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은 꼬리가 잘려도 죽지 않나요?”

TV 동물프로그램에서 꼬리를 잘라도 죽지 않는 도마뱀을 보면서 신기해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 그리고 서른 해가 넘어서 그 기억을 잊고 살고 있는 우리들.

아니 유년시절의 기억뿐 아니라 바로 몇 시간 전의 일들조차 굳이 들추어내지 않는다면 언제든 모른척, 없던 일로 치부해 낼 수 있다.

<아홉살 인생>, <반갑다, 논리야>, <철학은 내 친구>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친숙한 위기철씨의 첫 단편소설 <껌>. 이 책에 실린 8편의 단편은 여유로우면서도 농밀하고, 재밌으면서도 아프고,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하며, 진지하면서도 웃음을 품게 한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상흔처럼 달고 있던 포기의 흔적마저 사라지고, 나는 해묵은 흔적들을 모아 책을 낸다”는 작가의 말처럼 위기철씨는 86년에 쓴 작품을 시작으로 90년대를 거쳐 2004년 최근작을 통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시위와 프락치처럼 어느새 과거가 되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표제작인 ‘껌’은 신탁회사 투자상담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봉급생활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껌을 멀리 뱉는 일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잊음이 쉬운 머리를 위하여’는 시대적 불행을 잊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을 다뤘고, ‘돌’은 80년대를 농락하는 사람들을 돌팔매질로 응징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는 스스로를 응징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모습을 그렸다.

경찰의 발길질로 뱃속의 아이를 잃은 노동운동가 부부의 꿈을 그린 ‘봄나들이’,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자존의식을 잃고 죽음에 이르는 회사원의 이야기를 다룬 ‘죽음의 굿판’, 범국민적 애국 궐기대회에서 대학생들의 데모를 성토하는 대가로 거액을 받은 가난한 고학생이 인간의 자존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모습을 그린 ‘코’ 등이 수록돼 있다.

그가 잘라버렸던, 혹은 누군가에 의해 잘려졌던 시대의 기억, 8편의 단편소설은 결코 우리에게 아프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도마뱀의 꼬리가 누군가에 의해 잘려졌거나 혹은 스스로 잘랐을지라도 우리 기억 속에서 ‘잊어도 좋을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사이의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이다. (청년사 펴냄/ 280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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