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영국의 진보적인 지식인이나 노동운동전문가들은 기존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재평가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영국이나 미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서구사회, 심지어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모델로 염두에 두기도 하는 독일이나 스웨덴의 노동운동조차도 자신의 조직과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지키거나 임금이나 작업조건 개선에만 주력한 나머지 시민운동과의 연대나 여타의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면서 너무 실리적인 노동운동 심지어는 조직이기주의적인 운동으로 돼가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조직률이 50%를 넘나드는 시절에는 다수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항변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조직률이 그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그런 항변조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나 지지도가 이전 같지 않다. 오히려 노동운동을 여타의 이익집단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노동운동에서 진보의 싹을 찾으려고 했던 진보적인 지식인이나 활동가들도 상당수 이탈하여 시민운동으로 관심을 돌리거나 멕시코의 자빠파 농민운동에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정리해고나 직장폐쇄에 대항하여 아무리 치열하게 투쟁해도 '당신들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튼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노동운동은 국민적 인식이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축소되고 있다.

노조의 정치사회적 영향력 약화는 곧바로 조직력 약화와 노조의 존립 위협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영국보수당이나 미국공화당의 노조무력화를 주요 목표로 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서 주로 기인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 탓만 하면 무엇하겠는가. 한편으로 보면 그것을 막지 못한 노조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수당의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영국노조는 미조직노동자와 시민운동에 대한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배울' 것도 별로 없어 보이는 서구의 예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우리의 노동운동이 서구의 노동운동을 반면거울로 삼았으면 바램 때문이다. 즉, 노조가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직력과 단결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통한 시민사회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과, 시민사회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미약한 영향력과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노동운동이 시민운동과의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시민사회에 대해서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시민운동에서 제기하는 과제들을 노조 자신의 과제로 삼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생활에서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작업장에서 일어난 일이 가정생활이나 지역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노동자의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예를 들면, 교육문제, 탁아시설, 교통문제, 환경문제, 세금이나 물가문제 등이 곧바로 작업할 때 기분이나 능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업장과 그 바깥은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당연히 작업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작업장의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작업장의 문제에 치중하거나 그 바깥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임금 등 금전의 문제로 환원하여 다루어 왔다.

그럴 경우, 우리의 노동운동도 서구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할 길이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부족한 영향력과 정당성을 메꾸기 위한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원래 과제를 되찾고 나아가 시민사회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직접 추진하기에 벅찬 과제는 시민운동과의 연대협력을 통해서 추진해야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