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사 잘 되세요.”
“보시다시피 먼지 털고 있잖아요.”
“공구상들이 송파구 장지동 쪽으로 이전한다고 하던데요.”
“아이고, 상권이란 게 그냥 형성됩니까. 안갑니다. 못 가요.”
 
청계천 복원공사가 거의 마무리돼, 조만간 물만 흘려보내면 다 되는 줄로 알았던 것은 기자의 착각이었다. 청계천 개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청계천 일대에 즐비했던 노점상들이 동대문운동장으로 쫓겨난 뒤, 개발의 손길은 이제 청계천 주변 낙후 건물들과 그곳에 들어선 영세상가로 뻗치고 있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청계천 변 일대에 즐비한 기계, 공구상들을 송파구의 문정, 장지 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협상 중에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전기전자, 의류, 산업용재, 신발, 조명 등 5개 업종에 걸쳐 총 6천여명의 신청자를 모집했다. 청계천 변 전체 상인들의 10%에 해당한다. 서울시 청계천추진본부 이주지원팀은 이들 신청자의 자격요건을 심사해 2월말 대상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물론 강제이주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자리를 지킨 상인들은 이후 재개발이 추진되면 그 후유증을 온전히 감당해야만 한다.
 
상권 형성되려면 5년 이상 걸린다는데
 
수표교에서 광장시장에 이르는 예지동 지역. 서울시는 다음달 중 대체 영업시설 확보 및 상권 이전을 마무리하고 5월에 물류유통단지를 새롭게 착공한다는 애초의 계획을 9월께로 연기했다. 문정, 장지 지역의 토지보상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지동 일대 지주들조차 10년 동안 재산이 동결되는 신탁개발보다 자체 재개발 허용으로 입장이 바뀌고 있다. 이전에 찬성했던 청계천 변 예지동 일대 세입상인들도 최근 회의적인 반응이거나 ‘반대’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이전 준비도 명확히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주 신청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전하더라도 ‘상권’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몰라요. 골치 아프니까. 묻지 말아요. 가면 가는 기고, 말면 마는 기고.”
“상인들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공사를 시작했잖아요. 먼지 다 뒤집어쓰고 2년을 버텼어요. 그동안 한 5천여만원 까먹었어요.”
“어느 가게나 1억에서 1억5천만원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그냥 나가라고요. 말도 안되는 소리지.”
 
26일 오후,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불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세운상가 근처에서 20년 이상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공구상은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지금 80~90만원 임대료를 못 내서 쩔쩔매는 상인들이 어디 한 두 명이요. 창고에서 목 매달고, 약 먹고 자살하는 상인들이 생길 정도로 심각한 현실이에요.”
 
복원 공사 2년여 동안 분진의 고통을 참아가며 일해 왔던 상인들. 공사가 끝나면 장사가 잘되겠지,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겠지 하며 간신히 버텨왔던 상인들. 여기 저기 돈을 끌어다 쓰면서 수천만원의 빚을 진 것은 기본이었다.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외부인들은 상인들이 상당한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을 터. 예지동에서 조명물품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계속 빚지면서도 이웃, 친척한테 아쉬운 소리도 못했어요. 주변에선 보상받은 걸로 아는데, 청계천 상인들에게 떨어진 보상이라고는 십 원 한 푼도 없었어요.”
 
세운상가 4구역의 전기전자 관련 단체들의 모임인 가칭 ‘예지장4지역재개발상인대책위’도 결성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대책위를 준비중인 주영일씨는 “6천여 상인들이 이전 신청을 했지만, 상권이 형성되려면 5~10년은 걸리기 때문에 최근 들어 상인들의 불안감과 회의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2월초에 상인대책 협의기구를 구성해 논의할 계획이지만 난항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예지동과 인접한 종로4가 ‘시계골목’ 상인들의 불안감도 덜 하지는 않았다.
지난 82년부터 재개발 소문은 무성했지만 소문에 그칠 뿐이었다. 최근에도 금방될 것처럼 얘기는 많지만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경기불황으로 매출감소에 시달리며 간신히 생활하고 있는 상인들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문 열고 하루 종일 개시도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물건을 더 갖다 놓으려 해도 언제 재개발이 될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죠.” 종로4가 시계귀금속 도매상 번영회 양병권 회장은 상인들의 답답한 심경을 이렇게 대변했다. “시에서는 상인들과 대화도 없는데, 일부 신문에선 5월에 된다고 했다가 9월로 연기됐다고 그러죠, 확실한 재개발 로드맵 없이 흐지부지 하는 것이 더 죽을 맛이에요.”
 

 
“200~300만원 이주비만 받고 나가라고”
 
청계천 복원사업이 완료되면 기존 청계천은 금융 오피스타운과 정보기술, 전자 쇼핑타운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낙후 건물을 헐고 영세상인들이 떠난 뒤의 풍경이다.
 
청계천 변 재개발사업은 구역별, 단계별로 진행되고 있었다. 예지동처럼 이주대책이라도 있는 것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서울시의 야심찬 도심재개발의 촉수는 청계천의 초입인 중구 을지로입구 삼각·수하동 일대의 영세상인들을 먼저 겨냥했다. 이주대책이나 보상도 제대로 안된 채 수하동 상가건물의 철거가 이뤄진 것에 대해 청계천 주변 상인들은 당연히 분노하고 있었다.
 
“구역별로 야금야금 잡아먹는 형국이죠. 당한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개인적으로도 나가라고 하면 울화통이 치밀어서 그냥은 못나가죠. 뭔 일 저지르고 말지.”
 
“200~300만원 이주비만 주고 나가라고 하면 가만있을 상인이 누가 있겠어요. 권리금만 1억짜리가 수두룩한데, 데모하고 난리 나겠지.”
 
조흥은행 본사 뒤편 광교에서 수표교로 가는 길목. 흉물스레 철거된 건물 몇 채에는 펜스가 둘러처져 있었다. 지난해 11월 7일 일요일 새벽, 법원의 명도집행 명령에 따른 대대적인 철거가 진행된 뒤, 이곳 40여 주거자와 세입자들은 철거된 건물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했지만 그 즉시 철거당했다.
 
20~30년 생활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세입상인들. 분말소화기를 뿌리는 등 철거과정에서 저질러진 폭력과 가게에서 팔던 현금과 술, 담배까지 가져간 폭거 앞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잉집행으로 철거 다음날 사무실에서 잠을 자다가 숨을 거둔 고 박종인(57)씨와, 여관업을 하던 고 한명자(61)씨의 새해 첫날 뇌출혈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은 괜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철거된 건물 벽 곳곳에는 이달 31일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처분하겠다는 ‘보관물폐기공고’가 붙어 있었다. 삼각·수하동 세입자대책위는 물품을 수령할 때 시위 포기 내용을 담은 확인서 작성의 부당성을 들어 ‘이의신청’을 하거나 물품 인수를 포기할 계획이었다.
 
철거된 건물 안에 대책위 사무실을 꾸리고, 숙소로도 이용하고 있는 세입상인들. 불만의 목소리는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새벽 4시에 강제철거하면서 아이들 책가방까지 들고 갔어요. 아이들은 며칠 학교도 못 가고 지금은 이모 집에 맡겨 놨어요. 날아다니는 새도 둥지가 있는데, 집도 절도 없어요.”
 
“전세 보증금까지 빼서 장사했는데, 몇 천만원 시설비도 못 뽑고 이게 뭐냐고요.”
 
“보증금, 권리금 없는 점포가 어디에 있나. 월세 150만원 내며 식당일 잘 됐어요. 그런데 이주비 300만원 달랑 받고 나가라니, 막막할 따름이죠.”
 
“시행사가 세입자들과 한번 얘기라도 나눴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세입자 문제는 아랑곳없이 날뛰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내와 함께 식당을 했던 세입자대책위의 한호석 총무도 지난해 철거 이후 일을 못하고 있었다. 다른 철거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예금, 적금을 깨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 한 총무는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해 주변 영세상가 대책을 세우겠다는 약속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노점상들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이라도 해주는데, 납세의무를 다한 세입 상인들에게는 200~300만원 이주비만 주고 나가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영세자영업자 몰락시킬 ‘분열적 신개발주의’
 
세입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과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연일 중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가수용시설 쟁취하자!” 철거 상인들은 재개발승인 관청인 중구청이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공허할 뿐이었다.
 
중구청은 현관 입구에 연일 계속되는 집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명도집행은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으로 중구청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것. 이어진 글은 “관내 민원인 만큼 세입자와 지주 간에 원만한 해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세입자 대책의 ‘문서화’ 요구에 중구청이 응하지 않는다면서 불신하고 있다. ‘공무원이 청계천 보상금 꿀꺽’. 중구청 직원이 관여된 최근 비리 소식은 이들의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다.    
 
“사업승인 날 때까지라도 영업을 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는데도 시행사는 안된다고 합디다. 수 억여원의 명도소송비용으로 세입자들과 합의했으면 진작에 원만한 해결이 됐을텐데 완전히 첫 단추를 잘못 낀 거예요.”
 
이용이 삼각·수하동 세입자대책위원장은 입술을 깨물며 결의를 다졌다. “앞으로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문제는 계속 될 것입니다. 삼각 수하동이 첫 출발점이기 때문에 중요할 싸움인 것이죠.”
 
하지만 중구청의 승인으로 재개발 시행사로 지정된 미래로RED측의 입장은 세입자들과는 180도 달랐다. 세입자들이 입장이 모아지지 않고, 구청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미 14개월 치의 임대료를 받지 않았고, 재판정에서 ‘화해조정’을 해 이주비 지원만으로 합의를 끝낸 상황이다. 3월 예정인 사업승인까지 영업을 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의도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여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세입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이주대책 없이 이뤄지는 재개발. 항의해도 요구는 받아들여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절박한 처지의 세입자들 가운데는 ‘분신·자살로 항의하자’는 과격한 글을 세입자대책위 게시판에 올리는 상황이었다.
 
70~80년대 밀어붙이기식 개발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현재의 재개발 방식. 영세자영업을 몰락시킬 청계천 주변 재개발은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공구상가를 철거하고, 고밀도 지구로 바꾸는 청계천 주변 재개발은 70~80년대 개발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시립대 강홍빈(도시공학) 교수는 현재의 청계천 개발을 ‘분열적 신개발주의’라고 불렀다.
 
공구, 인쇄 골목 등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는 강 교수는 대안으로 ‘클러스터’를 강조했다. “청계천 공구골목, 인쇄골목 등 작은 기업들이 서로 협동하며 경쟁하는 산업 집적체인 ‘클러스터’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 교수의 대안은 ‘불도저식’ 사업추진으로 유명한 이명박 시장의 귀에 들어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 시장이 25일 한국무역협회 초청 특별강연에서 한 발언의 한 대목. “청계천 복원사업은 상인, 노점상 등 이해관계자들의 보상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는 행정으로 신뢰를 얻음으로써 추진할 수 있었다.”
 
재개발에 따른 이득을 확실히 챙기려는 시행사와 최대한의 보상을 받으려는 지주들. 그 틈바구니, 개발의 뒤안길에서 돈 없는 서민들의 한숨은 날로 깊어만 간다. 물고기가 노닐 생태복원의 현장, 청계천에는 20~30년 동안 터전을 일궈왔던 영세민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사진 = 박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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