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근무>는 오로지 ‘배우 김선아’에 대한 기대만으로 봐야 한다. 이 말은 곧 다른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다 해도 김선아로 인하여 꽤 흡족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행을 위한 요소들로 완벽하게 ‘무장’ 돼 있다. 영화에서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소재는 역시 ‘조폭과 교복’. <친구> <여고괴담> <말죽거리 잔혹사> <어린신부> <동갑내기 과외하기> <두사부일체> 등등 수없이 많은 영화가 그랬다. 여기에다 경찰까지 동원되면 ‘중무장’에 가깝다. <와일드카드>, <공공의 적>, <살인의 추억> 등등….


학교, 조폭, 형사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잠복근무>는 헐리우드식 이야기 진행 방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관객들을 웃기고 있다. 그러나 가장 안정적인 구조란 가장 식상하기 마련. 조폭들이 아무한테나 칼을 ‘담그고’, 학교의 ‘일진’들이 주인공을 괴롭히고,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형사가 온몸으로 범인과 대치하는 장면이 새로울 리 있겠는가.

이를 만회해 보고자 여러가지 복선을 깐다. 예를 들면, 주인공을 도와주던 착한 사람 한 명쯤 나쁜 놈들에 의해 죽게 해서 눈물 좀 짜게 만들고, 중간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질 만한 멋진 인물 한 명쯤 등장시켜 주고…그 사랑에 빠진 인물이 적의 스파이라면 더욱 금상첨화다. 용써 봤자 식상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잠복근무>에서는 그 식상한 소재의 한계를 김선아라는 물오른 배우의 연기가 ‘상당한 수준’까지 커버해 준다. 이번 영화에서 김선아는 마치 <재밌는 영화>의 김정은을 보는 듯 하며, 그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교복 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기 하나 없는 모습으로 능청스럽게 열혈 강력반 형사를 연기하는 김선아는, 영화 속 주인공 천재인이 몸을 던져 증인의 딸을 보호하듯 온몸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사수’한다. 그녀만이 지을 수 있는 천 가지 표정을 유감없이 지어보이며, 전작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와이어 액션까지 선보이면서 말이다.


'공식적인 황당함' 견딜 수 있다면

주인공 천재인(김선아 분)은 강력반 형사. 어느 날 그녀에게 폭력조직 두상파 부두목인 차영재의 소재를 찾기 위해 그의 딸 차승희(남상아)에게 접근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것도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잠복근무를 하라는 것.

조용히 임무를 마치고 싶었던 천재인. 그러나 학교 ‘짱’들은 자꾸만 그녀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학교 생활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게다가 또다른 전학생 강노영(공유)은 재인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고삐리’만 아니면 어떻게 해보고 싶다. 노력 끝에 승희와 친해져 차승재의 소재를 알아내기는 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내부의 적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더욱 꼬인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조폭도 일망타진하고 내부 첩자와의 대결에서도 이긴다는 내용이다.

이상의 줄거리에서 대충 짐작했겠지만, 이야기 구조에서 완성도를 기대하지는 말자. 그래도 노력의 흔적은 보인다. 극 중 가장 착하고 어리버리한 강 형사라는 캐릭터를 의외의 복선으로 장치해 둔 것이나, 노영의 신변에 대한 일들을 일일이 구술하지 않는 깔끔한 처리가 그것이다. 노주현, 하정우, 김상호, 박상면, 홍수아 등 조연급의 연기도 볼 만하다.

그렇다고 그 많은 단점을 연기자들이 다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헐리우드식 해피앤딩 구조에 너무 충실히 따르다 보니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김선아가 내부의 숙적과 격렬한 싸움을 끝내고 뒤늦게 도착한 수사대와 앰블란스차로 서서히 걸어갈 때, 시간도 기가 막히게 맞춰서 경찰이 말한다.
 

“천 반장(노주현 분)님 의식이 돌아 오셨답니다.”
 
해피앤딩을 추구하는 이 영화에서는 어떤 슬픔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죽은 줄 알았던 강력반 반장도 기어이 살려 내고야 만다.

학교에서 벌어진 ‘잠복근무’인 만큼 학교 생활을 좀더 풍성하고 아기자기하게 이끌어 갔다면 훨씬 이야기가 풍성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든다. 식상한 ‘일진회’의 딴지보다는 주인공이 10년 만에 ‘고삐리’로 돌아 간 만큼, 시간의 간극으로부터 벌어지는 여러 가지 소재를 배치했다면 더욱 많은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소재가 빈약해서인지 후반에 갈수록 지나치게 뻔하고도 진지한 수사물로 흘러가 버린 것도 아쉽다.

이런 ‘공식적인’ 황당함도 견딜만 하다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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