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불법파견으로 고용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실제 사용 사업주인 현대자동차측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4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농성을 벌이고 있는 5공장 탈의실.
 
설 연휴 기간부터 현대차측은 농성장에 물과 전기를 끊었고 지난 21일에는 현대차 관리자· 경비대 등을 동원, 농성 중인 하청노동자들을 심하게 구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젊은 하청노동자들의 얼굴에는 우울함보다는 ‘활기’가 넘쳐 있었다.
 
그런데, 농성장에는 누가 봐도 젊은 사내하청노동자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지난 22일 퇴근 후 홀연히 침낭을 들고 들어와 “비정규직 동지들과 옥쇄 농성을 같이 하겠다”며 농성단의 일원이 된 윤성근 전 현대자동차노조(정규직) 위원장<사진>.
 

 
노조 집행부 관계자도 아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대차 정규직 인사(?)를 만나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면서 농성을 같이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는 할 말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냥 퇴근 후에 잠만 같이 자고 하는 겁니다.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래도 농성단에 합류한 이유가 있지 않느냐고 다그쳐 물으니 그는 정말 눈도 마주치지 않고 땅바닥을 쳐다보며 말한다.
 
“창피해서요. 쪽팔려서요. 비정규직 동지들이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 현대차노조 위원장까지 했다는 사람이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게 부끄러워서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무엇이 그토록 부끄러웠던 걸까.
 
“비정규직노조 안기호 위원장을 경찰에 넘겨주는 등 관리자들과 경비대들이 사내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참을 수 없는데, 회사가 이 겨울에 물끊고 전기 끊는 치사한 짓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참다못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농성만이라도 방해하지 말아 달라며 단식까지 하겠다고 나섰는데, 정규직 활동가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17년 역사를 갖고 있는 현대차노조도 그동안 수없이 파업도 하고 농성을 했지만, 그동안 한 번도 회사가 농성장에 물과 전기를 끊어버린 일은 없었습니다.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평화적인 농성을 하고 있는데도, 회사는 힘으로 눌러버리려는 치졸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윤 전 위원장은, 지금 현대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노조에 대한 탄압을 정규직 노동자들이 묵과하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조차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만큼 최소한 ‘인간답게’ 농성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질 때까지 저도 계속해서 농성을 할 겁니다. 단식농성 중인 아주머니들이 단식을 그만 둘 때까지는 저도 농성단에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농성장에는 윤 전 위원장 말고도 정용오 현대차노조 교육선전위원과 안현호 5공장 대의원까지 모두 3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농성을 함께 하고 있었다.
 
농성장 단전과 단수, 경비대의 폭력, 위원장 구속, 농성자 전원해고 등 농성을 유지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큰 시련을 겪고 있으면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활력’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 이들 정규직 노동자들의 말없는 ‘실천’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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