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2년이나 빛을 보고 있지 못하다가 이제라도 영화가 관객분들을 찾아가게 됐다는 것이 바로 그 ‘가능한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2일 있었던 영화 <가능한 변화들> 기자시사회장에서 주연배우인 정찬과 김유석은 이구동성으로 영화 개봉 자체가 기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병국 감독의 이 작품은 지난해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첫 선을 보인 뒤 모스크바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 비엔나영화제 등에 차례로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 배급망을 찾지 못해 2년 동안이나 해외로만 떠돌고 있던 영화였다. 그러다가 이 영화의 작품성을 인정한 영화진흥위원회가 ‘2004년 예술영화 마케팅 지원 작품’으로 선정, 1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어렵게 빛을 보게 되었다.

상업적 성공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고집스럽게 작가적 표현에 충실한 또 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가능한 변화들>이 보여주고 있는, 지리멸렬하고 구질구질한 일상으로부터의 ‘몽환적 일탈’처럼 말이다.


현실과 상상, ‘찌질한’ 사내들의 꿈

영화는 푸른 하늘에 끊임없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면서 모양이 변해가는 하얀 구름 속에서 시작된다. 그 빠르게 변화하는 구름은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등장하는 두 남자 문호(정찬 분)와 종규(김유석 분)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멀리 떨어진 땅에서 보면 그냥 서서히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구름의 모습처럼,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속물스러운 일탈을 꿈꾸는 ‘찌질한’ 사내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30대 중반의 보통 남자들인 문호와 종규는 시퍼런 바다가 보이는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 대마초를 나누어 핀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의 일상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장면으로 변한다.

전업 작가를 선언하며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문호와 한 연구소의 불성실한 연구원인 종규는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였던 것 같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피카소 그림을 보러 가다 한 라면집에 들른다. 거기서 종규는 한 젊은 여자에게 수작을 건다. ‘전시회 관람’을 위해 만난 두 친구는 그 이유가 무색하게 그 젊은 여자와 함께 섹스를 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 두 사람 각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어쩌면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문호에게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순종적인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다. 그러나 전업작가를 자처한 그가 쓰는 글은 고작해야 아내 몰래 채팅을 하고 있는 윤정(윤지혜 분)에게 보내는 시덥지 않은 편지글이다. 어느 날 만나려고 했던 문인과의 약속이 깨지자, 윤정의 전화를 받은 문호는 윤정을 처음 실제로 만나 격렬한 섹스를 한다.

종규는 연구실의 김 비서(옥지영 분)와 애인 사이지만 비행기에서, 음식점에서, 버스에서 시시때때로 여자들에게 찝적거린다. 그렇지만, 갑자기 마비증세가 온 후 한 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 구애를 포기한 대학 시절 첫사랑 수현(신소희 분)에게만큼은 지고지순한 순정파다. 애인의 낙태 수술비를 문호에게 꿀 정도로 궁색하지만, 이미 검사의 아내가 돼 있는 수현을 10년 만에 만나자 그녀를 호텔 스위트룸으로 데리고 갈 정도로 말이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가 실제인지 상상인지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어떻게 보면 위선적이고 어떻게 보면 지리멸렬할 수 있는 이들의 삶을 통해 진실과 농담 사이를 저울질하고 있다. 각자의 이야기가 서술된 후에 다시 돌아온 제주도 장면에서 그들은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면서 처음 시작할 때 피웠던 대마초의 몽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화면의 빛깔도 달라진다. 상사에게 쪼이고 애인인 김 비서에게 투정을 부리는 종규, 이를 닦아 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귀찮아하면서 화를 내는 문호, 강남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산다고 남자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덕분에 아파트 입구에서 남자 친구의 차를 기다려야 하는 윤정 등. 그들의 너저분한 삶을 묘사하는 일상의 장면에서는 차가운 블루톤의 화면으로 일관된다. 그러다가 두 주인공들이 일종의 불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변화’를 꿈꾸는 장면에서는 비현실적인 붉은톤으로 바뀐다.

이러한 주인공들의 꿈인지 실제인지 모를 변화들을 지켜보면서 30대 중반에 서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렇게 묻게 될 것 같다. 우리는 도덕과 부도덕, 삶과 죽음, 종교와 통속 등 그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얼마 만큼의 변화를 꿈꾸고 있을까? 가족과 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자신의 가정과 직장의 울타리 안에서는 이중적으로 행동하는 솔직하지 못한 보통 남성들의 모습이 바로 문호와 종규가 아닐까?

냉정하게 말해서 이 영화는 독창성 있는 예술영화로 후한 점수를 주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홍상수’라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적당히 먹물 든 주인공들이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홍상수표’ 리얼리티와 유머는 이 영화에서 복제품처럼 재연되고 있다. 적나라하지만 무감각하게 표현되는 섹스씬, 건조하지만 가장 현실감 있는 대사, 섬찟할 만큼 사실적인 술자리 장면, 마치 한 사람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고정하고 찍는 듯한 촬영 기법….

따라서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인간 본성의 불투명함을 강조하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사조를 한국적으로 재창조한 홍상수풍의 영화를 편애하는 관객이라면 매우 즐겁게 볼 영화라는 말이 된다. 물론 그렇지 않다면 관람하는 데 적지 않은 인내력을 요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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