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전에 손목에 물 혹이 생겨서 삼성의료원까지 갔던 기억이….”

“피로회복제 필히 챙겨 드세요. 몸 상하기 딱 좋은 직업입니다. 박카스의 회복력이 약해서 아무래도 박카스 1.5리터 페트(PET)병 정도는 마셔야 할 듯.”

“50분 일하고 10분 쉬면 그 동안 ‘영자 XXX아 자냐? 운영 이따위로 할거냐~’는 문의(?)가 들어오죠. 에구.”

“게임도 하면서 돈도 번다.” 젊은이들 사이에 각광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인 게임마스터(게임운영자). ‘게임운영의 꽃’이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게임마스터(Game Master, 이하 GM)들은 밤샘을 밥 먹듯이 하는 근무환경과 100여만원 안팎의 박봉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등 국내 게임산업이 지난해 2조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 대비 38.4%의 성장을 보인 것과는 대조되는 현실이다.

게임을 하면서 전체 게임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GM은 게임업체와 게이머들 간의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즉, 게이머들과 실시간 채팅을 통해 회사측 전달사항이나 게이머들의 요구사항을 전하고, 게임 내에서 게이머들을 중재하거나 시스템상의 버그를 찾는 일 등을 하는 것이다.

보통 온라인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GM의 수요가 발생한다. 때문에 GM 수는 업체별로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수백여명에 이르는 등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수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이들 GM 가운데 정규직과 비정규직(계약직, 아르바이트) 비율은 4대 6 정도가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게임업계가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핵심인력 1~2명만 있어도 운영이 어렵지 않을 뿐더러,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잉여인력이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GM들은 ‘싫으면 관두라’는 식의 대접을 받기가 일쑤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다.

▲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오래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게임마스터 K씨의 말은 ‘게임운영의 꽃’이라는 찬사가 공염불에 불과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매일노동뉴스

“게임운영의 ‘꽃’이라고요? 어림없는 소리”

“유저(사용자)들은 게임회사 다닌다고 하면 으레 ‘GM이세요’라고 묻죠. 유저들은 GM밖에 몰라요.” S게임업체 한 GM의 말처럼, 게이머들은 강제퇴장, 이용정지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GM을 동경의 대상으로 여기며 ‘신’으로까지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GM은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과 밤샘 근무환경에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게이머들의 불평·불만과 욕설, 험담 등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하루에 15~18시간은 회사에서 생활하는데, 오늘도 야근이라…. 휴~우.” “요즘 무릎이 시리고 허리에 통증이 심한데, 이거 원.” “우리 회사에서 ‘36시간 잠 안자고 근무하기’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요.” “회사 화장실에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행복의 기준을 낮추어 보는 것도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런 문구가 붙어 있지요.” “제 이름이 들어간 게임을 만드는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비정규직이라 워낙 박봉이에요. 참 힘드네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H게임업체에서 GM으로 일하고 있는 K아무개(25)씨. 평소 게임을 너무나 즐겼던 그는 다니던 홈쇼핑 업체를 그만두고 이직한 경우다. 여러 현역 GM이 외국계 은행, 보험회사 등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을 접고 GM을 시작하는 사례와 비슷하다.

이제 GM 생활 2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K씨는 게임업계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그늘진 모습을 주저없이 털어놓았다. “본인이 미치도록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몰라도 이 직업에 장점은 없어요.” K씨의 ‘단호한 정리’에 기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K씨의 근무환경은 2교대. “밤샘을 많이 하다 보니까 일단 몸이 힘들고… 취미생활이나 친구들도 만날 수 없어 ‘폐인’되기 십상이죠. 한달 꼬박 밤샌 적도 있어요.” 인력이 많은 회사는 3교대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게임업체가 맞교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월급은 80~100여만원 안팎. 퇴직금, 휴일·야근수당 등이 붙을 리도 만무하다. 이마저도 1년짜리 계약직. 퇴직금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K씨는 구체적인 급여, 수당 등 임금 조건을 묻자 멋쩍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나마 ‘인센티브’라도 주어지는 경우는 동시접속자수와 매출 신장이 이뤄질 때뿐이다. 하지만 게임업체, 게임의 난립 등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센티브를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정규직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게임 관련 사이트나 게시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고작 2일 교육받는데 수십만원이니, 내가 ‘빈대인생’을 살지 않으려면 참을 수밖에. GM의 박한 임금에 비애를 느낀다.” “많은 GM 분들이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걸 봤는데요.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비정규직이란 게 신경이 쓰이네요.”

이에 대한 게시판의 답 글도 자조적이다. “인재파견업체를 통해 입사하는 분들은 GM이 아닙니다. 교대근무로 게임 내 상담업무를 하는 모 게임업체 비정규직 가운데 정규직을 희망하는 분들은 아마도 100명이 넘을 듯.”

▲ 게이머들 사이에서 게임마스터는 ‘신’으로 불리지만 대부분의 게임마스터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한 게임업체 사무실 전경. ⓒ 매일노동뉴스

“몸과 마음은 파김치, 남는 시간 오로지 잠…”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다 보니 K씨는 그 좋아하던 게임도 요즘은 별로 하지 않는다. 남는 시간은 오직 잠만 자고픈 욕구뿐이다. 동료들 중에는 병원에 매일같이 들락거리거나, 피로 누적 때문인지 목에 혹이 생겨 수술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병원비는 본인 부담이다. “아프다고 얘기하면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겠죠. 그래서 다들 알아서 처리해요.”

초췌한 모습의 K씨는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또 고개를 푹 숙인 채 게이머들과의 ‘채팅’ 등 업무에 빠져 들었다.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오래할 생각 전혀 없어요.”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란 심정은 비단 K씨만이 아니다. GM들의 인터넷 카페는 피곤을 호소하고 ‘직업병’에 대한 애환을 털어놓는 글로 넘쳐난다.

“충분히 잠을 잔 거 같은데도 피곤하고… 다른 분들은 밤낮이 바뀌는 나날 속에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주침, 야활. 올빼미형 인간이 되면 됩니다. 낮에 활동하면 바로 부작용 옵니다.” “요즘 손목이 너무 아프고, 눈이 너무 뻑뻑합니다. 아침에 학원가면 아파서 눈도 못 떠요.” “어깨가 많이 뭉쳐 있죠. 딱딱해서 풀어지지도 않고요.” 

N사의 GM 5년차 L씨는 게임업계 전체의 문제를 지적했다. “큰 회사일수록 계약직 비율이 높죠. 근로조건이나 처우도 형편없고요. 그런데 정규직도 마찬가지예요. 업무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고, 월급도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죠.”

열악한 근무환경과 박봉. 고객들과 첫 대면을 하는 회사의 얼굴인 GM들의 이직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연봉 수준이 높다는 ‘설’은 일부 회사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될 뿐,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개발자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하는 GM들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매년 두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며 시쳇말로 ‘잘 나가고 있는’ 게임산업. 그 이면에는 100여만원 안팎의 저임금과 밤샘 근무를 통해 게임업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수천명의 GM들이 있다.

“온라인게임의 인기는 게임마스터에 달려 있다.” “서비스 운영의 핵심은 우수한 GM에 달려있다.” 화려한 수사가 공허한 말장난이 되지 않으려면 인력을 ‘소모품’ 취급하는 업계의 관행이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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