에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원심판결을 인정했다.

즉, 문제가 된 시기의 노조 파업은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은 절차상의 결함은 있지만 전후 사정을 보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된다는것이다. 하지만 3월10일자 대법원 판결은 찬반투표 규정은 노조의 민주적 운영을 도모하고 조합의사 결정에 보다 신중을 기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라고 전제, 크게 4가지 측면에서 견해를 달리했다. 이 판결은 우선 파업전인 98년 4월30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5월13일 실시한다는 집회공고를 한 점을 지적, 5월6일부터 시작된 파업과 관련해 찬반투표를 하지 못한 객관적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노조측이 파업불참자 색출을 이유로 규찰대를 조직하고 선봉대가 사업장 출입을 통제하는 등 파업참가를 강제한 점을 인정하고 단순히 파업참여 인원만으로 조합원 의사를 추정함으로써 과반수 찬성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이밖에 파업에 돌입하기 직전인 5월6일 개최한 조합원 총회는 파업행위의 일환일 뿐이고 사측의 파업중단 촉구에도 불구, 전면파업을 강행한 만큼 투표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위법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문제점 = 일선 법관들은 상반된 판결내용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최고 법원의같은 재판부가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려 하급심 재판에 혼선을 초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만도기계 노조 조직국장 황모씨는아산지부장 김모씨와는 달리 대전지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아도 사실관계가 달라지지않는 한 상급심 판단이 하급심을 기속하므로 유죄선고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파업과정에서 전체 조직을 총괄하는 조직국장과지부 조직을 맡은 지부장의 역할 및 파업과정에서의 물리력 동원 정도 등 사실관계를 미세하게나마 다르게 봤기 때문에 다른 판결이 나온 것 같다"고 해명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법원조직법 조항을 들어상반된 판결이 나오게 된 합의과정에 대해 함구로 일관했다. 더욱이 두 판결문에는 재판에 관여한 이용우, 김형선, 이용훈, 조무제 대법관의의견이 모두 일치된 것으로 나타나 합의과정에 의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법원 일각에서는 대법원 한 재판부가 한달에 2차례씩의 재판을 열어 한차례에 200건 이상의 사건을 심리하는 상황에서 판결의 통일성을 완벽히 기하기는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일선 법원의 한 판사는 "사건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합의과정은 다소 형식적으로이뤄질 소지가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소송폭주에 따른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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