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것 들은 집 한 채도 없거늘. 열 받네. xxx놈.” “낯 두꺼운 얼굴 보고 싶지도 않다.” “부동산투기꾼 경제수장은 이제 그만 자진사퇴하라!” “청기와 집에서 개혁하겠다고? 그만둬라!” “부정부패하면 패가망신시킨다더니,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어디로 갔나.”

이미 한바탕 ‘투기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이헌재 부총리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청와대의 ‘감싸기’에 각계의 비난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수십 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이곳 서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 개발보상과 각종 편법을 동원, 작정하고 덤빈 투기꾼들은 이미 한 몫 챙기고 떠난 자리. 정적이 감도는 판교 시내는 을씨년스러웠다. ⓒ 매일노동뉴스

“어처구니가 없다” “웃기는 일”


“생가(사는 집) 철거 들어오면 목숨을 걸고, 할복자살할 사람까지 나올 거예요. 분명히 알아야 돼요.”

원주민 상당수가 생계와 주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거리로 나앉을 신세인 판교 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심정으로 비장한 각오의 말을 남기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고작 이주비 730여만원(4인 가족 기준) 정도. “그 돈으로 어디 가서 방한 칸이라도 얻겠어요. 어림도 없지.” 3일 오후 ‘판교택지개발주민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에 모인 주민들은 ‘철거민도 국민이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다시 내거는 등 3월 공가(빈 집) 철거에 맞선 방어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 주민에게 이헌재 부총리와 고위공직자들의 땅투기(의혹)는 억장이 무너질 소리였고, 대다수 주민들은 “어처구니가 없다” “웃기는 일”이라는 싸늘한 반응이었다.

대책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이춘재 위원장은 3일 오전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이헌재 부총리 퇴진 및 토지투기 근절을 촉구하는 집회에 다녀왔다. “땅 투기꾼 이헌재는 즉각 물러가라,  재산형성 과정을 엄정히 수사하라고 요구했죠.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을 한다는데 부총리는 발뺌하고,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정부는 ‘땅 투기’를 조장, 방관해 오면서도, 주민들에게는 이주비도 제대로 안 해주잖아요. 경제부총리란 사람이 제 몫 챙기는 만큼 국민들 챙겼어야죠. 어처구니가 없어요. 국민들의 애환을 알아야 돼요.”

경제 수장인 이 부총리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증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이유로 사실상 ‘재신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도 3일 “벌써 20년이 더 지난 일이며,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국민들이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 이헌재 부총리와 고위공직자들의 땅투기 의혹에 판교 주민들은 ‘서민경제 살린다'면서 한쪽에선 투기를 일삼는 고위 관료들과 정부 당국의 도덕불감증에 분노를 터뜨렸다.  ⓒ 매일노동뉴스

있는 자들은 ‘선순환’, 없는 자들은 ‘악순환’


“부도덕한 사람을 감싸는 것도 유분수죠. 일의 일관성을 주장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아요. 그 사람(이헌재) 아니면 할 사람 없어요? 그럼 더 해 먹어도 상관없다는 얘긴가요.” 이 위원장은 분통을 터트리며 투기로 얻은 불로소득을 ‘국고환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사도 못가고 끙끙대며 머리띠 매고 투쟁하는데, 부정축재는 ‘유구무언’이에요. 50~60억을 당장 국고환수시켜야죠.”

주민 김설자(54)씨가 말을 거들었다. “서민경제 살린다면서 한쪽에선 투기를 일삼고…. 위정자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배고프다고 소리쳐봤자 콧방귀나 뀌겠어요. 그러면서 지네들은 투기해서 이익금 챙기니 기막힐 일이죠.”

김씨는 또 ‘개발’이 이뤄지면 서민경제는 항상 ‘악순환’만 있을 뿐이라며 “지네들에게는 경제발전과 이득추구의 ‘선순환’이겠지만 우리(서민)에게는 ‘악순환’일 따름이에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283만여평에 이르는 거대한 판교 택지개발을 통해 얻는 수익은 어마어마할 전망이다. 땅 분양으로만 2조6천여억원의 순이익을 얻고, 상가분양에서도 수조원을 챙기는 등 정부의 개발이익은 실로 막대할 것이란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뒤늦게 정부는 지난해 11월 일괄분양, 원가연동제, 채권-분양가 병행입찰제도로 분양가 폭등을 막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분양가를 20% 이상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교부의 표준건축비 인상, 토지공사의 과도한 택지비 산정 등으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토지를 수용해 ‘땅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판교 주민들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투기열풍’이니 ‘청약통장 거래’니 하며 보도하는 통에, 주민들은 그들의 참담한 삶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졸지에 ‘투기꾼’ ‘부동산 투기세력’으로 덤탱이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국세청 투기대책반이 대거 투입되면서 ‘청약통장 거래’ 등을 잡으려고 그 난리를 쳤지만 결국 한건도 잡지 못했잖아요.”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 기관에 대한 불신을 토해냈다. 시행사인 토지공사, 주택공사, 성남시 등을 숱하게 찾아가 생계,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번번이 속만 태울 뿐이었다.

“성남시에 갔더니, 공무원이 하는 말이 건교부 가서 집회 좀 하라고 하면서 떠넘기는 거예요. 정말 통탄할 일이지 않습니까.”

▲ “개발이익을 원주민에게 되돌려 줘야죠.” 대책본부 사무실에 모인 주민들은 3월 대대적인 공가(빈집) 철거에 맞서 결연히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 매일노동뉴스

“사퇴하고 투기재산 ‘국고환수’시켜야”


“서민들은 방 한 칸 없어 쩔쩔매는데 고위공직자들이 했다면 몇억, 몇십억이니 어디 살맛 나겠냐고요.” “혀를 내두르고 할말을 잃게 만든다.”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선거철에는 개나 소나 다 오더니만 지금은(이렇게 어려울 때) 누가 한번 와보기라도 합니까?”

현수막 설치를 마친 주민들은 언 몸을 녹이려 불을 쬐면서 너나할 것 없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주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해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어찌 경제수장이요. 당연히 사퇴해야지.” 서훈기(42)씨는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밑을 쳐다보면 위는 더 잘 보인다고 했어요. 판교가 투기 때문에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데, 불쌍한 사람들의 생존권 얘기가 가려져서야 되겠어요.”

곁에 있던 한 주민이 또 말을 거들었다. “말로는 경제살리기 한다면서 60억 가량 재산을 증액한 것은 이헌재가 음양으로 뭐든 했다는 것 아니냐고요.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에요. 부동산투기 공직자들을 이참에 잡지 않으면 제2, 제3의 이헌재가 나옵니다. 청와대가 제 식구 감싼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주민들은 개발 얘기가 20여 년 전부터 나왔던 것이고, 이미 5공, 6공 시절부터 여권 인사들이 수천 평, 수만 평씩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주민들은 또 89년도에 판교는 그린벨트로 묶고, 분당을 먼저 개발한 것도 당시 대통령인 사람이 그 지역에 2만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미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땅 투기는 이곳 주민들에게 전혀 새롭지도 않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고위층에 있는 놈들이 땅 사놓으면 길나고 개발지역 되는 것 아니겠어요. 천한 우리야 몇 십 년 살면서도 집 한 채 얻지 못하지만.” 주민들의 땅 투기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반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대책본부 한켠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성들 가운데 주민 이봉자(48)씨가 말문을 열었다. “서민들은 없는 죄로 이렇게 고통 받고 사는데 고위공직자의 투기가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분개할 일이다.”

“투기가 법적하자가 없다고 하던데, 그럼 우리는 법적 하자가 없는데도 왜 대책을 세워주지 않나요.” “주민들의 삶을 위해 개발하는 것도 아닌데, 나라가 도둑놈인가요. 왜 우릴 길거리로 내몰아요.”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재산공개와 수사를 명확히 안하는 거죠.” “민주화가 덜돼서 그래요.” “약한 자는 밟아 버리고, 권력 있는 자는 숨겨주잖아요.”

이 부총리의 ‘사과 표명’ 뉴스를 보고 온 주민 이덕열(50)씨는 “몇 마디 사과해서 될 문제가 아니죠. 책임지고 사퇴해야 합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개발이익을 원주민에게 되돌려 줘야 합니다. 이헌재 부총리도 부끄러움을 안다면 60여억원을 내놓고 물러나야 합니다.” 이춘재 위원장의 말에 주민들은 “맞습니다, 맞아요” 맞장구를 쳤다.

이헌재 부총리의 ‘사과’와 청와대의 ‘재신임’ 입장은 집 없는 서민들의 정서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안이한 사태인식일 뿐이었다. 다음날 언론 보도에는 ‘이 부총리 땅 매입 트럭기사 15억 대출과정 의혹’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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